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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수의 Xin chào24] 용의 집 ‘냐종’, 사이공부두 그리고 21세 호찌민

붉은 기와 지붕 3층 건물 드래곤하우스: 항구도시 사이공 기억과 호찌민 주석 출향지

 

호찌민시 4군 응웬떳타잉 거리 1번지, 벤응에 운하 건너편에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3층 건물이 서 있다. 오늘날 이곳은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시 지부’(Ho Chi Minh Museum – Ho Chi Minh City Branch)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건물을 ‘냐종’(Nhà Rồng)이라고 불렀다.

 

베트남어로 ‘용의 집’(드래곤 하우스)이라는 뜻이다. 이름만 들으면 오래된 사당이나 궁궐을 떠올릴 수 있지만, 냐종은 원래 프랑스 식민지 시기 국제 해운회사의 본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이처럼 냐종은 식민지 근대, 항구도시 사이공의 성장, 베트남 전통 상징, 그리고 호찌민 주석의 역사적 출발이 겹쳐 있는 복합적인 장소다.

 

■ 식민지 해운망 속에서 태어난 건물

 

냐종은 1862년 무렵 착공되어 1863년에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식민 세력은 사이공을 점령한 뒤 이곳에 프랑스 해운회사 메사주리 앵페리알(Messageries Impériales)의 본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1870년 메사주리 마리팀(Messageries Maritimes)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이공은 이미 1860년대 초 유럽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항로에 포함되어 있었고, 냐종 부두(Bến Nhà Rồng)는 우편선과 여객선, 화물선이 드나드는 항구도시의 관문이었다.

 

 

건축적으로도 냐종은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전체 구조는 서양식 대형 건축물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 위에는 베트남 전통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 장식이 놓여 있었다. 지붕 양쪽 박공의 청록색 유약 도자기 용은 중앙을 향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를 이루었다. 이는 ‘쌍룡조월’, 곧 두 마리 용이 달을 향해 머리를 맞댄 형상과 연결된다. 두 마리 용이 중심의 달이나 구슬을 향해 마주 보는 이미지는 베트남의 궁전, 사당, 전통 회관에서 권위와 번영을 나타내는 장식으로 널리 쓰였다.

 

다만 냐종의 경우, 두 용 사이의 중심부에는 이후 해운회사의 상징인 왕관, 닻, 말머리 문양이 배치되었다. 베트남 전통 상징과 유럽 상업 자본의 표지가 한 지붕 위에 공존한 셈이다.

 

건물의 아래층 역시 사이공의 기후에 맞게 설계되었다. 웅장한 외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무실 주변에는 아치형 복도와 큰 출입문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들이고, 더운 기후 속에서도 내부를 비교적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냐종은 단순한 서양식 건물이 아니라, 식민지 도시 사이공이 자연환경, 행정, 상업, 권력의 요구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조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사이공 항의 성장과 냐종 부두

 

냐종의 의미는 호찌민시에서 가장 오래된 프랑스식 건물이라는 건축사적 가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곳은 사이공 상업항의 일부였고, 사이공 항은 1860년 2월 프랑스 식민 당국이 설치한 상업·민간 운송 중심의 항만 체계였다. 약 40만㎡ 규모의 항만에는 부두, 제방, 정박지, 창고, 세관, 수리소, 선원 클럽 등이 들어섰다. 또한 사이공 항은 출범 초기부터 자유항으로 운영되어 선박의 출입과 교역을 촉진했다.

 

그 결과 1860년부터 1945년까지 사이공은 싱가포르, 페낭, 홍콩, 마닐라와 연결되고 경쟁하는 역내 주요 항구로 성장했다. 냐종은 바로 이 해상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그 앞의 부두 역시 ‘냐롱부두’가 되었다.

