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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원의 동티모르워치 23] 아세안과의 격차축소, 그리고 한국과 공동번영

아세안 열한 번째 식구, 동티모르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중 어떤 길을 걸을까?

 

 

“한국은 동티모르와 경제적인 면에서 공동번영의 길로 어떻게 접어들 수 있을까?”

 

이것은 필자가 동티모르국립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곳에 선 한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자문하게 된 질문이다. 양국 관계에는 정치-외교-안보-문화처럼 경제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필자가 품은 것은, 그 여러 분야 가운데 경제적 공동번영의 관계가 과연 동티모르와도 가능할까 하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필자가 2008년 처음 딜리에 자리잡았을 때, 거리에는 UN 평화유지 경찰의 흰색 차량이 오갔다. 2006년 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이 나라가 제 발로 설 수 있을지를 세계가 의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7년, 그 거리의 나라는 이제 아세안의 열한 번째 식구가 되어 ‘선발국을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의심받던 나라에서 따라잡으려는 나라로. 동티모르가 건너온 거리가 이 글의 출발점이다.

 

1995년의 베트남과 2025년의 동티모르는, 30년의 시차를 두고 거의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다. 필자가 비교의 잣대로 삼은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다. 두 나라는 아세안에서 가장 잘사는 싱가포르-브루나이도, 가장 가난한 축도 아닌, 중간 소득 수준을 대표하는 기준군이어서, 후발국이 ‘아세안의 평균적 삶’에 얼마나 다가섰는지를 재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동티모르가 각각 아세안에 발을 들이던 그해, 두 나라가 비석유 부문에서 거둔 1인당 소득은 이 인도네시아-필리핀 평균의 4분의 1 남짓에 머물렀다. 베트남은 26퍼센트, 동티모르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숫자만 보면 두 나라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셈이다.

 

베트남은 그 뒤 한 세대 만에 그 기준선의 7할 가까이까지 따라붙었다. 같은 시기 아세안에 들어온 캄보디아는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같은 문으로 들어가, 한 나라는 달렸고 한 나라는 멈춰 섰다. 이런 갈림길의 선례는 자연스레 동티모르에게 질문을 던진다. 동티모르는 베트남의 길을 갈 것인가, 캄보디아의 길을 갈 것인가.

 

그 거리에서 가르치며 지내는 동안, 필자의 눈을 가장 오래 붙든 것은 젊음이었다. 딜리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짐을 나르던 청년도, 길거리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방인을 살피던 학생도 하나같이 앳됐다. 동티모르는 국민의 중간 연령이 스무 살 안팎인, 아세안에서 가장 젊은 나라다. 젊음은 그 자체로 큰 잠재력이지만, 일자리와 교육이 받쳐 주지 못하면 부담으로 돌아온다. 베트남의 길과 캄보디아의 길을 가른 것도 결국 그 젊은 인구를 어떻게 끌어올렸는가의 문제였다.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열한 번째 식구가 된 지금, 그 갈림길의 입구에 서 있는 셈이다.

 

‘발전격차 축소’라는 개념은 아세안이 1999년부터 공식 의제로 삼아 온 오랜 과제다. 잘사는 선발 회원국과 뒤늦게 합류한 후발국 사이의 소득 차이를 줄이는 일, 곧 후발국이 앞서 본 기준선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로 측정될 수 있다. 그런데 격차 축소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같은 26년을 보내고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결과가 갈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 학술 분석에 따르면, 베트남은 가입 무렵 이 기준선의 26퍼센트였던 소득을 22년 만에 68퍼센트까지 끌어올렸다. 2.6배가 넘는 추격이다. 반면 캄보디아는 같은 기간 32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사실상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라오스와 미얀마는 아예 격차가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이 그들의 길을 갈랐는가. 베트남은 자원에 기대는 대신 제조업과 수출, 그리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택했고, 그 선택을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격차 축소는 천천히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비로소 열리는 문이었던 것이다.

 

 

동티모르의 조건은 베트남보다 까다롭다. 베트남에는 그나마 농업과 초기 제조업의 토대가 있었지만, 동티모르 경제는 석유와 가스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해 왔다. 정부 살림의 9할가량이 석유기금에서 나온다. 자원이 받쳐 주는 동안 다른 산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자원이 마르는 순간 추격은커녕 뒷걸음질칠 위험이 크다. 그래서 동티모르의 격차 축소는 통상적인 바람이 아니라, 넘어야 할 관문이 명료한 과제가 된다. 그 관문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이 그 선상에서 어디에 함께 설 수 있는지를 이제부터 하나씩 짚어 보자.

