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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의 아세안ABC 39] 세 번째 ‘동남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안소니 리드의 '동남아시아의 교역의 시대'로 읽는 21세기 ASEAN...동남아 시각 필요

 

안소니 리드(Anthony Reid)의 ‘동남아시아의 교역의 시대 1450~1680’ 1·2권을 나는 두 번 읽었다. 한 번 읽기도 만만치 않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이 책이 15~17세기 동남아 역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남아사를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남아의 근대사를 흔히 유럽인의 등장과 함께 바라본다. 1511년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진출, 뒤이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가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켰다는 시각이다.

 

■ 리드는 이러한 역사관을 뒤집는다.

 

첫 번째 부상: 유럽인이 오기 전 이미 세계의 중심이었다

 

유럽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동남아는 중국과 일본, 인도와 중동을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교역망의 중심이었다. 후추와 정향, 육두구 등 당시 세계가 탐내던 상품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다.

 

유럽인이 동남아를 세계경제에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이미 존재하던 아시아 중심의 교역세계에 뒤늦게 들어온 것에 가깝다.

 

리드가 1450~1680년을 ‘교역의 시대(Age of Commerce)’라고 부른 이유다.

 

그의 시각에는 프랑스 아날학파와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이 짙다. 브로델이 지중해를 하나의 역사공간으로 바라보면서 왕과 전쟁보다 지리와 기후, 물질생활 같은 장기적 구조를 중시했다면, 리드는 같은 방법으로 계절풍이 부는 ‘바람 아래의 땅’ 동남아를 바라본다.

 

그래서 ‘교역의 시대’에는 왕조의 흥망 못지않게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었는지,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결혼했는지, 여성의 지위와 성생활, 축제와 오락은 어떠했는지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현재의 국경을 넘어 바다와 계절풍, 항구와 교역망으로 연결된 동남아를 하나의 역사적 세계로 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얻은 것도 이러한 동남아 중심의 시각이었다. 동남아는 인도·중국·이슬람·유럽 문명의 영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변방이 아니었다.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되 선택하고 변형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역사의 주체였다.

 

■ 동남아에도 상업혁명이 있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 전반까지 동남아의 변화는 놀랍다.

 

세계교역이 확대되면서 향신료와 후추의 수요가 급증했고 말라카, 아체, 반텐, 마카사르, 아유타야 같은 국제항구도시가 번성했다. 중국인·인도인·아랍인·페르시아인·일본인과 유럽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화폐경제와 소비문화가 발전하고 도시가 성장했다.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왕조들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을 추진했다. 이슬람과 상좌부불교, 기독교 같은 보편종교의 확산도 이러한 변화와 맞물렸다.

 

그렇다면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 역동적이었던 동남아의 상업혁명은 유럽처럼 상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교역의 시대’ 2권의 중요한 문제의식이 여기에 있다.

 

동남아에도 부유한 상인과 국제적인 시장은 있었다. 그러나 상업적 부가 왕권으로부터 독립된 자본세력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왕조와 지배 엘리트는 교역을 통제하고 세금을 거두었으며 때로는 상인의 부를 권력 아래 종속시켰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 도시와 상인계층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재산권과 자본축적의 제도를 발전시킨 것과 차이가 있었다.

 

한마디로 시장은 성장했지만 자본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보호할 제도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 17세기 위기, 내부의 한계와 외부 충격

 

여기에 17세기 들어 외부 충격이 겹쳤다.

 

세계교역의 흐름이 변화하고 이른바 소빙기로 불리는 기후변동이 농업과 식량생산에 부담을 주었다. 전쟁과 정치적 불안도 이어졌다.

 

그리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VOC가 등장했다.

 

VOC는 단순한 상업회사가 아니었다. 막대한 자본과 군사력을 가진 국가와 기업의 결합체였다. 필요하면 전쟁을 벌이고 항구를 봉쇄했으며 향신료 생산과 유통을 독점했다.

 

여러 나라와 상인들이 경쟁하던 비교적 개방적인 아시아 교역질서가 점차 유럽 세력의 독점적인 질서로 변해갔다.

 

그 결과 17세기 중후반 동남아의 국제교역과 도시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리드가 말하는 ‘교역의 시대의 위기’다.

 

그러나 동남아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두 번째 부상: 1780~1840년의 재도약

 

리드는 이후 연구에서 자신의 초기 논의를 보완했다. 동남아가 17세기 위기 이후 계속 쇠퇴한 것이 아니라 1780~1840년경 다시 세계교역의 활발한 무대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동력은 중국이었다.