 

이곳을 드나들던 우편선, 여객선, 화물선은 사이공을 프랑스 제국의 해상 교통망 안으로 연결했고, 동시에 사이공을 동남아시아의 주요 항구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911년 6월 5일, 한 청년의 출발

 

그러나 베트남 현대사에서 냐종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건은 1911년 6월 5일에 일어났다. 이날 21세의 젊은 응웬떳타잉(Nguyễn Tất Thành), 훗날의 호찌민 주석은 사이공 항구에서 프랑스 선박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Amiral Latouche-Tréville)에 올랐다. 그는 당시 ‘반바’(Văn Ba)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 이름은 그가 낯선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택한 또 하나의 정체성이었다.

 

냐종 부두에서의 출발은 단순한 해외여행도, 평범한 취업도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 조국 베트남을 구할 길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젊은 응웬떳타잉은 당시 베트남이 처한 현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 지배 아래에서 베트남 민중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권리를 제한받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기존의 저항 방식만으로는 나라를 되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세계를 직접 보고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사이공 항구의 배에 올랐다. 냐종 부두는 그에게 단순한 항구가 아니었다. 그곳은 조국을 떠나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언젠가 조국을 위해 돌아오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에 오른 그는 배에서 주방 보조를 하는 하급 선원으로 일하며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이 배를 타고 떠난 것을 시작으로 여러 항구를 거치며 그는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이 여정에서 그는 식민지 베트남의 문제가 베트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여러 식민지 민중이 공유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유럽의 중심부에서도 노동자와 피지배 민중의 삶을 관찰했고,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불평등의 구조를 더 넓은 시야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냐종에서 시작된 이 항해는 한 청년이 국제적 시야를 지닌 혁명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과정이 되었다.

 

약 30년 뒤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베트남 인민을 이끌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므로 1911년 6월 5일의 출발은 한 개인의 이동을 넘어, 베트남 현대사의 방향을 바꾼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냐종은 프랑스 해운회사의 본사였지만, 바로 그 장소에서 식민 지배를 넘어서는 민족 해방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식민 권력이 만든 항구가 훗날 반식민 해방의 상징적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냐종의 역사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 해운회사 본사에서 호찌민 박물관으로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냐종의 의미는 다시 바뀌었다. 한때 프랑스 해운회사의 건물이었고, 1960년대에는 미군 군사원조 관련 기관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통일 후 베트남 해운국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9년 7월 9일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호찌민 주석 기념 유적지로 보존되었다.

 

같은 해 호찌민 주석 서거 10주년을 맞아 “호찌민 주석의 구국의 길을 찾기 위한 활동 여정”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고, 냐종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역사 교육의 공간이 되었다. 이후 1995년에는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시 지부’로 공식 전환되었다.

 

오늘날 박물관은 호찌민 주석의 생애와 혁명 활동을 연구·수집·보존·전시하며, 특히 그가 나라를 구할 길을 찾아 떠난 사건과 남부 인민과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학술 세미나, 좌담회, 기록 영화 상영, 주제 강연, 청소년 교육 활동, 순회 전시 등을 통해 호찌민 사상과 역사적 기억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국가와 도시의 주요 기념일 행사도 이곳에서 자주 열린다. 냐종은 단순한 과거의 항구 건축물이 아니라, 베트남 현대사의 핵심 장면을 현재의 시민과 연결하는 살아 있는 교육 공간이 된 것이다.

 

 

■ 용의 집이 품은 도시의 정체성

 

냐종의 역사는 하나의 건물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 의미를 품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제국의 해운망을 상징하는 회사 건물이었고, 이후에는 항구도시 사이공의 성장과 교역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1911년 호찌민의 출발 이후, 이곳은 베트남 민족사의 방향을 바꾼 장소로 기억되었다. 오늘날에는 식민지의 흔적, 항구도시의 기억, 독립운동의 출발, 혁명 교육의 기능이 한데 겹친 박물관으로 존재한다.

 

붉은 기와지붕 위의 두 마리 용은 여전히 강바람을 맞고 있다. 한때 그사이에는 해운회사의 로고가 놓였고, 그 건물 앞 부두에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배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지금 냐종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단순한 교역의 역사가 아니다. 그곳은 외부 세계를 향한 항구였고, 동시에 베트남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냐종, ‘용의 집’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호찌민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응축한 장소라 할 수 있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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