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 28] ‘도이머이’ 40년: 울타리 허물기와 제6차 당대회 '결단'
베트남이 도이머이를 천명한 지 40주년을 맞는 해다. 베트남은 20세기 중후반의 상당 기간을 프랑스, 미국, 크메르 루주 및 중국과의 전쟁과 분쟁 속에서 보냈다. 궁핍의 끝에서 몸부림친 베트남은 개혁 개방을 선언하고 세계에 문을 열었다. 세계은행의 명목 달러 기준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GDP는 1986년 436달러에서 2025년 5,066달러로 약 11.6배 증가했다. 다만 이 비교에는 물가와 환율 변동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 배경에는 ‘도이머이’ 정책이라는 성공적 실천이 있었다.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토지·공장·생산·유통을 국가가 일원적으로 통제하던 기존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경제 부문의 활동을 인정하고, 시장이 상품의 가격과 유통을 일정 부분 조절하도록 허용했다. 베트남은 이 정책을 ‘도이머이’, 즉 ‘쇄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도이머이는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정책이 아니었다. 지방과 기업이 생존을 위해 먼저 기존 규정을 우회했고, 일부 지도자들이 그 현실을 중앙에 전달했으며, 쯔엉찡(Trường Chinh)을 비롯한 당 원로들이 자신의 오랜 신념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당의 공식 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