현대 미얀마의 상징 "아웅산 수치"와 개헌 그리고 2020 총선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세계적 인물은 다름아닌 '아웅산 수치' 여사다. 미얀마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그녀의 이름과 민주주의를 향한 고귀한 행적은 글로벌 상식으로 통한다.
1945년생인 그녀는 올해로 75세가 됐다. 영어로는 Aung San Suu Kyi라고 쓰고 '수치 여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는 행정부 정식 명칭인 "스테이트 카운셀러(일종의 총리직)"로 표기하며, 미얀마 국민들은 그냥 "아메 수(엄마 수)"로 부를 정도로 친근한 실질적인 지도자로 통용된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미얀마는 여느 아세안 국가들 처럼 대통령이 온 것이 아니라 수치 여사가 방문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그는 2016년부터 '외교부' '교육부' '에너지 전력부' '대통령실 장관' 등 4개 부처의 장관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권한은 물론 나라의 상징성까지 두루 갖춘 미얀마라는 국가의 최고 책임자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대통령이나 총리는 어디 가고?"란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직함을 갖게 된 것인지 살펴보자.
1. 미얀마 군부가 해놓은 여러 안전 장치
앞서 설명드렸듯 미얀마의 군부는 1962년 이래로 미얀마의 모든 국정과 경제를 장악한 군부체제를 2010년까지 무려 반세기 가까이 지속해 왔다. 그리고 2010년 우리나라로 따지면 '노태우 정부'와 비슷한 '반군반민'의 테인세인 정부가 집권해 차근차근 개혁과 개방체제로의 이행을 준비했고 2015년 총선을 통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가 집권에 성공을 한 것이다.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선거를 통한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2015년 총선에서 비롯된 셈이다.
군부가 오랜 권력을 포기한 배경에는 아주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그러나 군부의 철권통치로 내부질서를 유지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한 것이 객관적 현실이었다. 연방 내부의 민족 갈등도 줄어들고 저개발로 인한 국민들도 불만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미얀마 군부도 선거를 통한 민의 수렴이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그런데 그대로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권력을 이양하기가 불안하든지 2008년 헌법을 만들 때, 그리고 2015년 총선을 앞두고 군부는 몇 가지 조치를 취하게 된다.
- 상원과 하원의 국회의원 25%는 현역 군인에게 할당
- 직계 가족가운데 외국인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 출마 금지
- 이 같은 헌법은 75% 이상의 국회 동의를 얻어야만 개정 가능, 기타등등
한 마디로, 영국인과 결혼해 외국에서 살다 1988년에 미얀마로 들어온 수치 여사의 대통령 집권을 사전에 차단한 셈이다. 무려 25%의 국회의원을 선거 없이 사전에 군부에 배정을 했기 때문에 군부와의 타협 없이는 헌법을 바꿀 수도 없다는 점이 이 헌법의 가장 큰 의미가 되겠다.
2. 군부와 수치의 사실상의 공동 정부...타협 가능할까?
게다가 군부가 설정해 놓은 헌법 개정을 위한 75% 이상의 국회 동의는 여타 민주국가의 그것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한국만 해도 국회 재적의원의 2/3의 찬성으로 개정이 가능한데, 이는 백분율로 따지면 66.7% 수준이다.
미얀마 의회는 흘룻또(Hluttaw)라 부르고, 상원(224인)인 '아묘타 흘룻토' 하원(440인)인 '삐뚜 흘룻토'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과 하원 모두에게서 75% 동의를 얻는 것은 지나치게 까다롭다. 게다가 군부는 이 가운데 25%인 상원 56명과 110명을 선거 없이 차지하고 있으니 아무리 선거에서 압승을 한다고 해도 단독 개헌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단순히 현역 군인만이 의회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과거 군부정당인 USDP(통합단결발전당)도 선거에 참여해 대략 5~7% 정도(상원 11명, 하원 30명) 수준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제 2당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다. 즉, 군부가 마련해 놓은 2008년 헌법을 고쳐서 아웅산 수치가 국가의 정식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 75%의 규정이라도 먼저 완화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최근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이 크게 바뀐데는 그녀의 평생의 신념이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국가의 안정과 발전만을 꾀하는 아주 평범한 1국의 지도자로 변했다는 이미지 탓이다.
실제 2016년 집권에 성공한 아웅산 수치는 꾸준하게 미얀마 내부의 보수 세력을 설득하고, 자신이 안정감 있는 국가지도자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정권교체 초기 아웅산 수치와 군부가 큰 대립각을 세을 것이라고 우려했던 군부세력이 최근 상당히 안정감을 되찾고 타협하는 모습을 비추는 것도 것도 '국가의 발전'이라는 화두를 앞세운 수치 여사의 끊임없는 노력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차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미얀마 정치권은 바로 이 헌법 436조 '75% 동의 조항'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벌여왔고 실제 개정을 위한 투표까지 예정되어 있다.
군부 입장에서도 아무런 임기제한도 없이 실질적인 국가 최고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통령 취임을 반대해 봐야 별 실익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어차피 전세계가 인정하는 지도자인데, 대통령 취임을 인정해 주고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고 퇴임시키는 쪽이 정치발전과 세대교체를 위해서 낫다는 의견인 것이다. 물론 군부 역시 아무런 대가 없이 이 제한을 완화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미얀마 정치권이 어떤 타협안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글쓴이=정호재 bradelview@naver.com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