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표적인 면(麵)류 중 하나가 냉면이다. 냉면은 전형적으로 북한 음식이다. 재료는 평양냉면은 메밀, 함흥냉면은 감자 등 전분이다. 메밀이 식감이 더 부드러운 편이다.
기호에 달라지지만 평양냉면은 어느덧 한국 ‘면식순례’의 톱 브랜드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의정부에서 시작한 필동면옥과 을지면옥, 그리고 장충동에서 출발한 평양면옥이다. 의정부 평양면옥 두 자매가 충무로를 중심으로 패권을 잡았다. 이후 ‘장충동 평양면옥파’가 양분한다.
면식범이자 국수주의자(국수를 좋아하는 뜻)이면서 평양냉면애자로서 필자 최애 평양냉면집 ‘필동면옥’을 소개한다.
■ 맑은 육수와 고춧가루가 뿌려진 고명, 면발이 부드럽다
필동면옥은 ‘면식범’인 필자의 최애 면식수행의 수행처다. 우선 육수물은 맑다. 삶은 계란 반쪽이 그 육수 위에 떠있다. 면 위에는 고춧가루가 뿌려졌다. 거기에 편육 하나와 조각파...
이 집의 맛의 하이라이트는 면발이다. 부드럽고 촉촉하다. 고소하게 씹히는 느낌이다. 맑은 육수과 고춧가루에다 제육과 수육 한점이 더해진 비주얼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때로 ‘슴슴하다’고 생각했다.
냉면 육수는 돼지고기(삼겹살) 소고기(사태)를 같이 넣고 삶은 물이다. 이북에서는 동치미 국물로 냉면을 했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날씨가 안맞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평양냉면의 명성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슴슴하고 밍밍하고 섬세한 육수에서 나온다.
전에 일간스포츠라는 스포츠-연예 전문 신문사에 다녔다. 사무실이 인근 한국의 집 옆 매일경제 건물에 있었다. 그때 한국의집-한옥마을-남산산책로와 함께 자주 가는 곳이 필동면옥이었다.
당시 필동면옥에서 냉면과 수육으로 소줏잔을 부딪쳤던 선후배들은 어디로 갔을까? 술을 먼저 먹고 면은 나중에 하면서 ‘先酒後麵(선주후면)’을 주장했던 그들은...맛에는 추억이 배어든다. 그런 추억이 더해져 필동면옥은 나의 최애 평양냉면집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아이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갔었는데 아들이 군에서 휴가 나올 때 누나랑 피자집이 아니라 필동면옥으로 가서 평양냉면을 먹었다. 그 이야기에 절로 기뻐했다. 어떨 때면 마치 자석처럼 스스로 찾아가는 곳이 필동면옥이다. 그리워하는 맛도 유전이 되나?
새삼 알게된 것은 어느덧 이북의 겨울음식이라는 평양냉면이 서울의 대표 여름음식이 된다는 것이다. 즐거운 세태다. ‘면식수행자’에게 어찌 기쁘지 않은가.
■ 을지로를 평정한 의정부 자매, 필동면옥-을지면옥 그리고 평양파 평양면옥
의정부에서 시작한 ‘의정부 평양면옥’은 한국 평양냉면 계보 중 최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양(보실면옥) 출신 김경필씨가 1.4후퇴 때 월남해 1969년 개업했다. 경기 연천에서 1987년 의정부로 옮기며 ‘의정부파 평양냉면’ 신화가 시작되었다.
맏아들은 ‘의정부 평양면옥’을 맡았다. 둘째 딸과 둘째 딸은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을 운영중이다. 셋째 딸은 강남구 잠원동 ‘의정부 평양면옥 강남점’을 맡아 가업을 잇고 있다. 이처럼 ‘의정부파 평양냉면’파는 충무로의 평양냉면을 패권을 손에 쥐었다.
의정부파 부모로부터 냉면 노하우를 서울에 접목해 성공한 평양냉면에 진심인 ‘면식범’들을 열광하는 출발이 되었다.
을지로에서 사랑받았던 을지면옥은 이제 낙원동으로 이전해 오픈했다. 을지면옥은 낡은 건물으로 평양 대동강 사진이 있는 통로를 지나면 노인층이 유독 많은 집이었다. 낮에도 약주를 마시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기억난다.
