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누구인가 11] 일본의 신앙: 신도란?: 철학도 교리-교단도 없다!
신도(神道)는 일본의 국민 종교라 할 만하다. 신자 수는 총 인구 1억 2659만명[2018년 기준] 중 신도계가 8474만 명으로 일본국민 대다수가 신도 신자라고 볼 수 있다.
불교 신자도 8950만 명에 이르지만 기독교계 신자는 214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경우 기독교도와 불교도가 주류를 이루는 종교 지형과는 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는 어떤 종교인가? 신도는 세계종교라고 하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어떤 가르침의 종교는 아니다. 신도에는 글로 엮은 명백한 경전이 없고, 교조(敎祖)도 교단도 없다. 신사는 교단이 아니고 공동체나 국가의 제사장 또는 제사기관일 뿐이다. 그렇다고 신도가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불교가 깨달음과 자비의 종교이고,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의 종교라면, 신도는 신을 두려워 해 그를 모시는 ‘마츠리(祭)’의 종교, 곧 제사의 종교이다.
영국의 문필가로서 일본문화에 심취한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은 일본에 귀화한 작가다. 일본명은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다.
그는 “불교에는 만 권에 이르는 교리와 심오한 철학과 바다와 같이 드넓은 문학이 있다”면서, “그러나 신도에는 철학도 없으며, 체계적인 윤리도, 추상적인 교리도 없다”고 두 종교를 비유한다. 그러나 “그 ‘없다’는 것이야말로 서양 종교사상의 침략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것은 동양의 어떠한 신앙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 무(巫)의 종교 신도(神道), 다른 신과 화합하는 ‘화의 율법’
이 “없다”는 말의 뜻을 두고, 현대 신도 학자 카마타 도-지는 “헌은 ‘신도’에 ‘철학’도, ‘체계적인 윤리’도, ‘추상적인 교리’도 없다는 것에 강인함을 간취했다”고 풀이했다. 이 “없다”는 것은 “그 만큼 대단한 것은 없다,” “그만큼 강인한 것은 없다”는 역설을 헌이 통찰한 것”(鎌田東二, 2011, 59, 강조-지은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없다’는 것을 역설로 풀이한 것은 이 신도 학자의 몫이지만 신도의 원상인 옛 신도, 곧 무교(巫敎)에 교리나 윤리가 없을 리가 없다. 무교에는 신을 맞이하는 제법(祭法)과 신에 기도하는 주법(呪法)이 있는데, 이것은 훌륭한 교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무교의 윤리는 말하자면 거시계율인데, 위에서 말한 대로 다른 신과 화합하는 ‘화의 율법’이다.
무교는 유일신 간에 싸움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묵고 있는 ‘수많은 신’[多神]들 간에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신앙체계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 질서 또는 우주질서의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생물과 공생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일 신앙과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유일 신앙은 인간이 신의 모델로 태어난 ‘선택된’ 신의 아들이기에 자연의 지배자 또는 정복자를 상정하고 있다.
무교의 계율은 이와 같은 거시계율뿐만 아니라 절대 계율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우선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의 더러움’을 “멀리 해야[不淨]하며”, 죽어서는 살아 있는 동안 쌓일 수밖에 없는 ‘주검의 더러움’[死穢]을 “씻어 내야한다”[씻김굿]고 설법한다.
무엇보다도 무교가 금하는 제일의 율법은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원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다를 건너 일본의 ‘원령신앙’이 된 것을 지난 이야기에서 살펴보았다.
■ 여러 얼굴의 ‘신도’:한반도 남부서 건너간 무교(巫敎)가 원류
일본에서 ‘신도’라고 해도 한 가지 단일 종교로서 신도는 찾기 어렵다. 물론 단일 신을 지향하는 신도는 있지만 그것은 ‘팔백 만신’을 모시는 다신교로서 옛 신도가 변질된 것이다.
현재 신도 계보를 보면 여러 가지 이름의 신도가 있다. 이것은 처음 한반도 남부 가야에서 건너간 무교를 원류로 한 신도가 왜 땅에서 진화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종교적 요소가 융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우라베 신도(卜部神道)의 경우 한반도 남부와 큐슈 사이 현해탄에 떠 있는 두 섬 쓰시마(対馬)와 이키(壱岐)에 발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그 옛날 가야 계 무교가 왜 땅으로 건너간 것이 그 원형이다.
특히 ‘우라베’라는 이름에서 보듯 무교의 복점 술과 관계가 깊은 신도이다. 그러나 무로마치 후기에 이르러 요시다 카네토모(吉田兼俱)가 제창으로 유일신도라고 하는 ‘요시다신도(吉田神道)’가 되었다.
