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일본이야기34] “타루이 ‘대동합방론’은 정한론의 후속편”

  • 등록 2020.10.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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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누구인가17. 일본의 조선관: 타루이 토-키치의 대동합방론 ‘양두구육’

 

타루이 토-키치(樽井藤吉)는 ‘대륙낭인(大陸浪人)의 선구자 중 한 사람’(旗田巍, 1969)로 불리는 메이지 시대(1868~1912) 인물이다.

 

대륙낭인이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중국대륙 특히 만주·유라시아대륙·시베리아 등 방랑하면서 각종 정치활동을 한 일군의 일본인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방랑자’가 아니라 일본의 조선 병탄을 노린 대륙침략의 척후병들임을 놓칠 수 없다.

 

타루이는 메이지 26년 즉 1894년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이란 저서를 내놓고는 조선 병탄을 도모한 ‘대동합방’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침략사관을 포장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그가 주장한 ‘대동합방’의 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70년대 대두하여 무르익었던 ‘세이칸론’(征韓論, 이하 ‘정한론’)을 눈여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대동합방론은 정한론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다.

 

정한론을 포장한 자는 타루이뿐만 아니다. 미국의 펜실바니아 대학 교수 힐라리 콘로이(Hilrary Conroy)는 전혀 다른 논리로 정한론을 합리화한 <일본의 조선병탄>(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960)을 간행한다. 그는 조선반도의 비수론(a dagger aimed at the heart of Japan)을 꺼내 일본의 정한 정책을 지지 한 것이다.

 

정한론이 노골적인 조선침략 사관을 담고 있다면 대동합방론은 내용의 본질은 같고 형식은 오히려 음흉하다. 그것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전형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겉보기에는 온순한 양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뱃속은 검기 이를 데 없다. 때문에 하타다 다카시(旗田巍) 교수가 말하듯이 일본에서 평가가 혼재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이 책이 일본과 조선이 대등한 형태로 합방을 주장했다는 점에 주목해 이 책은 일조연대사상의 새싹[萌芽]이라고 하여, 그를 '일조(日朝)연대사상의 선구자'로 상찬한다. 다른 한편 이 책이 일제의 조선 병탄 때 합방론 자들에 애독되어 조선 병합에 한몫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 '조선침략의 무기가 되었다'는 비난을 듣는다.

 

<대동합방론>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 하타다 교수가 내린 이 책의 평가를 들어보자.

 

이 책은 일본이 열강에 압박 받는 단계에서 일본의 대륙발전노선을 긍정하면서 같은 피압박민족인 조선과 합방하여 백인열강에 대항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거기에는 피압박민족으로서 공통적 감정은 있다. 그러나 피압박민족에서 탈각하기 위해서 일본의 대륙발전을 긍정하고 있다. 거기에 모순이 있다. 그 모순은 일본이 대륙발전을 도모해도 열강에 압박받는 단계에서는 명백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 일청(日淸)·일로(日露) 전쟁에 승리해 제국주의국가로 되고,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단계가 되면 그 모순은 명백한 모습을 나타내어 조선병탄의 유력한 관념적 무기로 된다(旗田巍, 1969, 60).

 

 

여기서 하타다 교수가 번번이 ‘일본의 대륙발전’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는 ‘대륙침략’이라는 말의 유피미즘(euphemism)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남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을 부드럽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이 유피미즘이다.
 

<대륙합방론>이란 책에 대해 다소 부연하면 타루이는 이 책의 초고를 메이지 18년 즉 1886년 완성하고 책으로 간행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메이지 26년 즉 1894년이다. 그런데 1886년에서 1894년 사이에 이르는 시기는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고,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쟁탈전에서 패배의 쓴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항이 벌어졌다.

 

즉, 청국이 조선에 등장하고 구미 열강, 특히 러시아가 조선쟁탈전에 가세한 형국이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에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지배권 탈환의 기회를 잃어버린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온 <대동합방론>은 이런 시기에 나타난 대륙낭인의 조선관-아시아 관인 것이다. <대동합방론>의 결론은 백색인종인 구미열강의 아시아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황색인종인 아시아 제국은 단결하여 일어서야 하며, 그 방법은 우선 일본과 조선이 대등한 행태로 합방하여 ‘대동’이라는 새로운 합방국을 만들고, 그 대동국과 청국은 긴밀히 손잡는 다는 것이다. 일종의 연방제를 구상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타루이의 생각에는 침략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의 발상은 일본이 침략당할 위기에 있기에 침략자는 악한 자이지만 일본이 침략하는 처지가 되면 그것은 악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루이의 이런 생각은 그의 경력을 보면 조선 침략관의 생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850년 나라현 우지군(宇智郡)의 한 목재상 가에서 태어났다. 유신의 변동으로 상인이 이상하게 되자 1873년 가출 상경해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정한론 자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집의 식객이 되는데, 사이고가 유신정부에서 퇴각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드디어 국학자 이노우에 요리쿠니(井上頼國)의 사숙에 들어가 국학을 배우게 되는데 여기에 모인 반체제 무리와 어울리게 된다. 1877년 사이고가 서남전쟁을 일으키자 참가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의 경력 중 특이한 것은 정한론 자들에 부화뇌동한 것에 이어 그가 조선의 무인도를 탐험해 어떻든 조선 침략의 근거지를 마련하려는 것, 즉 “사이고의 정한론의 계승”(旗田巍, 위 책, 52)이라고.

 

참고문헌

旗田巍, <日本人の朝鮮観>, 勁草書房, 1969

Hilary Conroy,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868~1910, A Study of Realism and Idealism in International Relation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960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정리=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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