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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 42] 허무맹랑한 ‘신국사상’ 그리고 ‘일본침몰’

일본의 신국론(神国論) 상....천황의 완전무결 군주론-국수주의적 신도론 신앙적 지주

 

[일본의 신국론(神国論)] 上....천황의 완전무결 군주론-국수주의적 신도론 신앙적 지주

 

일본에는 저들 나라가 ‘신국’(神国)이라는 ‘사상’이 흐르고 있다. 여느 때에는 잔잔한 물결로 남아 있지만 여차하면 출렁이는 파도가 된다.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것이 일본군 무패론으로 둔갑해 수많은 자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허무맹랑한 신국 사상은 한편으로는 천황의 완전무결한 군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적 신도론의 사상적·신앙적 지주로 활약했다.

 

이 신국 사상의 근원도 한반도와 인연을 갖는다. 즉, 신공황후의 ‘신라 정토’ 또는 ‘삼한정벌’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이다. 이전 이야기에 보듯이 신공황후가 신라를 쳐들어가 복속시켰다며 <일본서기>는 신라 왕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적는다.

 

“때에 바람의 신이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의 신이 파도를 일으켜, 바다 속의 큰 고기들이 모두 떠올라 배를 도왔다... 노를 쓸 필요 없이 신라에 이르렀다.” “신라의 왕은 벌벌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일찍이 바닷물이 저절로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천운이 다하여 나라가 바다가 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들으니 동방에 신국(神国이 있는데 일본이라 한다. 성왕(聖王)이 있는데 천황이라 한다. 모름지기 그 나라의 신병(神兵)들이 쳐들어 온 것이다(<日本書紀>, 시리즈 2권 148~150, 강조-필자).

 

■ 자존망대의 종교인...“신도가 근본, 유교는 지엽, 불교는 과실”

 

이 ‘신국 사상’은 일본의 무로마치 시절 자존망대에 사로잡힌 한 종교인이 자존망대의 종교를 창도하는데 원용했다. 그가 요시다 가네토모(吉田兼俱, 1435~1511)라는 자로 요시다 신도를 창시한다. 가네토모는 신도, 유교, 불교의 삼교를 수목에 비유하여 근본지엽화설(根本枝葉花実說)을 주장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신도가 근본이며 유교는 그 지엽이고 불교는 과실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불본신적설(仏本神迹說)을 역으로 뒤집는 것으로, 신이야말로 본지이며 부처는 수적이라는 신본불적설(神本仏迹說)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뇌인다.

 

묻는다. “(우리) 신국에서 불법을 숭상하게 된 유래는 어느 시대부터이며 무슨 인연으로 타국의 교법을 요하는 것인가.”

대답한다. “우리 신국이 개벽한 이래 억겁만만세의 후에 석존이 그 땅에서 교화하였다. 하물며 우리 신국에서 불법을 숭상하게 된 유래는 어느 시대부터이며 무슨 인연으로 타국의 교법을 요한 것인가. 불법 전래는 심히 말대의 만년이다. 우리 인황(人皇) 제30대 긴메이(欽明) 천황의 성대에 불법이 처음으로 내조하였다. 부처가 사라진 지 천 오백 세이다...

제34대 스이코(推古) 천황의 치세에 상궁태자(쇼토쿠 태자)께서 몰래 주상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본은 종자를 낳고 신단(중국)은 지엽으로 나타나고 천축(인도)은 화실(花実, 꽃과 열매)을 피었다. 그러므로 불법은 만법의 화실이며, 유교는 만법의 지엽이며, 신도는 만법의 근원이다...(『유일신도명법요지(唯一神道明法要集)』).

 

그의 안중에는 아예 이웃 나라 조선은 없다. 가네토모는 일본의 신국이며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일본의 황조신(皇祖神)인 동시에 세계의 최고신 내지 보편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라는 그것 신국(神国)이다. 도는 그것 신도(神道)이다. 국주는 그것 신황(神皇)이다. 태조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이다...(『유일신도명법요지(唯一神道明法要集)』, 김후련, “고대 천황신화의 성립과 그 변용”, <일본인의 삶과 종교>, 제이앤씨, 2007, 325).