 

청나라의 인구와 경제가 성장하면서 후추·설탕·주석·금·해산물·삼림제품 등 동남아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푸젠과 광둥 등 중국 남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로 이주하면서 화교의 상업·광업·농업 네트워크도 확대됐다.

 

시암과 베트남 남부, 말레이반도, 보르네오와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새로운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졌다.

 

정치적 재편도 함께 진행됐다. 1767년 아유타야 멸망 이후 시암은 톤부리를 거쳐 1782년 방콕의 짜끄리 왕조를 중심으로 재건됐다. 베트남에서는 1802년 응우옌 왕조가 통일국가를 세웠다.

 

그리고 1819년 영국이 싱가포르에 무역거점을 세웠다. 자유항을 표방한 싱가포르에는 중국인·말레이인·인도인·아랍인과 유럽 상인이 몰려들었다.

 

16세기 말라카가 수행했던 국제교역 중심지의 기능을 19세기의 싱가포르가 이어받은 셈이다.

 

동남아는 다시 한번 살아나고 있었다.

 

■ 그런데 두 번째 기회도 왜 놓쳤을까

 

첫 번째 교역의 시대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었다.

 

유럽의 힘이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이 말라카에 도착했을 때 유럽인은 아시아 교역망의 여러 참가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산업혁명을 거친 유럽은 증기선과 근대적 무기, 해군력, 금융과 보험, 대규모 기업과 근대국가를 갖추고 있었다. 동남아가 다시 세계교역으로 복귀하는 사이 유럽은 이미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동남아의 두 번째 상업 팽창은 유럽 열강에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1824년 영국-네덜란드 조약으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군도의 세력권이 나뉘고, 이후 영국은 버마와 말레이로,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군도 깊숙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로 진출했다.

 

동남아가 다시 부상했지만 이번에는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고 서구 중심 세계경제의 식민지적 주변부로 편입됐다.

 

 

■ 그리고 세 번째 부상: 시작되고 있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동남아 국가들은 국가와 경제를 다시 건설했다. 1967년 ASEAN을 출범시켰고 냉전과 베트남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지역협력과 경제개방을 확대했다.

 

그리고 21세기 동남아는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국+1’ 전략, 디지털 경제, 반도체와 배터리·전기차, 핵심광물과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ASEAN의 경제적·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동남아의 부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과거와 닮았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지리적 위치,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바다와 교역로, 풍부한 자원, 그리고 외부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개방성과 유연성이다.

 

15~16세기에는 중국·인도·아랍과 유럽 상인들이 찾아왔다. 18~19세기에는 중국 상인과 유럽의 자본이 몰려왔다. 오늘날에는 미국·중국·일본·한국·유럽·인도와 중동 국가들이 앞다퉈 ASEAN을 찾는다.

 

■ 이번 세 번째 기회는 다를 수 있을까

 

‘교역의 시대’를 오늘 다시 읽으며 결국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첫 번째 부상에는 시장이 있었지만 자본과 제도의 축적이 부족했다. 두 번째 부상에서는 세계교역으로 복귀했지만 이미 산업혁명을 이룬 서구와의 힘의 격차를 넘어서지 못했다.

 

세 번째 부상을 맞고 있는 오늘의 ASEAN에는 과거와 다른 조건이 있다. 독립된 국민국가가 있고 ASEAN이라는 지역협력체가 있으며 자국 기업과 중산층, 교육받은 인적자원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외국인투자를 얼마나 많이 끌어들이느냐보다 그것을 자국의 자본·기술·산업·인재로 얼마나 축적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성장의 과실이 소수 정치·경제 엘리트에게 집중되지 않는 제도, 법치와 재산권, 그리고 미·중 경쟁 속에서도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도 필요하다.

 

안소니 리드의 책을 읽으며 나는 동남아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동남아는 오랫동안 세계사의 변방에 머물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지역이 아니다. 세계교역의 중심에 섰다가 밀려났고, 다시 일어섰다가 식민지적 주변부로 편입된 뒤, 긴 시간을 돌아 세 번째 기회를 맞고 있는 지역이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긴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15~17세기의 첫 번째 교역의 시대, 1780~1840년의 두 번째 상업적 부상에 이어 21세기는 동남아의 세 번째 시대가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이번에는 교역의 확대를 스스로의 자본과 기술, 인재와 제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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