 

동티모르의 격차 축소는 네 개의 관문으로 정리된다. 맨 앞에 토대가 되는 관문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소득·제도·역할이라는 세 관문이 선다. 이 셋은 어느 하나가 끝난 뒤 다음으로 넘어가는 차례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함께 굴러가는 관계다. 토대가 갖춰진 위에서 세 관문이 상호 연동하며 함께 추진될 때 비로소 격차 축소가 작동한다.

 

토대가 되는 첫 관문은 그레이터 선라이즈 가스전이다. 50년 가까이 표류하던 이 거대 가스전은, 동티모르가 아세안에 가입한 지 한 달 만인 2025년 11월, 동티모르 정부와 운영사 우드사이드가 협력 협정을 맺으며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동티모르 땅에 액화천연가스(LNG) 처리 시설을 두는 구상으로, 이르면 2032~2035년 첫 생산이 목표다.

 

이 가스전은 격차 축소의 ‘종잣돈’이다. 다만 종잣돈은 어디까지나 종잣돈일 뿐이다. 동티모르는 이미 바유운단 가스전이라는 종잣돈을 한 번 가졌으나, 그 20년 동안 다른 산업의 토대를 세우지 못한 채 가스가 고갈되면서 지금 재정 절벽 앞에 서 있다. 본래부터 취약했던 산업구조를 고려한다면, 그 20년은 평화 정착과 정치·사회 안정에 집중하느라 경제적 발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현실적인 해석일 것이다. 실제로 동티모르는 분쟁 이후 국가들이 겪어 온 사회적 갈등을 잘 극복한 사례에 속한다.

 

그레이터 선라이즈의 경우 바유운단의 경로를 넘어서는 성과를 내야 할 상황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천연자원 중에 그레이터 선라이즈가 동티모르에게 가장 큰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라는 종잣돈이 흐르는 동안 나머지 세 관문을 상호 연동시키며 함께 통과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레이터 선라이즈 토대 위에 동티모르가 시도해야 할 소득 격차 축소부터 보자. 앞서 본 기준선과의 거리가 실제로 좁혀지느냐를 말한다. 베트남은 이 거리를 2.6배 좁혔고 캄보디아는 거의 좁히지 못했다. 동티모르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가스 수익을 농업 생산성, 관광, 경공업, 직업훈련 같은 비석유 산업의 씨앗으로 돌리는 것이다. 자원이 마른 뒤에도 사람과 산업이 스스로 돌아가는 구조, 그것이 소득 관문의 통과 조건이다.

 

제도적 편입도 그와 맞물려 나아가야 한다. 아세안은 회원국에 84개에 이르는 경제공동체 협정의 비준과 이행을 요구한다. 동티모르는 가입 시점에 경제영역 관련 협정 상당 부분을 비준하지 못한 채 들어왔다. 관세 분류 체계를 맞추고, 표준을 조화시키고, 협정문을 자국 법제로 옮기는 이 작업은 화려하지 않지만, 이것이 더뎌지면 아세안 시장에 ‘이름만 회원’으로 남는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초기 경험은, 이 비준 속도가 외교·법무 분야의 영문 법제 작성 역량에 결정적으로 좌우됨을 보여 주었다. 제도 관문은 결국 사람과 행정의 역량 문제로 귀착된다.

 

역할 관문, 곧 아세안 의장국 수임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의장국은 헌장의 알파벳 순번에 따라 회원국이 해마다 돌아가며 맡는데, 동티모르는 태국 다음 차례로 이르면 2029년, 늦어도 2030년경 그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동티모르 정부는 가입 직후부터 이미 준비에 들어갔다. 의장국은 한 해 동안 정상회의부터 실무 회의까지 연평균 약 500차례의 회의를 주관한다. 문제는 ‘참석’과 ‘주도’가 다르다는 데 있다. 베트남은 의장국 시절 동아시아정상회의 확대와 코로나19 공동기금 같은 의제를 스스로 설계하며 주도국으로 올라섰다. 동티모르가 의장석을 단지 거쳐 가는 의자로 둘지, 자기 의제를 펼치는 무대로 삼을지가 역할 관문의 핵심이다.

