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초 사이공에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건축물』이라는 책을 펴낸 쩐히우푹띠엔(Trần Hưu Phúc Tiến) 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여기 가까운 곳에 한국인이 세운 팔각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1989년 5월쯤에 그곳을 지나다가 본적이 있었지만, 당시는 아주 낡은 상태였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다시 찾아갔다.
호찌민시 5구, 훙브엉·스반하잉-응우옌찌타잉 대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오래된 공원 하나가 있다. 오늘날 이곳은 호아빙(Hòa Bình, 평화)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공원 안에는 짙은 푸른빛을 띤 낡은 팔각정이 서 있다. 많은 시민이 그 앞을 지나가고, 때로는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한다. 그러나 이 정자가 왜 그 자리에 세워졌는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또 그 안에 어떤 시대의 기억이 스며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정자의 이름은 딩호아빙(Đình Hòa Bình)이다. 한자로는 ‘平和亭’, 한국어로는 ‘평화정’이다. 이름 그대로 ‘평화’를 뜻하는 정자다. 하지만, 이 평화라는 말은 단순하지 않다. 이 건축물은 1972년, 베트남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기에 세워졌다. 당시 사이공시는 전쟁의 긴장 속에 있었고, 한국군 역시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한국식 팔각정이 사이공 한복판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이 건축물이 단순한 휴식 시설이 아니라 정치적-외교적·문화적 상징을 함께 지닌 공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평화정은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전국의 산, 공원, 유적지에서 팔각정 형태의 정자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팔각정은 한국에서 전망과 휴식, 기념의 의미를 함께 지니는 건축 유형이다. 평화정도 바로 그러한 전통을 베트남 사이공의 도시 공간 안에 옮겨 놓은 사례였다.
특히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온통 푸른색으로 덮인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 전통 단청, 곧 푸른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채색 문양이 정자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낡은 공원 시설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원래의 평화정은 한국 고전미를 드러내는 기념 건축물이었다.
이 정자의 설계와 건립에는 한국의 승려이자 화가였던 이만봉이 참여했다. 그는 한국 문화유산 보존 분야에서도 알려진 인물이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이만봉을 비롯한 여러 건축 전문가가 참여했고, 한국 전통 건축미를 살리기 위해 청기와 역시 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공사는 비둘기 부대에 의해 1972년 2월 8일 기공되었고, 같은 해 7월 27일 훙브엉 공원 안에 준공되었다. 대지 총 8백26평, 건평 11평방m, 높이 8.6m다. 이후 공원은 정자의 이름을 따라 호아빙 공원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https://m.blog.naver.com/hanil9146/10074990231)
이 건축물에는 한때 ‘평화정’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진 현판도 걸려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 글씨는 당시 한국 대통령 박정희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 현판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평화정은 한-베 관계사와 전쟁기 한국군 주둔의 기억을 보여 주는 더 뚜렷한 사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현판은 이후 철거되었고,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현판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물리적 훼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름이 사라지고, 글씨가 사라지고, 그 건립 배경을 설명하는 표지가 사라지면, 건축물은 남아 있어도 기억은 점차 희미해진다.
1972년 준공 당시의 사진을 보면 호아빙정 주변에는 분수와 공원 표지판 등 여러 시설물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공원이 재정비되면서 대부분의 시설은 교체되거나 철거되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이 바로 이 팔각정이다. 도시 개발과 재정비는 흔히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설물만이 아니다. 한 시대가 남긴 흔적, 특정 장소에 축적된 기억, 그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도 함께 지워진다.
물론 평화정을 바라보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이 정자는 한-베 우호의 상징으로 세워졌지만, 동시에 베트남전쟁이라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 건축물을 단순히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이 베트남에 남아 있다’라는 식으로만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군의 베트남 주둔, 냉전기 동아시아의 정치 질서, 남베트남 정부와 한국 정부의 관계, 그리고 전쟁 이후 베트남 도시가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형해 왔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장소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평화정이 더 이상 과거의 공식적 의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한국군의 얼과 한-월 친선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세워졌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모이고 쉬어 가는 평범한 공원 속 정자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약속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 지나치는 익숙한 도시 풍경일 뿐이다. 기념물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의미를 바꾼다. 처음 만들어질 때 부여된 국가적-정치적 상징이 약해지고, 그 자리에 일상의 기억이 덧씌워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화정은 흥미로운 도시 역사의 사례가 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거리 이름이 바뀌고, 건물이 철거되고, 공원이 재정비되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달라진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흔적은 설명 없이 남아 있고, 어떤 건축물은 원래의 의미를 잃은 채 다른 의미로 살아남는다. 평화정은 그런 잔존의 공간이다. 그것은 과거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워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애매한 상태 때문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팔각정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한때의 외교적 우호, 전쟁의 기억, 문화 교류, 도시 개발, 그리고 일상의 장소성이 하나의 작은 정자 안에 겹쳐 있다. 평화정은 거대한 기념관도 아니고, 잘 관리된 역사 유적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더 현실적인 역사 공간이다. 역사란 늘 박물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공원 한쪽의 낡은 정자, 사라진 현판의 빈자리,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그늘 속에 남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건축물을 거창하게 기념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의미를 차분히 읽어 내는 일이다. 호아빙정이 언제, 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기록하는 일은 한국과 베트남 양쪽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다. 사이공의 푸른 팔각정은 우리에게 묻는다. 도시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는가. 그리고 우리는 남아 있는 흔적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가.
호아빙 공원의 평화정은 낡았다. 단청은 사라졌고, 현판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정자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낡지 않았다. 전쟁의 시대에 ‘평화’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건축물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시민들의 일상에서 조용히 서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깊은 역설을 품고 있다. 그 역설을 읽어 내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작은 팔각정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