원래 을지로3가역 앞 서울시 문화유산이었는데 주변 개발하면서 수년간 소송전 끝 2022년 철거되면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낙원동 종로세무서 뒤로 이전해 지난 4월 22일 재오픈했다. 바야흐로 을지라는 이름과 다른 낙원동시대가 열렸다.
여기에도 필동면옥처럼 냉면 위에 고춧가루를 뿌린다. 편육과 수육이 하나 추가, 파 조각이 육수 위에 떠 있다. 면은 부드럽고 필동면옥에 비해 육수는 탁하지만 냉면 맛은 고소한 편육과 곁들여 절로 낮술을 부른다.
‘장충동 평양면옥파’의 원조 평양면옥은 실향민들이 고향의 육수 맛을 간직한 최고의 냉면집으로 꼽는다고 입구 안내판에 광고한다. 동대문 패션상가와 장충동 족발 거리에 위치한다. 평양에서 1대 김면섭시가 대동면옥을 운영, 서울에서는 며느리 변정숙이 평양면옥을 시작했다. 큰 손자는 장충동, 작은 손자는 논현동, 둘째 중손녀는 도곡동, 막내 증손녀는 신세계에 오픈했다.
우선 비주얼이 다르다. 이 집의 육수는 필동면옥처럼 말갛다. 아니다 좀 탁하다. 면을 둥글둥글 말아서 대접 가운데 올려져 있다. 반으로 쪼개 그 위해 계란 모습 그대로 올려져 있다. 그 아래 편육이 있고 잘게 잘라진 파가 살짝 뿌려져 있다. 고춧가루는 없다. 대신 오이를 얇게 썰어 무와 함께 육수 위에 있다.
맛은 슴슴하다. 면은 밋밋한 육수와 향기가 스며든 적당하게 끊어진다. 담담하지만 중독적이다. 편육과 접시만두도 맛이 좋다. 이곳에는 젊은이들과 가족들도 북적인다. 평양면옥은 필자가 남산둘레길을 걷고 국립극장-장충체육관을 내려 신라명과를 지나 찾아가는 동선에 있다.
물론 이같은 평양냉면 3대장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필자가 방문하고 맛봤던 느낌과 정보를 통해 내린 주관적인 평가다. 무림 고수처럼 자신의 누들학파가 지존이라고 우길 생각이 없다. 왜 을지로 4가 4번 출구 앞 우래옥 평양냉면에는 파란 김치가 올려놓여진 이유를 묻지 않는 것처럼. 우래옥은 이북 출신 최초 냉면집이다.
을밀대 봉피양 우래옥 평래옥 남포면옥 정인면옥 능라도 진미냉면 등 평양냉면이 일반인들에게도 시민권을 얻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남북정상회담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는 말이 신드롬으로 변했다. 이후 평양냉면은 국수주의(?)자들의 애호식이 레벨이 상승했다.
■ 필동면옥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한 길’
필동면옥을 찾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중 지하철과 도보, 승용차로 가는 방법이 있다.
지하철은 이제 영업중단을 선언한 3호선 전철 충무로역 인근 대한극장에서 5분 정도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필자는 남산둘레길을 좋아한다. 마포 공덕동집에서 효창공원과 숙명여대를 지나 용산고에서 좌회전하면 남산 김구광장이다. 거기서 남산둘레길의 케이블카 주차장 인근에서 국립극장까지의 40분 포장도로 걷는 길이 나온다.
끝이 국립극장으로 내려가는 방향과 남산타워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남산타워로 가는 큰 길에서 500미터 지나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남산둘레길이다. 이 길을 한바퀴를 돌면 약 2시간이다.
길은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같이 대화를 하면서 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이 되었다. 도란도란 걷다면서 서울 안에서 이런 명상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래서 팔도소나무원과 습지원을 지나 다시 포장도로를 내려오면 소월시비와 남산도서관, 안중근 동상과 삼순이계단을 내려오면 한바퀴다. 여기서 남산왕돈까스보다 필동면옥으로 걸어간다. 아니면 국립극장 길로 바로 내려가 장충동 평양면옥으로 간다. 살이 안찐다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한 길이다.
참, 최근에는 미국에서 찾아온 어느 게임사 대표랑 남산둘레길을 2시간 걷고 필동면옥에서 평양냉면과 접시만두를 먹었다. 물론 그도 “최고”라고 환호했다. 고수들에게 냉면 한그룻이 정직하고 거짓이 없다. 먹고 싶고 또 먹고 싶은 면식범들의 환호성이 충무로에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