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학이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는 종교적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가신도’에도 깊숙이 관련을 맺는다. 국가신도란 무엇인가? 일본의 코지엔(広辞苑)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神社神道)를 황실신도 아래 재편성하여 만들어진 국가종교.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 되었다. 이 단순한 정의가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만들어진 국가종교”라고 했지만 이는 무미건조한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신도가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나라 조선에 자행한 만행이나 자국민에 저질은 죄상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청년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 정의가 언급한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하여 그 일단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극히 일부가 야스쿠니(靖国) 신사에 ‘호국영령’으로 묻혀 있다고. 문제는 전후 일본 총리라는 자들이 이 ‘영령’에 참배
[전창관의 태국이야기 10] 인도에는 카레가 없고, 태국엔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던데 태국에는 ‘콰이강’이 없다. 콰이강이 없으니 ‘콰이강의 다리’도 자연스레 없을 수밖에. 태국에 살거나 자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가봤음직한 깐짜나부리 주(州)의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니 이게 무슨 궤변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국에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니?... 그렇다면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The River Kwai March)’으로 7080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렸던 윌리엄 홀든 주연의 옛 명화에 나온 다리가 영화속에서 지어 낸 가공의 장소란 말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요는,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태국의 '깐짜나부리'에는 '콰이강'이라는 강은 없고, 오직 '쾌(แคว)'강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다시말해 '콰이강의 다리'가 아니고 '쾌강(แม่น้ำแคว)에 있는 다리’, 즉 현지어로 ‘싸판 쾌(สะพานแคว)’이니 말이다. 하긴 콰이강의 다리가 태국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일본의 국학이 이웃 나라, 즉 조선, 만주, 중국을 침탈하고 마침내 태평양 전쟁까지 이른 황국 사관의 이데올로기로 된 기반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원천은 천황을 ‘현인신’, 즉 ‘아라비토카미(現人神)’으로 떠받든 천황 신앙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노리나가가 구상한 ‘천황교 교의’는 그가 필생 연구 끝에 엮어낸 <고사기전>에 드러내고 있으며 노리나가 사후 그의 문인으로 자임한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가 완성했다고 두루 알려지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노리나가의 천황교 교의를 중심 줄거리로 삼고자 한다. 그에 앞서 <고사기전>이 담고 있는 한반도 편견을 짚어 보자. ■ 한반도 편견의 뿌리:노리나가 ‘일본서기’ 바꿔치기 인용해 ‘고사기’ 일대수정 <고사기>에는 이른바 천손강림 신화에서 천황가의 조상신이라는 니니기 신(邇々芸命)이 츠쿠시(筑紫, 규슈의 옛 이름)의 히무카(日向)의 다케치호 봉(高千穗峰)으로 내려왔을 때 <고사기>의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땅은 카라쿠니를 향하고, 카사사(笠沙)의 미사키(御前)와 직통하고 아침 해가 눈부시게 내려쬐며, 저녁 해가 밝게 내려쬐는 나라니라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세계가 연초 계획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한해다. 지난해까지 외교부 아세안협력과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난다. 아세안 업무의 특징은 업무 시기나 흐름이 예측이 가능하다. 통상적으로 매년 초부터 11월 초 아세안 의장국에서 개최되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위해 준비회의를 하며 달려간다고 보면 된다. 스케줄은 빡빡하면서 빠르게 흘러간다. 예를 들어 3~4월 대사급 회의, 5~6월 차관급 회의, 7~8월 장관급 회의 등이다. 1년을 마무리하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끝나면 비로소 한해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안도하곤 한다. ■ 한-아세안 관계의 꽃,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러한 루틴에 벗어나서 한-아세안 관계가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사건’도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다.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 이후 2009년, 2014년, 2019년 등 10년 안에 세 차례에 걸쳐 국내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었다. 특히,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2014년 제2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후 우리나라 때문에 ‘아세안 외에서의 특별정상회의 개최는 10년 이상 주기로 개최된다’라는