 

요시다 신도(吉田神道)는 그가 창시한 종교이니 그의 신국 종교관 또는 세계관이 그토록 터무니없다 해도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웃어버리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목에 가시처럼 찌른다. 신국사상이 그 원류로서 신라정토 또는 삼한 정벌이라는, 신공황후로 대표되는 찬탈적 침략성의 도구라는 점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신국사상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일본침몰(日本沈沒)’

 

여기서 신국사상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한 주제로 나타난, ‘일본침몰(日本沈沒)’이라는 대 재앙이 떠오른다. 이는 고마츠 사쿄(小松左京, 1931~2011)라는 소설가가 9년 간 착상하여 집필한 장편 소설 《日本沈沒》의 주제 또는 모티브다.

 

아직도 열도 곳곳에 활화산이 느닷없이 폭발하는 일본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본침몰’이야 말로 공포로 질리는 프레임이다. 따라서 소설 《日本沈沒》은 H.G. 웰즈의 <우주전쟁>과 함께 SF재난 소설의 고전이라고 일본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다른 결의 모티브가 보인다. 필자는 그것이 신국사상 따위와 같은 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즉, 일본은 신국이기는커녕 언제라도 한 순간 ‘침몰’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 아닐까. 과연 ‘일본침몰’과 같은 대재앙이 2011년 3월 11일 일어났다. 동일본대지진이 그것. 사망자와 실종자가 무려 2만여 명. 게다가 치명적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고 까지 덮쳤다. 고마츠 사쿄는 이렇게 말한다.

 

고도의 문명과 황금의 제국 아틀란티스 대륙의 멸망이 지금 지금 재현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를 잇는 그리스 대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이 「대화록」에 남긴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 플라톤의 말에 의하면 기원전 9천년 경, 오늘날 ‘대서양’(Atlantic Ocean)이라 불리는 바다에 ‘아틀란티스’라는 거대 대륙에 같은 이름의 강력하고 부유한 제국이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이 오만 방자하고 탐욕스러워 타국을 침략하고 그 백성들을 괴롭히기에 이르자, 이에 신의 분노를 사서 지진과 홍수로 하루아침에 멸망, 그 백성들 또한 온 세상에 흩어졌다.

 

 

■ 동일본대지진 한국인 성원 ‘기즈나’를 잊어버렸나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서울의 <중앙일보>는 일면 머릿기사에 ‘일본침몰’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필자는 ‘일본침몰’에 인연을 지닌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그 당시 출간한 <미의 나라 조선>에 공감했는지 중앙일보 성시윤 기자가 서울 이문동 내 서재를 찾았다. 그날이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이틀 전이었다. 그런지 며칠 지난 뒤 성 기자가 전화를 해 왔다. 동일본대지진에 대해 코멘트를 해달라는 것. 나는 “한국인은 지금 일본을 돕는 일에 인색치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후속으로 나온 <미의 나라 조선>에 관한 내 인터뷰 기사가 한 면을 장식한 가운데 “일본에 대재앙이 터졌다”라는 소제목으로 나온 문절이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것.

 

“너무 큰 비극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한일관계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현시점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을 적극 돕는 것은 바람직하다.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은 마음이 아름다운 나라, 도자기 같은 나라’라는 마음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중앙일보>, 2011년 3월 19일 치, ‘김정기 교수 “폐쇄적인 민족주의는 벗자”.’

 

그 속사정에 대해 그 당시 <중앙일보> 대기자인 김영희씨는 필자에 귀띔해 주었다.

“‘일본침몰’ 제목에 어찌나 저항이 심한지. 김 교수 코멘트가 (저항을 완화하는데) 한몫을 해 줬어.”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지 어느덧 20년이 흐른 지금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겠다고 한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들이 아낌없는 도움을 주고 일본이 기즈나(絆: 끊기 어려운 정)에 감사한다고 한 그 화답을 벌써 잊어버렸나.

 

참고문헌

<日本書紀>, 시리즈 2권, 坂本太郎·家永三郎·井上光貞·大野晋 校注, 岩波書店, 1994

김후련, “고대 천황신화의 성립과 그 변용”, <일본인의 삶과 종교>, 제이앤씨, 2007

<일본침몰>, 고마츠 사쿄 지음, 고평국 옮김, 두뫼산골, 2019 (小松左京, 《日本沈沒》, 1973번역본)

<중앙일보>, 2011년 3월 19일 치, ‘김정기교수 “폐쇄적인 민족주의는 벗자”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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