모노노베신도(物部神道)는 백제에서 불교가 왜 땅으로 전해질 때 모노노베(物部) 씨가 당시 소가(蘇我) 씨에 대항하여 부처를 맹렬하게 반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토착 신’을 숭상한 신도이다. 여기서 ‘토착 신’이라고 했지만 이주민 지배층이 숭상하는 신이 무속신이라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 신도는 불교를 믿는 소가 씨에 의해 압도당해 쇠퇴하게 되지만 명맥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이를 조금 더 풀이해 보면 모노노베 씨족은 종가의 대표격인 모노노베오-무라지(物部大連)가 소가노오-미(蘇我大臣)에 의해 멸망된 뒤에도 이소노카가미(石上) 신궁의 사사(社司)가 되어 살아남고, 신궁의 신고(神庫)의 열쇠를 관리하게 되었다. 현재 궁사(宮司)인 모리(森)씨는 그 후손이다(宋前健, 1986, 193).
우라베 신도나 모노노베신도는 반체제적 요소가 강한 신도이지만 이 대칭적 위치에 있는 것이 나카토미신도(中臣神道)이다. 불교가 국가제사의 중심되었던 시대 지배층이 된 나카토미 가(中臣家)가 후지와라 가(藤原家)로 변신하여 내세운 신도로 일본 신도의 중심이 되었다.
이는 케가레(穢れ)와 하라에祓え)를 중심사상으로 하는데, 결국 천황의 치세를 받드는 종교가 되었다.
그 밖에 신불융합으로 이루어진 신도나 유교나 도교를 중심사상으로 하는 신도도 있다. 불교의 천태종의 총본산이 히에이산(比叡山)에서 헤이안(平安) 시대 태어난 산왕신도(山王神道), 가마쿠라 시대 진언종(眞言宗)에서 나온 료-부신도(兩部神道), 무로마치 시대 법화종의 신도들 사이에 믿어진 법화신도(法華神道) 등 신불 융합의 색체가 강하다. 유교사상이 뒷받침이 된 신도로서 유가신도(儒家神道)가 에도(江戶)시대 하야시 라산(林羅山) 등 제창으로 성립된 신도이다.
에도 중기에는 이른바 ‘국학’연구 풍조아래 국수주의적인 신도가 일었는데, 그것이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이다. 이를 ‘복고신도’라고도 하는데, 가모마부치(賀茂眞淵, 1967~1769)의 <만요-슈>의 고어연구, 모토오리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고사기> 연구, 이를 바탕으로 노리나가의 제자인 히라타 아츠다네(平田篤胤, 1776~1843)가 제창한 신도이다. 히라타신도는 불교나 유교 등 외래요소를 배제하고 이른바 ‘야마토 코코로(大和心)’ 중심으로 신의 도를 찾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메이지 시대 천황의 조상신으로 천조대신을 모시는 이세신궁이 중심이 된 국가신도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세신궁을 전국신사의 최고위 신사로 자리매김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떠받드는 신도이다.
국가신도는 황국사관을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뒷받침한 종교 아닌 종교, 곧 의사(擬似)종교인데, 그 시절 사실상 국가종교로 추진되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점령통치를 총괄한 맥아더 총사령부(GHQ)는 국가신도를 폐지했지만 ‘개인으로서 일본인의 종교’로서 교파신도는 허용했다. 의사종교인 국가신도 이외 13 종의 교파신도가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름의 신도는 청동기 이래 한반도에서 건너간 무교는 옛 신도의 원형이지만 왜 땅에서 진화하는 동안 위에서 보듯이 여러 형태와 다양한 교리내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신도’ 가운데 무교적 요소를 찾기란 힘들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무교의 원류를 찾아보면 우라베 신도와 모노노베 신도에서 그 원류가 흘렀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원류가 아직 ‘신도’라는 민간종교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 사이에서는 궁중신도나 전국 각지의 신사를 중심하는 신사신도(神社神道)가 숭경되었다. 무교의 산악신앙과 융합해 태어난 슈겐도(受驗道)의 경우, ‘신도’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무교색이 짙은 신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신이 내려온 성스러운 산봉우리...뿌리는 한반도의 소도
이 모든 신도 종파는 결국 옛 신도가 왜 땅에서 진화하는 동안 한 나무의 몸통줄기에서 생겨난 여러 곁가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옛 신도가 성역(聖域)을 나타내는 심벌로서 이와쿠라(磐座), 이와사카(磐境), 히모로기(神籬), 칸나비(神奈備), 모리(社 또는 森) 라는 말이 있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신이 내려오는, 신이 묶는 성스러운 매개물이다.
그것은 거석이나 거목, 또는 숲이나 산으로 고대의 이주민들이 신이 내려온다고 믿었던 매개물[요리시로(依り代)]인데, <위지동이전> 마한 조에 나오는 소도(蘇塗)가 그 원형이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천제의 아들 환웅(桓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내려 왔다는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라든가, ‘가락국기’에서 김수로 왕이 내려왔다는 ‘구지봉(龜旨峰)’은 신이 내려온 성스러운 산봉우리라는 것은 신도에서 말하는 ‘요리시로’가 무엇인지 시사해 준다.
참고문헌
松前健, <大和国と神話伝承>, 雄山閣出版, 1986
鎌田東二. <現代神道論: 靈性と生態智の探究>, 春秋社, 2011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교육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