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해 ‘왓츠앱’을 통해 관련 속보 서비스를 진행중이다. 왓츠앱은 한국의 카카오톡과 거의 흡사한 서비스로 거대한 카톡 단톡방과 다를바 없다. 한 번 가입이 되면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현재 싱가포르의 바이러스 감염 관련 속보를 매일 수차례나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니 시민 입장에서 무척이나 편리한 서비스다.
그런데, 싱가포르가 보여주는 통계는 다른 나라와 확연하게 다르다. 한국의 경우, 지역별 감염과, 해외유입과 국내 발생 정도가 가장 유의미한 분류가 된다. 필자의 왓츠앱으로 전달된 4월 26일자 ‘확진자 통계’ 메시지를 통해 싱가포르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4월 26일***
신규 확진자: 931
해외 입국자: 2
커뮤니티 내 확진자: 18 (싱가포리언/PR: 13, 워크패스:5)
워크퍼밋 소유자: 25 (도미토리 밖 거주자)
워크퍼밋 소유자: 886 (도미토리 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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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총 확진자: 13,624 명
인구 600만의 작은 도시에 신규 확진자가 하루 900명이 넘는다면 누구라도 무척이나 심각한 단계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사정을 잘 사람이라면 이 정보를 읽고 그리 크게 걱정할 리가 없다.
900명 가운데 싱가포르 사람은 불과 13명만 걸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머지는 다 해외노동자들 사이에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싱가포르 사람들은 살짝 안심을 하는 식이다. “싱가포르는 아직은 괜찮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1. 인구 400만 소국의 생존방식 "노동력 수입"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다. 좌우로 40km 남짓한 크기로 서울보다 약간 큰 부산 크기에 불과하다. 이 얘기는 시속 40km로 움직이는 차를 타면 1시간 남짓이면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구는 570만 정도가 되는데, 작은 나라답지 않게 인구통계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국가다. 왜냐하면 아주 세분화된 비자제도 때문이다.
우선 싱가포르의 중심에는 세금을 내고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자가 있다. 이 인구는 대략 350만 명. 그리고 준 시민으로 인정해주는 영주권(퍼머넌트비자) 소유자가 50만이 좀 넘는다. 이렇게 400만 명이 사실상 싱가포르 인구구성의 핵심 축이 된다. 싱가포르는 아주 잘 짜여진 항구도시이자 국제금융 도시이다보니 이를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까다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핵심인재를 골라 영주권를 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엘리트주의 국가라고 해도 머리쓰는 사람만으로 나라가 굴러갈 리가 없다. 공장 노동자도 필요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등의 궂은 잡일을 해줄 저임금 노동자도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중심도시라는 이점을 살려서 이 대목을 해외이주 노동자로 해결해 왔다. 인근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지에서 저임금의 여성 가정부를 수입하고,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건설노동자를 수입해서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해온 것이다.
자국의 시민은 엘리트와 관리자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싱가포르 입장에서야 좋은 제도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싱가포르의 위기시에 식량과 식수 수급문제와 더불어 싱가포르의 가장 취약한 대목으로 지목돼 왔던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로 이 대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약점을 파고 들어온 셈이 됐다.
싱가포르의 인구 구성에서 애매한 대목으로 남겨진 150만의 인구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건설노동자만 30만 명에 이르고, 싱가포르 집집마다 알게모르게 감춰져 있는 외국인 가정부 숫자만 50만 명에 달한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가 전부 저임금의 육체 노동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억원의 연봉을 자랑하는 외국계 IT프로그래머나 금융상품 트레이더도 일종의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취업비자는 앞서 설명한 가정부와 건설노동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밖에도 매일 아침 말레이시아 국경을 건너 싱가포르에 일하러 오는 노동자도 수십만에 달한다. 아파트의 경비도 따지고 보면 말레이시아 인들이고, 도로를 청소하는 이들도, 호텔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프론트 직원도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인 셈이다. 사실 알고보면 이런 외국인 노동자들이 화려하게 빛나는 싱가포르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셈이다.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 얘기로 돌아오면, 싱가포르 정부의 확진자 정보의 분류를 다시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900명이 넘는 일 확진자가 대부분 워크퍼밋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기숙사’ 거주 여부가 된다.
현재 싱가포르는 5월말까지 아주 강력한 써킷 브레이커(락다운(도시폐쇄)과 같은 의미) 아래 놓여 있지만 정작 싱가포르 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감염자가 이들 건설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외곽으로 주로 대형건설 공사가 이뤄지는 산업단지 주변에 50여개에 가까운 이주노동자 기숙사가 운영중인데, 바로 이곳이 바이러스 확산의 중심지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새벽과 밤에 이들을 태운 트럭을 통해 단체로 이동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싱가포르인들의 중차대한 위안거리가 된다.
2.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우리 국민과 똑같이 치료해주겠다”
1인당 GDP 6만 달러(약 7314만 원)를 훌쩍 넘는 싱가포르 역시도 고령화의 고민에서 빠져 있다. 현재 싱가포르 성장을 이끌었던 ‘메르데카 제너레이션’(1950년대 출생자)들이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것은 물론이고, 이미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저출산 시대와 맞물려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싱가포르에서는 당연히 집안의 고령자 케어를 위해서 가정부가 필요하고, 거대한 항구시설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서는 육체노동자가 대거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싱가포르는 월급 90만원 미만의 값싼 노동자로 채워왔고, 이같은 싱가포르의 자국 중심적인 노동정책은 인근 아세안 국가들로부터 적잖은 비난을 받아왔다.
단적인 비교만 해봐도, 한국이 해외이주노동자를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월급 200만원은 줘야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싱가포르가 누리는 혜택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해외이주노동자들의 자유도 역시 여느 선진국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지는 형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이주노동자들이 싱가포르 시민들과 사귀거나 결혼을 했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필자는 이들의 노동환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을 기억한다. 싱가포르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이들 해외노동자들이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치우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이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자신이 치운 쓰레기통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일일이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의 노동을 감시하기 위한 일종의 확인작업을 일환일 것이다. 진짜 네가 쓰레기를 치웠는지, 사진으로 하나하나 빠지지 말고 보고하라는 뜻일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을 마치 군대 이등병 관리하듯이 감시하는 시스템인데, 마침 딱 하나 보건위생은 그렇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훨씬 저임금을 주면서 이들 노동자들을 일종의 수용소 같은 기숙사에 몰아넣고 충분한 위생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도 싱가포르에게 큰 도덕적 윤리적 짐이 될 수 있다. 과연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된 노동환경과 조건 속에서 싱가포르 사회는 경제성장 이외에 어떤 뚜렷한 가치를 이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같은 건설노동자용 기숙사의 비위생적인 운영실태는 최근 해외언론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과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를 의식했는지, 4월 21일 리센룽 총리는 “감염된 모든 해외이주 노동자에게 무료로 최선을 다해서, 싱가포르 국민들과 동일하게 치료해주겠다”고 공언으로 이어졌다.
과연 싱가포르는 해외이주노동자들의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정호재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아시아학을 공부하며 현지 시장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대표 정치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관련 책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