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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35] 천황제 옹호학문 '일본의 국학'이란? 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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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교수 일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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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누구인가 18.. '겐지모노가타리'서 일본 정신 발견...'국수주의' 변질 부작용

 

일본에는 ‘국학’이라는 전통 학문 분야가 있다. ‘전통 학문 분야’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학문과는 거리가 먼 천황제 옹호 또는 천황 신앙이 묻어나는 ‘의사(擬似)학문’이다.

 

물론 국학에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어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핵심은 일본천황과 연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국학이란 무엇인가? 본래 이니시에마나비(古学び)라 불렀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나 정신세계를 일본 고전에서 찾자는 ‘학문’이다.

 

국학은 에도 중기에 완성되지만 처음 승려 게이추(契沖, 1640~1701)에서 그 싹을 틔운다.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이 가다노 아즈마로(荷田春滿, 1669~1736)이다. 그는 교토의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 신사의 신관으로 복고신도를 창도한 신도가이다.

 

조선왕조의 경우 아직도 주자학(朱子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형편과 견주어 보면 그들 국학자는 자아의식을 일본 고전에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한발 앞서 갔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중신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중국의 주자를 모르는 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든가 ‘오랑캐’라 했다. 당시 지배적인 당파 세력 노론(老論)의 우두머리인 우암에게는 주자는 신이었다.

 

그러나 일본 국학사대인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는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고사기>(古事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등 일본 고전을 연구해 일본 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고전에 숨어 있는 일본 정신을 ‘야마토고코로(和心)’라 하여 유교를 중심으로 중화사상인 ‘가라고코로(漢心)와는 다른 길을 닦아 놓았다.

 

그는 세계 최초의 장편 소설이라는 <겐지모노가타리>의 연구를 통해 깨달아 터득한 일본 정신은 불교나 중국 사상에 물들기 이전의 ‘무구(無垢)’한 일본인의 심정이라 했다. 그는 이를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라고 불렀다. 이를 사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헤이안(平安) 시대의 문학 및 그것을 낳은 귀족 생활을 중심을 이루는 이념.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겐지모노가타리>를 통해 지적 ‘모노(物),’ 곧 대상객관과 ‘아와레(哀れ)’ 곧 감성주관이 일치하는 데서 조화적 정취의 세계, 우미(優美)·섬세(纖細)·침정(沈情)·관조적 이념(<広辞苑> 제6판 일한사전).

 

이를 글쓴이 나름대로 풀이하면 인간의 삶을 옥죄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된 즉물적인 순수한 인간의 감정과 정취의 세계다. 그 굴레는 인간 삶에 이끼같이 쌓인 인습, 경직된 도덕, 세속적인 윤리, 이에 더하며 종교의 도그마적인 율법을 아우른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겐지모노가타리>가 바로 ‘모노노아와레’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의 세계라는 것이다.

 

아직 봉건의 율법이 가시지 않은 에도 시대 전기 노리나가는 이런 문예적인 일본 정신을 주장한 것은 시대를 앞선 통찰이라고 지은이는 감동한다. 이것이 헤이안 시대[794년 도읍을 헤이안으로 옮긴 뒤부터 400년간]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그린 모노노아와레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에 견주어 시대는 달랐지만 한국의 여류작가 최명희는 <혼불>에서 ‘상피[근찬간의 치정관계]’라는 굴레에 갇힌 원혼의 만가를 노래했다. 그가 재현한 ‘망혼제’는 인습에 갇힌 원혼을 해원(解寃)시키는 정서의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김정기, 2018, 134~135).

 

 

다시 노리나가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그는 자그마치 햇수로 35년에 걸쳐 <고사기> 전반에 주석서를 완성해 <고사기전>를 낸다. 지금 일본인이 <고사기>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 덕분이라고 일본학계는 두루 인정한다.

 

그러나 노리나가의 긍정적인 평가는 여기까지다. 그가 힘들여 낸 <고사기전> 만 하드라도 학문적인 성과물로 여겨지면서도 ‘천황교의 교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그가 그린 국학의 정신세계는 변질하여 국수주의로 기우는가 하면 일본 천황을 ‘현인신’으로 떠받드는 지주가 된 역사적 얼룩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前田 勉, 2002, 337).

 

그 결과 이른바 황국사관의 이념적 초석이 되고 드디어는 조선병탄에 이어 만주사변, 중국침략,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는 침략사관의 이데올로기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일본고전독희(대표 김종덕) 편, <키워드로 읽는 겐지 이야기>, 제이엔씨, 2013

김정기, <일본 천황 그는 누구인가: 그 우상의 신화>, 푸른사상, 2018

前田 勉, <近世神道と国学>, ぺりかん社, 2002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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