 

주목할 것은, 동티모르가 이 관문들 앞에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입 직후 반년 남짓한 사이에 두 개의 큰 카드가 동시에 펼쳐졌다. 하나는 앞서 본 2025년 11월의 그레이터 선라이즈 협정이고, 다른 하나는 2026년 2월 샤나나 구스마우 총리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출범시킨 의장국 준비 국가위원회다. 토대와 역할 관문에서 동시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정치적·재정적 부담이 큰 두 사안을 가입 직후에 함께 밀어붙였다는 것은, 동티모르가 이 갈림길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이 외에도 이런 관문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 변수가 있다. 거버넌스, 곧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동티모르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자리 잡은, 아세안에서 손꼽히는 민주국가다. 다만 관건은 민주주의 지수가 높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높은 민주의식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있다.

 

국민이 자신들의 진짜 유익을 위해 일할 지도자를 가려 뽑고 끝까지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 힘은 자원 수익이 특정 집단에 쏠리는 것을 막고 한 세대가 걸리는 추격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엔진이 된다. 그러나 오랜 권위주의의 관성에 눌려 그 의식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거나, 민주적 절차가 정권마다 정책을 뒤집는 통로로 전락한다면, 격차 축소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과제는 동력을 잃는다. 동티모르의 민주주의가 추격의 엔진이 될지 제동장치가 될지는, 가스 수익을 둘러싼 앞으로의 정치가 답할 몫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동티모르가 아세안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려 사활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량은 부족할 수 있어도, 격차 축소라는 방향만큼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밀고 나갈 것이다. 글머리에서 떠올린 그 거리를 생각해 보자. UN 경찰이 2012년 철수하고 치안권이 동티모르 경찰로 넘어갈 때 많은 국제기구가 혼란을 우려했지만, 동티모르는 그 우려를 딛고 치안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켜 냈다. 실제로 UN 안전보장이사회는 2012년 말 평화유지 임무를 종료하면서 동티모르가 지난 10년간 안보·사법·거버넌스 분야에서 이룬 ‘괄목할 만한 성취’를 공식 치하했다. 분쟁과 극빈의 역사를 딛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정착시킨, 분쟁 후 국가 가운데 손꼽히는 성공 사례인 것이다.

 

정치와 안보라는 가장 어려운 시험을 먼저 통과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시험은 분명하다. 비석유 경제라는, 아직 풀지 못한 영역의 과제다. 이 글이 처음부터 경제적 공동번영을 화두로 삼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회복의 이력은 그동안 동티모르를 상대하며 안고 있던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이 걷혔음을 뜻한다. 실행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적어도 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는 또렷해졌다.

 

한국은 동티모르가 넘어서야 할 토대와 관문들의 선상에서 어디에 설 수 있는가. 원조공여국으로서의 책무와는 별개로, 공동번영의 길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함께 서서 각자의 몫을 키울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한국이 설 자리를 찾으려면, 먼저 다른 나라들이 이미 어디에 앉아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라는 식탁에는 이미 큰 손님들이 자리를 잡았다. 운영사인 우드사이드의 본국 호주는 사업을 이끄는 운영자 자리에, 일본은 생산될 가스를 사들이는 구매자 자리에, 중국은 일대일로를 앞세운 인프라 자리에 앉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리는 어디인가. 바로 이들이 앉지 않은 빈 의자다. 한국은 가스를 직접 운영하거나 사들이는 대신, LNG 처리·해양 플랜트 시공 같은 기술 서비스, 가스 인프라 운용 경험, 그리고 25년간 쌓아 온 행정 역량 협력을 결합한 ‘서비스+인프라+행정’의 다층 영역에 설 수 있다. 이 자리는 호주·일본·중국의 자리와 겹치지 않는다. 겹치지 않기에, 경쟁이 아니라 보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이 이 빈 의자에 어울리는 이유는 세 가지 비교우위에 있다. 첫째는 25년간 쌓은 신뢰다. 1999년 평화유지군 파병에서 시작된 양국 관계의 두께는 다른 신규 협력국이 단숨에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이다. 둘째는 한국 자신의 경험이다. 한국은 이렇다 할 자원 없이 제조업과 사람에 대한 투자로 선진국에 오른 나라다. ‘자원 없이 추격에 성공한 후발 주자’라는 점에서, 한국의 발전 경로 그 자체가 동티모르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셋째는 개발 협력의 노하우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동남아에서 운영해 온 원조 경험 및 민간의 경험이 통합된다면, 동티모르가 각각의 관문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실무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비교우위는 관문마다 구체적인 접점으로 이어진다. 제도 관문에서는, 그동안 농업·직업훈련에 맞춰져 있던 한국의 원조를 협정 비준에 필요한 법제·관세·외교 훈련 쪽으로 옮겨 가는 길이 있다. 84개 협정의 이행 속도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이 행정·법제 역량이기 때문이다. 역할 관문에서는, 회의 운영과 문서 작성, 합의 도출 같은 의장국 실무를 함께 준비하고, 아세안 사무국에 파견될 동티모르 관료의 연수를 지원하는 길이 열려 있다. 동티모르 스스로 의장국 준비 과정에서 ‘훈련된 인력’의 부족을 가장 큰 약점으로 꼽았으니, 이 영역은 한국의 강점과 동티모르의 필요가 정확히 맞물리는 지점이다. 소득 관문에서는 가스 서비스 계약에 현지 고용과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묶어, 자원 수익이 비석유 경제의 씨앗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런 관점은 한국에도 분명한 몫을 남긴다. 눈에 보이는 몫으로는, 가스전의 기술 서비스와 인프라 계약,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청년 인력의 쌍방향 교류, 의장국 운영에 따르는 회의·행정 시스템 진출의 기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몫은 더 길게 작동한다. 한 신생국의 추격을 끝까지 함께한 나라라는 평판은 다자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발언에 무게를 더하고, 중국 일변도로 기울 수 있는 길목에서 ‘믿을 만한 대안 동반자’라는 자리를 한국에 마련해 준다. 무엇보다, 자원 없이 추격에 성공한 나라가 또 다른 추격자의 곁을 지킨다는 이야기는,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고자 하는가를 보여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명함이 된다.

