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스롱고는 긴 바위라는 뜻이다. 나의 첫 볼로미테였다. 어디서나 첫 인상은 상대를 판단하는데 큰 영향을 마친다. 싸스랑고는 경이로운 돌 산이었다. 이탈리아인이 '산들의 산책로'라는 돌로미테 첫 인상, 보자마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 트레킹의 총감독인 고재열 감독의 차를 타고 굽이굽이 찾아갔다. 가는 동안 고 감독은 “먼저 감동하지 마세요. 이건 에베레스트 가기 전에 설악산 지리산에 감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웃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신이 빚은 듯한’ 솟아있는 바위 산들, 구름모자를 쓴 산 이마와 푸른 초원에 뛰는 말, 양떼들이 신비로웠다. 마치 산수화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광경이었다.
미남자 이탈리아인 현지 트레킹 가이드 프란체스코는 잘 생겼다. 여성들에게 심쿵하게 한 외모로 인해 인기가 높았다. 그가 길을 멈추면서 장소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했다. 영어였다.
싸스롱고는 마치 땅에서 치솟아오른 듯한 수직 절벽을 이뤘다. 산 이마는 내내 운무에 휩싸여있다 어느덧 제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 산을 라운딩 트레킹, 발 아래는 초원의 빛무리가 계곡을 타고 병풍같이 둘러선 수많은 산군으로 이어졌다.
걷다가 올려보면 수직 절벽, 길은 편한 흙길이었다가 자갈길이었다. 그리고 바위에서 낙수가 떨어지는 구간, 빙하가 있는 산비탈, 모래길과 초원길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
낙수구간을 지나 빙하가 남아 있는 구간이 보이는 절벽 아래에 죽어있는 새들이 누워있었다. 빙하는 먼지가 끼어 더러운 모양이라 실망이었지만 신기했다. 새들은 물기에 젖은 벽에 안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죽었다.
“찍으면 인생샷”이라는 일행의 감탄 속에 절벽 아래서 생을 마감한 새들과 먼지낀 빙하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마침 이탈리아 환경단체는 돌로미테 최고봉 마르몰라다산 빙하의 두체가 하루에 7~10cm씩 줄고 있다고 발표했다. 프란체스코는 “2040년에서는 더 이상을 못본다”며 마르몰라다산을 가리키며 우울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려가는 듯하면 올라가고, 다시 평지인 듯하면 산모퉁이를 길게 돌아갔다. 프란치스카가 멈춰 운무에 휩싸인 싸스랑고 산정상부를 가리켰다. 정말 파란 하늘 속에 잘 생긴 이마가 드러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산 발목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 마지막 여정을 앞두고 급경사를 오르는데 힘이 힘들었다. 나귀들이 트레커를 쫓아오는 그 언덕에서 나는 벌러덩 쓰러졌다. 다시 출발을 재촉하는 소리에 다시 일어났다. 새 목표물은 산장이었다.
산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리가 후들, 충전이 바닥난 듯한 상태였다. 고개에서는 정말 기절할 만큼 힘이 들었다. 어제 송은관 산악대장과 막내 노영래가 타이레놀과 감기약을 주어 먹었는데도 감기 기운이 남아있었다. 다들 산장에서는 점심을 기다렸다.
수많은 트레카들이 피자와 스파게티 등을 먹고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나. 끼를 채우니 내 몸도 급속하게 충전되었다. 산장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도 다시 눈에 보였다. 밖의 안내판에는 영어는 없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독일어)어로 되어 있었다.
■ 9월의 메리크리스마스! 온천에서는 연인 커플이 꽉 안고 입맞춤
카나제이 마을에서 하루 밤을 보낸 다음날은 비가 예보가 있어 마르몰라다 산행 대신 우비를 입고 숲길을 걸었다. 가는 중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키가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트레길 길을 가는 도중에 엄청난 폭설로 변했다.
산장에서 점심을 먹는데 눈발은 멈추지 않았다. 9월에 보는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들 환호성이었다. 하산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희한한 풍경을 찍어댔다.
중부 유럽은 100년만의 폭우로 홍수 피해 사망이 속출했다는 뉴스를 나중에 검색해보고 알았다. 역시 여행의 8할은 날씨라는 말은 정답이었다.
하산길에 특별한 트레커도 만났다. 네덜란드 이주 한국인 60대 여성이었다. “한국에서 왔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녀는 “돌로미테에는 하루 1000미터를 오르내릴 만한 봉우리가 많다. 나는 6월에 야생화 풍경, 여름 피해 9월, 한 해 두 번씩 혼자 찾아온다. 1주일 정도 묵으며 많은 봉우리들을 돈다. 가성비도 좋고 풍경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카나제이에서 노천온천에도 갔다. 남녀가 수영복을 입었다. 수압이 강해 전신마사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노천에서도 구석으로 여러 온천 방에서는 어김없이 달라붙어 입맞춤을 하고 있는 연인들이 있었다.
돌아오는 마지막 피자집에서 손바닥보다 2~3배가 큰 피자를 시켰다. 여전히 짰지만 적응해가가는지 덜 짰다.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알아본 서빙하는 여성은 글로벌 빅히트한 한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봤다고 좋아했다.
이 동네는 겨울에만 난방이 가동된다. 그래서 여름이나 가을에 추위가 급습해도 난방 요청을 거절했다. 그래서 이틀간 호텔방에서 잠을 청해도 몸은 오들오들했다. 감기는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지만 점점 회복이 되었다. 고 감독이 준 자신의 산악용 침낭형 얇은 이불도 따뜻했다.
하지만 볼로미테는 반전 매력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보내다니! 9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