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17] 부패와 뇌물의 예술(1)

  • 등록 2026.03.14 06: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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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학자 또안아잉,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병폐 진단

 

 

권력은 본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위임된 것이지만, 그것이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때 사회는 빠르게 병들어 간다. 특히 행정 권력이 법과 제도를 빌미로 국민을 통제하는 위치에 설 때, 그 힘은 정의의 수단이 아니라 착취의 장치로 변질되기 쉽다. 역사는 이러한 사례를 반복적으로 보여 왔다.

 

베트남 학자 또안아잉(Toàn Ánh)이 1970년에 펴낸 『부패와 뇌물의 예술』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실려 있다.

 

“부패는 후진 민족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가장 음험하고도 치명적인 재앙이다. 중국은 부패로 인해 결국 공산 세력의 손에 나라를 빼앗겼다. 공금을 착복하고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가 중국 국민당을 패배하게 했으며, 한국에서도 이승만 정부가 바로 이러한 부패 문제로 인해 흔들리다가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그는 부패를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구조적 병폐로 보았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읽다 보면 낯설기보다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군수(현감)의 봉급은 80동이었는데, 그 정도면 자동차를 굴리고 고층 집을 소유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관리들처럼 승진하거나 특별한 자격을 얻고 싶다면, 봉급만으로는 부족했고 스스로 돈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했다.

그 고을에는 두 명의 군수가 있었다. 한 사람은 돈을 잘 긁어모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전자는 이 방면에서 워낙 유명해서, 그의 양심 없는 행태와 정교한 술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법을 공부한 그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법을 이용해 동포들의 골수를 빨아먹는 자였다. 누구든 그의 손에 걸리면, 돈을 내놓지 않고서는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어리숙한 군수가 그를 찾아왔다. 그 역시 법을 공부한 동문이었고,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여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네는 대체 어떻게 하길래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가? 자네 고을에는 기름진 땅이 많아 돈을 쉽게 만질 수 있나 보군. 나는 중책을 맡고 있어 월급 외에 조금 벌기는 하지만, 차에 기름 넣고 화투나 치는 정도가 고작이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돈이 있고 없기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일이지. 기름진 땅이 어디 있겠나. 백성들이 스스로 돈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린다면,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네. 백성들이 알아서 바치도록 만들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야 돈이 생기는 법일세.”

 

“설령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한들,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기회를 기다리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거야. 자네, 한 번 둘러보게. 우리 주변에는 온통 백성들뿐이지 않은가. 백성들에게 돈이 있을 리 없지. 나는 삽질할 생각이 없네. 언제 저들의 돈을 캐내겠나. 나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어. 내가 더 빼앗지 않는 건, 저금해 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그날 오후 네 시쯤, 두 사람은 관청을 나서 돈 버는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군청 앞에는 여러 마을을 지나 다른 성으로 이어지는 큰길이 있었는데, 마침 그 길로 장례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그가 말했다.

“저기 장례 행렬이 있군. 만약 내가 저기서 돈을 뜯어내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네. 자네, 잘 보게.”

“장례 행렬에서 돈을 뜯어낸다고? 무슨 수로? 쉽지 않을 텐데.”

“두고 보면 알 걸세. 내가 말하지 않았나. 언제라도, 누구의 것이든 원하면 된다고. 우리 주변에는 늘 백성들이 있지 않은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관청으로 들어가, 서 있던 병사의 이름을 부르며 명령했다.

“자네, 가서 저 장례식의 상주를 불러오게. 물어볼 것이 있네.”

병사가 달려가 상주를 불러오자, 장례 행렬은 놀라 멈춰 섰다. 잠시 후 상주가 군수 앞에 섰다.

“어느 마을의 장례인가?”

“저쪽 마을입니다.” 상주는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지금 어디에 매장할 예정인가?”

“저 들판에 있는 공동묘지입니다.”

시골에서는 두세 개 마을이 하나의 공동묘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장례를 치르려면 여러 마을을 거쳐 가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망자와의 관계는 무엇이며, 어떤 병으로 죽었소?”

“예, 제 아버지이고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망신고는 했소? 의사의 검안소견서는 있겠지요?”

“예, 사망신고도 했고 의사가 검안했으며, 매장 허가서도 받았습니다.”