남녀노소 태국인들은 물론, 태국에 몇 번 드나든 외국인 여행객들까지도 즐겨먹는 지극히 대중적인 태국의 대표음식이 있는데 다름 아닌 ‘팟타이’다. 중국 대륙에서 생성된 국수문명이 비옥한 메콩 삼각주 평야지대의 미곡 경작지로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형성되어진 ‘라이스 누들 로드 (Rice Noodle Road)’의 종착역 나라 태국. 그 태국에서, 옛 중국대륙의 문명식인 국수문화(Noodle Culture)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갖가지 풍요로운 식재료와 어우러져 태국 현대사에 이르러 탄생한 음식인 ‘팟타이(ผัดไทย)가 만들어진 사연은 이렇다. ■ 태국 현대사에 출현한 팟타이의 정치경제적 유래 1932년 태국의 짝끄리 전제군주 왕조체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킨 입헌혁명의 주도자이자 사회운동가 ‘쁘리디 파놈용’이 핀춘하완 장군의 쿠데타로 실각되자, 쿠데타 세력은 ‘피분 송크람’ 장군을 국가 지도자로 추대했다. 권좌에 오른 ‘피분 송크람’은 자신의 집권 전후시기에 세계사를 뒤흔들던 파시즘과 군국주의를 답습하며 수 차례 총리직을 연임하는 가운데 25년간 장기 군사독재를 이어나갔다. 모든 신문의 1면은 그의 정책 홍보로 도배되었고, 구폐와 악습을 단절한다면서 국호도 아예
국내의 경우 베이비부머 세대 혹은 이후 386세대(현재는 586세대)에게 뉴욕과 런던 홍콩 등지의 발전된 도시의 모습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새벽 제3한강교(한남대교) 불빛은 산업도시 건설의 초석이 되었고 그 남단으로 압구정과 반포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냥곽 아파트는 선진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한 진보성의 구체적 상징이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울은 세계화로 한걸음에 내달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부산에는 해운대 대우매립지개발 프로젝트로 수도서울과 항도부산 2도시 체계로 경쟁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많은 거의 대부분의 아시아권 국토 당국은 이같은 국토의 양 끝단의 두개의 메가시티 전략(더블볼란치)을 통해 전국토의 현대화를 꾀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 대만(타이베이와 가오슝), 말레이시아(콸라룸푸르와 조호바루), 베트남(하노이와 호치민) 등이 그러하다. 물론 수도와 2대 도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정주입지를 갖추었지만 냉전 이후 미국의 경제와 문화를 대표하는 뉴욕과 LA을 맹목적으로 동경하던 일본(도쿄과 오사카)을 벤치마킹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도시예찬론자들
일본에는 ‘국학’이라는 전통 학문 분야가 있다. ‘전통 학문 분야’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학문과는 거리가 먼 천황제 옹호 또는 천황 신앙이 묻어나는 ‘의사(擬似)학문’이다. 물론 국학에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어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핵심은 일본천황과 연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국학이란 무엇인가? 본래 이니시에마나비(古学び)라 불렀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나 정신세계를 일본 고전에서 찾자는 ‘학문’이다. 국학은 에도 중기에 완성되지만 처음 승려 게이추(契沖, 1640~1701)에서 그 싹을 틔운다.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이 가다노 아즈마로(荷田春滿, 1669~1736)이다. 그는 교토의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 신사의 신관으로 복고신도를 창도한 신도가이다. 조선왕조의 경우 아직도 주자학(朱子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형편과 견주어 보면 그들 국학자는 자아의식을 일본 고전에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한발 앞서 갔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중신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중국의 주자를 모르는 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든가 ‘오랑캐’라 했다. 당시 지배적인 당파 세력 노론(老論)의 우두머리인 우암에게는 주자는 신이
아세안(ASEAN) 10개국은 인종·면적·종교·경제현황 등에서 복잡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함 속에서 아세안은 다수의 회의체(아세안 간 회의, 아세안+1, 아세안+3, EAS 등)를 주도하고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은 아세안 속에서도 이를 주도하는 국가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동등한 위치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아세안이다. ■ 다양함 속에서의 조화: 알파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만, 매년 주도하는 국가가 로테이션 된다는 점, 아세안의 방식은 알파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만 명심하면 된다. 그렇다. 제목의 ㅇㅇㅇ은 바로 알파벳이다. 알파벳순만 기억해도 반 이상은 정리된다는 점을 명심하며, 아세안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아세안의 방식으로 주제를 잡은 이유는 필자의 저서인 ‘아세안랩’ 발간 후, 의외로 이 내용이 신기하고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교부 아세안협력과에서 근무하면서도 회의 행정을 준비하지 않았으면 아세안의 방식에 대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 한국에서 개최된 2014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2017 한-아세안 다이얼로그 등의 행정을 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