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문화 경제 미디어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신년을 맞아 신남방정책을 현장을 해부하는 야심적인 기획을 준비했다. 바로 '정호재의 緬甸통신'과 '정호재 新加坡통신'이다.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번역도 했다. 緬甸은 미얀마의 한자표기고 新加坡는 싱가포르 한자 표기다. [편집자주]
新加坡통신 ① 동양의 아테네 or 스파르타?
싱가포르서 3년 가까이 비즈니스가 아닌 주로 공부를 하면서 살았다. 좁은 도시국가라지만 한국인의 눈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초반 2년은 중산층에 속한 콘도에서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며 살았고, 2019년 하반기 몇 달은 '동가식서가숙'하며 싱가포르 현지인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지냈다. 그 덕분에 적잖은 싱가포르 사람을 만났고, 물론 아주 많은 한국 사람과 이곳에 일하거나 공부하러 온 다수의 아세안 사람도 만났다.
그러니까 싱가포르는 아세안 지역의 일종의 경제수도와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쌓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속될 아시아-해양문명 시대의 주도권을 놓지 않을 것이란 야심을 감추지 않는 동네였다.
싱가포르는 일견 "동양의 아테네"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동남아의 스파르타"와도 비견되는 특징도 갖고 있는 무척이나 이중적인 도시국가였다. 앞으로 이 자리를 통해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의 문화와 경제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풀어내고 싶다.
1. 국제무역항 시민들..."이주민" vs "시민권"
싱가포르가 작은 나라라 뭔가 묘사하기 쉬울듯 하지만 무척이나 이중적이고 까다로운 나라다. 당장 중국의 주요 화교 집단에 대한 이해와 그 사이의 경쟁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1차적 설명이 가능하고, 거기에 14% 이루는 말레이계와 9% 인도계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가장 먼저 싱가포르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대목은 일반적인 영토국가와 달리 주로 이주민으로 구성된 무척이나 이질적인 사회라는 점이다. 인종 이외에도 뚜렷한 두 개의 뚜렷한 시민-계급 집단이라는 대립항이 눈길을 끈다.
첫째는 시민 vs. 외국인이다. 싱가포르에서 시민권은 그 무엇에 우선한다. 시민권이 무척 강력하기에 외국인이 내국인에게 법적으로 대항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싱가포르에는 무척이나 다종다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일하고 있는 사회다. 그 때문인지 시민권의 존개감이 무게감을 더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덕분에 집주인들의 텃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소한 분쟁이 발생해도 "나는 내국인인 걸 너 같은 외국인 따위가"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간단히 제압해 버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익히 배웠던 만민평등이나 외국인 특혜 같은 건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는 연봉의 격차에 따른 부자 vs 빈자의 구도다. 싱가포르에 2억 원을 훌쩍 넘기는 연봉을 자랑하는 초일류 외국계기업의 직원들이 즐비한 것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 가구소득 5000만원 미만의 차상위 계층도 의외로 적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부유한 사회지만 양극화 경향도 강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점심 밥값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중산층 이상은 2만 원짜리 이상의 점심을 먹고 그 이하는 4000원짜리 점심이 익숙하다. 흥미롭게도 1만 원 짜리 점심은 여러 조건 탓에 한국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2. 거세된 정치, 관심은 돈?
싱가포르는 무척이나 심심한 사회다. 우선 영토의 크기가 작은 탓이다. 이끝에서 저끝까지 1시간 반이면 이동이 가능한 사회다. 주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에 반찬을 사서 퇴근해 집에서 먹는 게 일상의 전부다. 적도 기후인 탓에 사람들이 술을 즐겨마시는 것도 그다지 환영 받진 못한다. 물론 주류세와 담배세금이 높은 탓도 그 이유가 된다.
때문에 해외여행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스포츠 정도가 유일한 탈출구일 듯 싶다. 실제로 싱가포르 중산층은 유럽이나 선진국으로의 해외여행에 아주 많은 돈과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좁은 땅에서 높은 장벽을 유지하면서 살다보니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면 그 스트레스를 어디에 풀 수가 없어보인다. 유흥과 정치가 사실상 통제됐지만 상대적으로 해외 스포츠와 문화 콘텐츠는 전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게 소비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싱가포르의 영국 프로축구(EPL) 사랑은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쫓아 들어가면 싱가포르 사회가 무미건조한 이유는 정치활동이 억제당하고 있는 탓도 무시 못한다. 최근 싱가포르의 선거결과를 보면 여당과 야당의 득표율은 5.5 대 4.5 정도로 팽팽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미디어에서 야당 관련 뉴스를 접하는 것은 무척이나 희귀한 일이다. 신문과 방송이 야당 소속 정치인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독립 이후 정부 여당이 독주해온 사회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정권교체와 정부비판 목소리가 높은 사회에서 온 사람은 상당히 무미건조하고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로 보이기 십상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싱가포르 중산층들은 좁은 곳에서 사는 스트레스를 돈 버는 것으로 푼다고 한다. 저축하고 펀드 가입하고, 해외 주식투자해서 고급 콘도나 아파트 사는 게 최고의 지상목표다. 일부는 아주 많은 돈을 벌어 호주 퍼스나 영국으로 이민을 실제로 실천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최고 엘리트인 정부고위 관료들은 10억 대가 훌쩍 넘는 연봉을 받으며 세계적 자본의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싱가포르 국민이나 정부 모두 끊임없이 재테크에 열심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뚜렷한 개성 강한 개인들이 돋보이기보다는 정부의 존재감이 너무 커보이는 나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언제나 과학적이고, 전략적이며, 무척이나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를 선점하고 국민들을 이끌고 있다. 쉽게 약점이나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그런 철벽수비를 자랑하는 수문장 같은 느낌이다.
반면 개인들은 좌절된 정치적 욕망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새로 건국한 싱가포르라는 새로운 사회와 개인의 성취(재산)를 통해 에둘러 표현하는 모양새가 됐다. 물론 이 같은 거친 묘사는 어느 정도 단편적이고 한계를 갖는다고 본다. 오히려 미국 사회처럼 "용광로" 같은 사회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싱가포르를 설명하고 이해해야할까? 당분간 필자도 무거운 숙제를 짊어진 셈이 됐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의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