 

마침 한국의 외국인력 정책에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2026년도 고용허가제(EPS) 도입 규모가 8만 명으로 전년보다 38퍼센트 줄어드는 등, 단순히 머릿수를 늘리던 국면은 지나가고 있다. 받아들이는 인원이 줄어들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 더 깊이 자리 잡고 더 오래 기여하는 방향이 중요해진다. 그 길은 결국 동티모르 인력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더 높은 수준으로 갖추는 일과 맞닿아 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양국이 더 높은 수준의 파트너십으로 나아가려면, 그 바탕이 되는 한국어와 한국학의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 단순한 어학 교육을 넘어, 동티모르 안에서 한국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 인력이 자라고 한국 안에서도 동티모르를 연구하는 저변이 두터워질 때, 두 나라의 협력은 비로소 통역과 번역에 기대지 않는 대등한 대화의 단계로 올라선다. 서로를 아는 깊이가 곧 협력의 천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간 관계는 무수한 변수가 얽힌 복잡계여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대비도 네 관문의 도식도 현실을 다 담기에는 성긴 그물이다. 그래서 이 글은 동티모르의 격차 축소를 하나의 ‘예정된 경로’로 가정한 위에서 한국이 함께할 자리를 그려 본 사고실험에 가깝지만, 가능성의 지도를 미리 그려 두는 일은 그래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동티모르는 베트남의 길을 갈 것인가, 캄보디아의 길을 갈 것인가. 이 질문의 주어는 어디까지나 동티모르다. 네 관문을 넘는 것은 동티모르 자신의 몫이고, 누구도 대신 넘어 줄 수 없다. 거버넌스라는 변수를 다스리는 일도, 가스 수익을 미래로 돌리는 결단도 결국 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관문을 넘는 길 위에는, 함께 설 자리가 있다. 한국은 그 길의 어느 지점에 호주도 일본도 중국도 앉지 않은 빈 의자를 가지고 있다. 그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채우지 못하는 한국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동티모르를 거들고, 그 과정에서 한국 자신의 몫도 함께 키운다는 뜻이다. 2026년부터 새로 짜는 한국의 대(對)동티모르 협력 계획, 곧 다가올 동티모르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 그리고 한·아세안 협력의 새 틀이 모두 같은 시기에 맞물리는 지금이야말로, 그 빈 의자를 설계하고 앉기에 좋은 시기라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티모르국립대에서 품어 온 질문, “한국은 어떻게 이 나라와 경제적 공동번영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에 대해, 필자는 이제 이렇게 답하고 싶다.

 

17년 전 UN 경찰의 차량이 오가던 그 거리에서, 동티모르는 의심받던 나라에서 따라잡으려는 나라로 변신했다. 30년 전 베트남이 섰던 출발선에 이제 동티모르가 서 있고, 그 출발선에서 한국은 자원 없이 달려 본 적 있는 몇 안 되는 동행자다. 동티모르가 베트남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달리는 일, 그것이 아세안의 가장 젊은 회원국과 한국이 그릴 수 있는 단단한 공동번영의 그림이 아닐까.

 

최창원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이사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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