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 이후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진짜 파장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4월 16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느리게 진행되는 비극(A slow-motion tragedy)”이라는 사설에서 “호르무즈 봉쇄와 엘니뇨가 겹칠 경우 글로벌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동남아시아는 그 충격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식량안보를 곧 쌀 부족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오늘날 아세안 식량안보의 핵심은 훨씬 복합적이다. 쌀은 아세안 전체로 보면 여전히 자급권이지만, 비료-밀-사료-에너지-물류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원유 수송로가 아니다. 2024년 기준 세계 비료 교역의 최대 30%, LNG의 약 20%, 원유 교역의 약 27%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천연가스는 암모니아-요소 비료 생산의 핵심 원료이고, 걸프 지역 황(sulfur)은 인산비료 생산에 필수적이다. 국제비료협회(IFA)에 따르면 이란-카타르-사우디-UAE-바레인 5개국은 세계 암모니아의 23%, 요소의 34%, 암모니아계 인산비료의 18%를 생산한다. 세계 황 교역의 거의 절반 역시 호르무즈를 지난다.
즉 동남아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쌀 부족”이 아니다. 비료 가격 급등 → 농가 투입 감소 → 다음 작기 생산량 저하 → 식량 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이다. 실제로 아세안식량안보시스템(AFSIS:ASEAN Food Security Information System)도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최근 유가와 비료 가격 상승이 아세안 쌀 생산과 식량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겉으로 보면 아세안은 세계적 쌀 생산지다.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최대 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이고, 미얀마와 캄보디아 역시 순수출국이다. 2026년 전망 기준 쌀 자급률은 태국 207.88%, 베트남 136.25%, 미얀마 123.49%, 캄보디아 110.66%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도 정책적 생산 확대를 통해 2025년 이후 일시적 자급권에 진입하는 흐름이다.
반면 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싱가포르는 구조적 수입 의존국이다. 2026년 전망 자급률은 필리핀 73.21%, 말레이시아 46.98%, 브루나이 9.38%, 싱가포르는 사실상 0% 수준이다. 특히 필리핀은 동남아 최대 쌀 수입국으로 2024년 약 480만 톤을 베트남과 태국 중심으로 수입했다.
결국 아세안 전체 잉여가 국가별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출국의 수출 제한이나 물류 차질이 발생하면 수입국은 즉각적인 가격 불안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2023~24년 엘니뇨 당시 태국과 인도는 물 부족 우려 속에 쌀 수출 제한 가능성을 검토했고, 이는 국제 쌀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쌀보다 오히려 밀-옥수수-대두 같은 품목이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2026/27년 밀 수입량이 약 1,250만 톤에 이를 전망이고, 베트남은 약 610만 톤, 말레이시아는 사실상 전량 수입 구조다. 필리핀 역시 대규모 밀 수입국이다. 즉 빵·면류·사료용 곡물은 호주·미국·캐나다·흑해 지역 등 역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옥수수와 대두 역시 취약하다. 싱가포르 ISEAS–Yusof Ishak Institute는 아세안이 대두·옥수수·밀 분야에서 높은 수입 의존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곡물 문제가 아니라 축산·양계·양식업 사료비 문제와 연결된다. 따라서 호르무즈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쌀보다 먼저 육류·계란·양식 수산물 가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엘니뇨까지 겹치고 있다. 올해 강력한 엘니뇨 가능성이 거론되며 동남아의 가뭄 위험이 커지고 있다. 엘니뇨는 동남아 강수량 감소와 고온 현상을 유발해 벼 생산량 감소, 팜오일 생산 저하, 산불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세계 팜오일 공급의 중심지인데 엘니뇨는 생산량 감소와 식용유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수온 상승은 어획량 감소와 산호 생태계 악화로 이어져 연안 빈곤층에도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4월 23일자 이코노미스트 후속호에 실린 세이브더칠드런 미국법인 CEO의 기고다. 그는 “문제는 조기경보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금융 시스템이 실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말리아는 이를 두 번 경험했다. 2011년 기근 당시 수개월 전부터 경고가 있었음에도 약 25만 명이 사망했고, 2022년에도 늦은 대응으로 심각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는 비료·식량 사전 비축, 가축 보호, 사회안전망 확대 같은 선제 대응이 훨씬 낮은 비용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세안 역시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ASEAN Plus Three Emergency Rice Reserve)다. 이는 2011년 ASEAN+3 농업장관회의를 통해 출범한 한·중·일+아세안 비상 쌀 비축제도다. 현재 약정 비축량은 총 78만7000톤으로, 이 중 한국·중국·일본이 70만 톤을 담당한다. 최근에는 단순 쌀 비축을 넘어 밀·즉석식품·영양강화쌀·비료까지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ASEAN 차원의 식량안보 전략인 AIFS Framework와 SPA-FS 2021–2025 역시 쌀뿐 아니라 옥수수·대두·설탕·카사바까지 포괄하며 정보 공유와 비상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위기 대응력은 여전히 국가별 비축, 수입선 다변화, 가격보조, 수출통제 회피 협의에 크게 좌우된다.
필리핀의 GMO 황금쌀(Golden Rice) 논쟁도 흥미로운 사례다. 필리핀은 2021년 비타민A 강화 GM 쌀 상업재배를 승인한 세계 최초 국가였지만, 2024년 항소법원이 관련 생물안전 허가를 취소·중지시켰다. 찬성 측은 영양결핍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생물안전과 농민 참여, 생물다양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식량안보가 단순 생산량 문제가 아니라 기술·환경·사회적 수용성이 결합된 거버넌스 이슈임을 보여준다.
한국에도 중요한 기회와 과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은 단순한 쌀 지원국을 넘어 아세안의 “식량안보 파트너”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첫째, APTERR 2.0 구상이다. 기존 쌀 중심 비축을 유지하되 밀·즉석식품·비료·종자 긴급조달 체계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둘째, 비료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이다. 요소·암모니아·황 가격을 AFSIS와 연동한 “농업투입재 대시보드” 구축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기후 스마트 농업 협력이다. 베트남·태국·캄보디아에는 저탄소 벼농사와 물관리 기술을, 필리핀·말레이시아에는 생산성 향상과 저장 손실 감소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넷째, 영양안보 협력이다. 황금쌀 같은 단일 GMO 기술보다 영양강화쌀, 학교급식, 비타민 보충, 지역 작물 다양화 등을 패키지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오늘날 아세안 식량안보의 본질은 단순한 “쌀 부족”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비료 공급망, 기후변화, 물류, 사료곡물, 지정학 충격이 결합된 복합안보 문제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과 엘니뇨는 서로 다른 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기후위기와 지정학 충격이 동시에 오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의 최전선에 지금 아세안이 서 있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