군수는 사망신고서와 매장 허가서를 요구했다. 상주는 사람을 보내 집에서 서류를 가져오게 했고, 그동안 장례 행렬은 꼼짝없이 멈춰 서 있어야 했다. 군수는 그사이 가정 형편과 병의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잠시 후 서류가 도착했다. 군수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이 두 서류만으로는 부족하네.”

상주는 놀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텐데요. 사망신고서도 있고 매장 허가서도 있습니다.”

“내가 법을 모를 것 같나? 아직 부족해. 자네, 저쪽 마을 사람이지? 그런데 장례 행렬은 이쪽 마을을 지나가고 있어. 이장에게 보고했나? 그리고 이장이 통과를 허락했나?”

상주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멍해졌다.

“저희는 그런 생각까지는….”

“무슨 생각? 자네들 공공위생이 무엇인지 아나?”

군수는 병사에게 명령했다.

“저 장례 행렬을 그대로 붙잡아 두게. 그리고 이장을 당장 불러오게.”

병사가 뛰어나갔다. 상주는 다급히 애원했다.

“군수님, 제발 아버지를 매장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망자를 이렇게 길에 세워 두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군수는 호통을 쳤다.

“도리? 위생법을 어긴 것이 더 큰 문제야. 자네들을 재판에 넘겨야겠네. 그리고 이장 놈은 직무 유기야. 목을 잘라야 마땅해!”

그는 소리를 지른 뒤 친구를 데리고 내실로 들어갔다. 상주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네 봤지? 바로 이런 데서 돈이 나오는 거야. 촌사람들이야말로 우리 관리들에게는 무진장한 창고지. 부자도 돈이 있어야 살고, 가난한 우리도 돈이 필요하지 않겠나.”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수완에 완전히 눌렸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이장이 관청으로 불려 왔다. 군수는 그를 보자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자네,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위생법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나? 저 장례 행렬이 자네 마을을 지나가는데, 허가를 내주었나?”

이장은 오는 길에 병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터라, 군수의 말을 듣고 몸을 떨며 대답했다.

“예, 군수님… 예나 지금이나 늘 그래 왔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군수는 다시 호통쳤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는 공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나? 관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 바로 위생법이야. 자네는 전혀 관심이 없군. 도청에 보고해 자네 목을 자르게 하겠네. 만약 망자가 전염병이라도 옮겼다면 어찌할 셈인가? 자네 마을뿐 아니라 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셈인가!”

그는 말을 마치고 지팡이를 짚은 채 내실로 들어갔다.

이장은 잠시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상주를 바라보았다. 도청에서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날 밤, 그는 적지 않은 돈인 백 냥을 바쳤다.

상주 역시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60동을 바쳤다. 군수는 크게 만족하며 위생과 전염병에 관해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은 뒤, 마침내 매장을 허락했다.

군수의 친구는 그의 돈 버는 재주에 감탄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진정으로 드러나는 것은 한 개인의 수완이 아니다. 법은 본래 질서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이 군수에게 법은 위협의 도구였고, 위생은 명분이었으며, 행정 절차는 돈을 짜내는 장치에 불과했다. 그는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법을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이었다.

 

장례 행렬은 슬픔 속에서 길 위에 멈춰 섰고, 상주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키기 위해 돈을 바쳐야 했다. 이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모두가 벌을 받았다. 그날 관청 앞에서 확인된 것은 단 하나였다. 백성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금고와 같다는 사실이었다.

 

“백성은 관리의 봉이다.”

 

이 말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권력이 견제받지 않을 때,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을 때, 그리고 공직이 봉사가 아니라 특권이 될 때, 백성은 자연스럽게 ‘봉’이 된다. 삽질하지 않아도, 땀 흘리지 않아도, 관리의 지팡이 한 번, 서류 한 장이면 돈이 생기는 구조 속에서 말이다.

 

이 이야기가 과거 식민지 시절의 한 지방 관청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 구조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권력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순간, 법은 가장 정교한 약탈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패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며, 결국은 공동체의 존립을 흔드는 문제다.

 

또안아잉이 부패를 “가장 음험하고도 치명적인 재앙”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패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의 뿌리를 갉아 먹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뿌리가 썩어 있음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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