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 등록 2024.07.29 07: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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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작곡가 죤 윌리암스의 메인 테마와 해초들 사이를 유유히 스쳐가는 죠스의 시선 쇼트로 시작된다. 이어 한 무리의 청춘남녀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파티를 하고 있는, 낭만과 사랑이 출렁이는 해변으로 전환된다. 술에 취한 젊은 여자가 옷을 모두 벗어 던지며 잔잔한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하늘 저 멀리 석양이 그림처럼 지고 있고 모든 것이 순조롭다. 

 

갑자기 그 낮고 느리고 단조로운 음조의 죠스 메인 테마가 들리기 시작하고 헤엄치던 여자는 수면 아래로 끌려들어간다. 여자의 간헐적 비명에 섞이는 메인 테마는 점점 더 빨라지고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시퍼런 바닷물에 붉은 피가 퍼지면 메인 테마도 사라지고 바다엔 적막만 흐른다.

 

공포영화에선 젊고 아름다운 누군가가 악당에 의해서 비참하게 살해당해야만 막이 오르는 상투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왜냐하면 그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한 관객들은 악당을 물리칠 주인공을 응원하기 시작하고 이야기에 더 깊게 몰입하기 때문이다. 이제 바다를 떠올리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흉폭한 죠스가 떠오르게 된 관객들은 바다로 들어가길 꺼리며 백사장에서만 머무는 화면 속의 피서객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긴장이 풀린 피서객들이 바다로 들어가서 즐겁게 놀기 시작하게 되면 관객들의 불안은 증폭된다.

 

관객들은 누군가가 죽게 될 것을 걱정하지만 동시에 어떤 인물이 죽게 될까 하는 의문도 품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된다. 곧 어떤 소년이 죠스에게 잡아 먹히고 해변은 폐쇄되고 죠스의 목숨엔 현상금이 걸린다. 그리하여 멜빌의 소설 ‘백경’의 주인공인 에이헙 선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된 상어전문사냥꾼인 퀸트 선장과 가방끈이 길고 돈도 많은 젊은 해양학자, 물을 두려워하는 도시출신의 경찰서장은 죠스를 잡으러 떠난다. 작은 배 위에서 벌어지는 후반부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죠스와의 대결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적재적소의 쇼트들과 박진감 넘치는 편집 그리고 영화음악의 힘을 빌어 죠스가 최후를 맞는 과정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보여준다.

 

 

자, 그럼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준 해프닝에 대해 알아보자. 애초에 스필버그는 죠스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죠스와 같은 크기와 생김새의 모형상어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 만들어진 모형은 실제 촬영 시 고장과 오작동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진퇴양난의 스필버그는 죠스의 모습(모형)을 보여주는 대신 메인 테마와 죠스의 시선 쇼트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힌 피해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비명과 붉은 피 같은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흉폭하고 거대한 죠스의 존재감을 성공 적으로 창조해냈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부표를 잡고 농담을 주고받고 웃으며 육지를 향해 헤엄쳐가는 해양학자와 경찰서장의 정겨운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증 하나를 품어본다. 왜 두 남자는 퀸트 선장의 죽음에 그 어떤 애도도 표하지 않았을까? 최초의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는 대량의 상영관에서의 동시개봉과 대대적인 광고를 동원해서 여름 휴가철 맞춤 액션 스릴러 공포물의 효시가 되었고 동시에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작은 걱정을 하나 선물했다.

 

나는 바다로 들어가 수면 아래가 보이지 않는 깊이까지 헤엄쳐 간다. 그러다 숨이 슬슬 차오르면 헤엄을 멈추고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저 멀리 해변을 바라본다. 그 순간 어디선가 몰려온 차가운 조류가 다리 사이를 지나가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러면 나는 마음 속으로 ‘죠스는 영화다. 죠스는 영화일 뿐이다’ 라고 되뇌지만, 어느 새 몸은 해변을 향해 헤엄쳐간다. E장조와 F장조만 사용한 그 메인 테마가 들려오기 전에 말이다.

 

 

  글쓴이 = 송예섭 영화감독  

정리=현의경 기자 jungwa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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