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중국이 필리핀 해안에서 약 230㎞ 떨어진 스카버러암초(Scarborough Reef, 중국명 황옌다오, 필리핀명 바호 데 마신록)를 점거하고 구단선에 근거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조성했다. 이에 필리핀은 해당 수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며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2016년 7월 12일 PCA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중재 사건에서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국의 '구단선(Nine-Dash Line)'에 근거한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도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14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판결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공동성명은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 중재판결의 최종성과 법적 구속력,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보장,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에 대한 국제법상 근거 부재를 다시 강조했다.
■ 법적지위와 해양 환경 필리핀 섬 인정... 10년이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분쟁
중재판결은 중국의 영유권 주장뿐 아니라 일부 해양지형의 법적 지위와 해양환경 훼손 문제에서도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국제법적 승리에도 현실은 달랐다.
판결 직후 출범한 두테르테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고려해 판결을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미국 역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약화되면서 판결의 정치적 동력도 크게 떨어졌다.
필자 역시 당시 주아세안 한국대사로 재직하며 미국, 일본, 호주 등 우방국 대사들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판결의 의미와 역내 파장을 논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정부도 국제법 존중과 평화적 분쟁 해결 원칙을 강조하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 중국 "중재판결은 휴지 조각일 뿐" 강력 반발
스카버러암초는 남중국해에 위치한 암초로 남중국해의 여러 암초들처럼 필리핀과 중국, 그리고 대만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분쟁 지역이다. 중국명 황옌다오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점거해 인공섬을 조성했다.
직각삼각형 모양을 띤 산호초이며 수빅 만에서 서쪽으로 198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주위에 있는 석호를 포함한 전체 면적은 150㎢이며 원둘레는 55km, 수심은 약 15m이다. 산호초 남단에 있는 외해의 길이는 400m, 수심은 9 ~ 11m, 수로의 길이는 360 ~ 400m이다.
중국은 10주년 공동성명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관영 영문지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는 사설에서 "중재판결은 사실상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며 "10년이 지나도 휴지 한 장은 여전히 휴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남중국해 문제가 영토주권과 직결된 핵심 국익인 만큼 기존 입장을 바꿀 의사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 한국은 계속 제3자에 머물 것인가
이번 공동성명에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명의의 별도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특정 국가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국제법 존중, 항행의 자유, 평화적 분쟁 해결이라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다만 미국 주도의 항행의 자유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서해에서 점차 부각되는 해양 갈등도 고려한 결과다. 실제로 필리핀을 제외한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와 아세안도 공동성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중국해는 우리 수출입 물동량과 에너지 수송의 핵심 항로이며, 한국 역시 주변국과 해양관할권 문제를 안고 있는 해양국가다. 이 지역의 안정은 우리 경제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 해양질서의 변화는 결국 우리의 해양 이익과 국가 전략에도 직결된다. 이 같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전략도 요구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남중국해 문제에서 단순한 제3자로만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한가. 국제법과 유엔해양법협약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더 부합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를 서해 해양 질서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중국해 중재판결 10주년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급변하는 인도·태평양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해양국가 전략과 국제법 원칙을 선택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