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리의 행동이 국가와 군의 존엄을 훼손했다.”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38) 태국 총리가 훈센(Hun Sen, 74) 전 캄보디아 총리 간의 전화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태국 정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지난 6월 중순, 두 사람의 전화 통화 내용이 온라인에 유출되었다. 국경 충돌로 인한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유출된 통화에서 패통탄 총리는 훈센을 '삼촌'이라 불렀다. 태국 동북부 군사령관을 **'상대'**라고 언급했다.
이에 군부와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통화 유출 직후인 6월 19일, 연립정부의 주요 보수 파트너였던 부므짜이타이당이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연립정부 내 제2 당인 품짜이타이당이 연정 탈퇴하고 패통탄 총리 불신임투표를 추진하자 일순간에 패통탄 내각은 존립 위기에 놓였다.
연정 탈퇴가 현실화되면 패통탄 총리가 이끄는 푸어타이당(Pheu Thai) 연정은 과반 의석 확보가 불투명해진다. 추가 탈당이 이어질 경우 조기 총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패통탄 총리는 파문 확산을 막기 위해 6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군 수뇌부와 나란히 선 채 대국민 사과를 전했다.
이어 6월 21일에는 문제의 발언 대상이었던 북동부 군사령관 부언신 팟끌랑 중장을 직접 찾아가 유감을 표하고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태국 정부는 통화 유출에 대해 캄보디아에 항의하며 외교적 불만도 표명했다.
다행히 민주당과 찻타이팟타나당 등 다른 연정 파트너들은 아직 이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지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보수 야당과 군부 내 강경파의 압박이 계속될 경우 정국은 언제든 격변할 수 있다.
이번 정치적 위기의 키워드는 20년 넘게 이어져 온 태국 정치의 근본적인 대립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다름아닌 친 탁신과 보수·군부 진영 전선이다.

패통탄은 전 총리이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탁신 신나왓(Thaksin Shinawatra, 76)의 막내딸이다. 그 가족 모두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전력이 있다.
패통탄 총리는 2001~2006년 재임한 아버지 탁신, 2011~2014년 내각을 이끈 고모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에 이어 탁신 집안에서 배출된 세 번째 총리다. 태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다.
■ ‘에머럴드 트라이앵글’ 지역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이 약 10분간 총격전
2025년 5월 28일 태국 우본랏차타니주 남단, 캄보디아와 맞닿은 ‘청복(ChongBok)’ 또는 일명 ‘에머럴드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이 약 10분간 총격전을 벌였다. 이 충돌로 캄보디아군 병사 1명이 사망하고 수 명이 부상했다. 인근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양측은 상대방이 먼저 발포했다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캄보디아는 태국이 먼저 사격을 가했다고 했으며, 태국은 캄보디아가 불법 진입해 대응 사격했다고 반박했다 .
총격전 직후 양국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듯했으나, 상황은 곧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했다. 태국은 국경 순찰을 강화하고 일부 검문소 운영을 축소, 육로 관광객의 출입을 차단하는 제재 조치를 시행했고, 캄보디아는 대응 차원에서 태국산 농산물·미디어 수입을 제한하고 태국 관련 인프라에 대한 인터넷·전기 공급을 끊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군사적 긴장도 해소되지 않았다. 6월 7일 태국 정부는 국경 지역의 군부대 증강을 공식 발표했으며, 6월 2일 캄보디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ICJ 제소를 결정했다. 양국은 JBC(공동경계위원회) 회의를 통해 협상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여기에 양국 정치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개입되면서 사태는 외교안보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었다. 특히 6월 15일 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와 캄보디아 훈센 상원의장 간의 사적 통화가 유출되면서 태국 내정은 급속히 동요했다.
해당 통화는 패통탄 총리가 훈센을 “삼촌”으로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어 접경 지역을 지키고 있는 태국 제2군 사령관을 겨냥해 “삼촌이 2군 사령관처럼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등의 언급을 하며 비공식적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적 파문이 크게 번졌다.
■ 훈센 “패통탄 총리, 분씬 사령관 모욕은 태국 국왕에 대한 모욕”
태국과 국경 분쟁 중인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 센 상원의장은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며 패통탄 총리와 통화한 내용이 유출된 데 대해 “태국 총리가 어떻게 그들의 국가에 추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태국에 알렸다”고 밝혔다.
이어 “패통탄 총리가 분씬 사령관을 모욕한 것은 사령관을 임명한 태국 국왕에 대한 모욕이다.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총리가 태국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며 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시했다.
또한 “패통탄 총리의 부친이자 평소 자신과 가까운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자신과 대화에서 태국 국왕을 모욕했다. 민감한 대화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했다.

김홍구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 이면에는 탁신 전 총리와 훈센 전 총리 간의 사적 유대가 자리잡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이후 탁신은 캄보디아에서 일시적으로 훈센의 보호를 받았다.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의 경제 자문으로도 임명되었다. 이들의 관계는 통신, 카지노 사업 등과 얽혀 정치적 의혹의 중심에 있으며, 보수 진영은 이를 ‘프어타이–캄보디아 커넥션’으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