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0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갖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인도네시아에서 2013년 12월 무렵 경험했던 일입니다.
인도네시아 제3의 도시 반둥 남쪽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틈나는 대로 단지 내 수영장을 방문했습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현지인들이 주로 수영장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이 없지?”
젊은 여성들조차도 반바지 혹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갈 만큼 비키니 차림의 여성을 마주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히잡(Hijab, 무슬림 여성들이 얼굴 등을 감추기 위해 쓰는 가리개)을 포함해 입던 옷 그대로 물장구를 치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약 85%인 2억2000여만 명이 이슬람교를 따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거주하는 국가입니다.
비록 국교는 아니지만, 이슬람교가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관계 고위직 등에 진출한 비 무슬림이 여전히 손에 꼽을 정도인 점, 경기가 침체되면 전통적으로 상권을 장악해 온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즉 화인(화교) 대다수가 믿는 기독교를 겨냥한 시위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점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슬람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중 하나로 여성 인권 차별이 거론됩니다. 보수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이슬람교의 입김 속에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해왔다는 지적입니다.
비 이슬람권이 고개를 가로젓는 상징적인 제도로 일부사처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이슬람 율법은 한 명의 남편이 최대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일부사처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얼마 전 동부 자바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취임식에 세 명의 아내를 데려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전근대적 관습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온 일부사처제의 기원은 유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잇따른 전쟁과 이에 따른 남성들의 사망으로 양산된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사처제가 탄생했다는 설명입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부인을 경제적으로 동등하게 대해야 하는 까닭에 일부사처체를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반면 인도네시아 사회에 여성을 위한 배려가 존재하는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근열차,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의 여성 전용 공간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처음 자카르타 도심의 버스 전용 차선을 달리는 ‘트랜스 자카르타(Trans Jakarta)’ 버스에 탑승했을 때, 여성 승객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여성들만 가득한 가운데 여성 전용 공간 알림판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옆 공간으로 이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렇듯 인도네시아의 여성 인권은 지배적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무슬림 여성 대부분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지 못하는 것도 여성의 노출을 터부시해 온 종교적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가치 판단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람교가 국교에 가까운 역할을 담당하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공고해져 온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성을 존중하는 제도 및 장치가 부족하나마 도입돼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인도네시아 사회를 한 꺼풀 벗겨 보기 위한 키워드로서 이슬람교를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글쓴이=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 junghwanoppa@gmail.com
방정환은?
매일경제신문 기자 출신으로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로 재직 중이다. 2013년 한국계 투자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래로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입문 교양서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