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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지도자 '헹 스위 킷'-1편

잠정 연기된 '2020 총선'과 코로나 후폭풍...최고 엘리트 코스 '준비된' 지도자

정호재 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1>

 

싱가포르의 정치 체제는 작은 나라임에도 상당히 복잡한 탓에 좁은 지면에 다 서술하기 어렵지만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 핵심을 ‘협력적 권위주의(Consultative Authoritarianism)’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권위주의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형식인데, 이 앞에 붙는 ‘컨설티브’는 아주 사소한 사안이라도 세밀하게 대중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방식의 지배방식을 뜻한다.

 

나라의 국부격인 리콴유(李顯龍)로부터 시작해 (고촉통(吳作棟) 총리를 거쳐) 아들 리센룽(李顯龍)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정치체제의 장점을 요약한 표현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는 정통성은 물론이고 실력까지 겸비해야 함을 뜻한다.

 

 

1. “협력적, 상담 방식의 권위주의(Consultative Authoritarianism)”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살아본 사람은 지도자 리센룽 총리의 아주 세밀한 국정연설을 1년에도 수차례 정기적으로 TV 화면을 통해 접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방식이 여느 민주주의 체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보통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성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라면, 싱가포르의 방식은 마치 ‘선생님’이 등장해 대중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전문적인 컨설턴트 같기도 하고, 득도한 현자같은 이미지를 풍기기도 하며, 혹은 잔소리 많은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느낌을 받는다. 그 방식이 얼마나 세세한지 2017년 필자가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리센룽 총리가 “최근 싱가포르 국민의 최대 건강 문제는 비만이다"면서 세세한 수치까지 거론하며 “결론은 설탕 가공음료를 줄여야 한다”는 TV 강의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2004년에 총리로 취임한 자상한 선생님 이미지의 리센룽 총리가 올해로 집권 17년차가 됐다.  그리고 올해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에 싱가포르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져 왔다. 차기 총리의 취임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국회의원은 대략 5년의 임기를 갖는다. ‘대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조금은 융통성 있게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국회를 해산하는 방식으로 선거일자를 선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의회주의 국가의 특징이기도 한데, 집권세력은 기왕이면 좋은 경제수치를 보이는 시점에 선거를 치르고 싶다는 정치적 욕망에서 비롯된 관행이기도 하다.

 

대체적인 예상은 2020년 봄에 총선거가 치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는데, 잘 알려진 대로 전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선거날이 오리무중에 빠졌다. 자연스레 집권 인민행동당 (PAP)의 재집권 구상에도 큰 차질이 빚어진 셈이다.

 

1964년 독립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정권을 놓치지 않은 싱가포르 집권여당 입장에선 이번 선거가 조만간 은퇴가 예정된 리센룽 총리의 후임을 옹립하는 아주 중요한 선거였는데, 일단 선거에 압승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경제회복 두 가지 토끼를 아주 단시간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최근 2~3년간 싱가포르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차기 지도자가 헹 스위 킷 (Heng Swee Keat, 王瑞杰, 59) 재무장관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사실 굉장히 단순한데, 싱가포르 TV에서 언제 어디서나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차기 지도자 예약한 '헹 스위 킷'은 누구?

 

특히 2019년 연말에 진행되는 내년도 예산안 발표가 그 핵심 무대였다. 헹 재무장관이 ‘계획경제’의 핵심 문건인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는 장면은 거의 한 달 전부터 싱가포르 미디어가 집중 보도하며 그의 이미지를 국가의 지도자급으로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킬 정도였다.

 

아무리 눈썰미가 없는 외국인이라도 해도 “저 사람이 싱가포르 정부에서 총리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구나”라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도 태도였다.

 

실제 그는 현재 유일한 부총리이자 집권 인민행동당(PAP) 내에서도 경쟁자를 찾아보기 힘든 실력자로 통한다. 국내외 미디어 모두 그가 "차기 총리"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시아의 대표적 항구도시 싱가포르는 ‘관’이 ‘민간’을 압도하는 계획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공무원이 사실상 도시국가란 ‘회사’를 운영하는 체제인 셈이다. 자연스레 국가의 최고엘리트들의 꿈도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이 1차 목표다. 고위공무원들의 연봉도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데, 총리의 연봉은 20억 원을 훌쩍 넘기고 장관의 경우 10억 원대가 즐비할 정도다.  

 

헹 스위 킷의 이력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싱가포르의 최고지도자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961년 평범한 조주인(潮州人)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싱가포르 최고 명문고등학교인 래플스 스쿨을 졸업하고 곧장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가서 1983년 학부 학위를 취득한다. 돌아와서는 싱가포르 경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짧지 않은 10대와 20대 시절 설명이지만 여기에도 아주 많은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싱가포르 화교사회의 인적 구성을 살펴봐야 하는데, 싱가포르는 호끼엔으로 불리는 복건성 출신이 주류사회를 구축하고, 이어 조주인과 광동인 객가인이 오밀조밀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다.

 

나라의 아버지 격인 리콴유 전 수상은 객가인 출신인데, 젊은 정치인 시절에는 다수인 복건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따로 복건어를 배울 정도였다. 조주라는 지역은 광동성과 복건성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역인데, 청나라 말기에 뱃사람을 워낙 많이 배출해 5대 화교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헝 스위 킷도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어르신 유권자가 있는 지역에서는 복건어(민남어)로 유세를 할 정도다. 

 

 

그리고 그가 졸업한 명문학원 래플스(RI)는 리콴유와 리센룽 부자를 비롯해 싱가포르의 상당수의 최상위 기업인과 관료들을 배출한 학교다. 한국으로 따지면 1970년대 경기고-경복고-서울고를 합친 정도의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도 싱가포르는 중학교 입시를 치러 12살에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세워 이를 고등학교 진학까지 연계시킬 정도로 철저한 학력-서열주의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즉, 싱가포르에서 총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래플스는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모습은, 싱가포르 최고 엘리트들은 학부부터 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하버드 등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식민지 시절 영국 교육의 영향이기도 한데, 지금도 싱가포르의 모든 부처들은 명문고 학생들을 사전에 선발해 이들에게 전액장학금과 생활비를 주어가며 학부부터 영국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오면 곧바로 공무원으로 의무복무기간을 주어 일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싱가포르의 최우수 엘리트들은 국립 싱가포르 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라, 수십년 전부터 나랏돈으로 세계초일류 대학으로 진학해 글로벌 엘리트들과의 일찌감치 인맥을 쌓으며 20대 초반의 나이에 공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 자연스레 이들이 고위공직자나 정치지도자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으니, 싱가포르 공직 사회와 정계는 고학력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2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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