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관의 태국이야기 10] 인도에는 카레가 없고, 태국엔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던데 태국에는 ‘콰이강’이 없다. 콰이강이 없으니 ‘콰이강의 다리’도 자연스레 없을 수밖에.
태국에 살거나 자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가봤음직한 깐짜나부리 주(州)의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니 이게 무슨 궤변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국에 콰이강의 다리가 없다니?...
그렇다면 그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The River Kwai March)’으로 7080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렸던 윌리엄 홀든 주연의 옛 명화에 나온 다리가 영화속에서 지어 낸 가공의 장소란 말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요는,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태국의 '깐짜나부리'에는 '콰이강'이라는 강은 없고, 오직 '쾌(แคว)'강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다시말해 '콰이강의 다리'가 아니고 '쾌강(แม่น้ำแคว)에 있는 다리’, 즉 현지어로 ‘싸판 쾌(สะพานแคว)’이니 말이다.
하긴 콰이강의 다리가 태국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방콕 시내 짜뚜짝 시장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 그 곳에 가면 ‘싸판 콰이(Saphan Kwai-สะพานควาย)’라는 전철역도 있고, ‘할인점 Big C 싸판 콰이’까지 성업중이다. 그렇지만, 일본군이 미얀마로 군수물자를 운송키 위한 철도교량을 방콕시내에 건설했을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이야기인 즉은 이렇다. 당시 미국영화 제작자가 영화 제목을 "The Bridge on the River Kwai"라고 영문으로 칭하여 흥행시켰던 것이고, 한국의 영화배급사에서 그걸 그대로 따라 발음해 한글로 적어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러왔던 것인데...
<실제 스토리 1> 지금부터 25년전에 필자가 처음으로 해외주재 발령을 받아 태국에 나왔을 무렵,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콰이강(?)의 다리'를 찾아 깐짜나부리에 갔었다. 구글맵은커녕 차량 내비게이션 비슷한 것도 없던 때인지라, 깐짜나부리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인근 현지주민에게 물었다.
- 나 : "싸판 매남 콰이 유 티 나이 크랍? = 콰이강의 다리가 어디에 있지요?"
- 주민 : “마이미 = (그런 다리는 여기에) 없다.”
- 나 : 헉, 그럴 리가…
- 나 : (식구들에게) "시골 촌사람들이라 그런지 참 답답하게 사나 봐. 바로 지근에 있는 그 유명한 역사적 현장, 콰이강의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야, 투덜투덜...”
- 나 : “그 서양영화에 나오는 다리, 2차 대전 때 버마로 향하는 군용 기차가 다니던 다리가 이 깐짜나부리 근방에 없다고요?...그게 말이되냐구요?"라며 다시금 따지듯 물었다.
- 주민 : “아~ '쾌강' 말하시나 보네요. 저쪽 방향으로 조금 만 더가면 나옵니다.”
- 나 : “헐~ '콰이강'이 아니고 '쾌강'이었어??”
이건 25년여 세월이 지난 너무도 옛 이야기니 근래 벌어지는 이야기 두어 개 더 보태본다.
<실제 스토리 2> 태국에서 내·외국인 할 것없이 사랑하는 맥주 '비야씽'...
캔에 새겨진 이 맥주회사 창립연도가 무려 1933년인데, 태국의 짝그리 왕조를 전제군주제에서 현행 입헌군주 체제로 바꾸어 놓은 입헌혁명이 일어난 것이 1932년인 바, 그 이듬해에 맥주공장을 지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태국인들의 맥주사랑도 만만치는 않은 셈이다.
군사정변이 일어나 전제군주체제가 입헌군주제로 바뀌는 난리통에도 맥주공장 세울 사람은 세우고, 그 맥주 사 마실 사람은 사마시고 그랬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비야 씽(เบียร์สิงห์/비야=맥주 & 씽=사자)을 영문으로 'Singha'라고 표기한다고 덩달아서 '씽하' 맥주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다.
뒷 'h'발음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차용한 단어의 흔적어로써 묵음표기 되어있기에, 태국인들은 '비야씽'이라고 읽고 부른다. 그런데도 혹자는 태국에서 여러 해를 살아도 꿋꿋이 ‘비야 씽하’이라고 칭하는데, 글쎄… 차라리 '사자표 맥주'라고 부르든가 말이다.
<실제 스토리 3> 태국의 남부지방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려고 후어람퐁 역에 도착해 기차표를 사던 중에 갈증이 나서 콜라와 환타를 진열해 놓고 파는 음료 가판대 노점상에게 환타를 달라고 했다.
- 나 : 나름, '나랏말쌈이 태국과 닳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지라, ‘환타’가 아닌 ‘Fanta’인 것 정도는 안답시고,
- 나 : “커~ Fanta 능 끄라뻥=환타 한 캔 주세요.)”라고 영어의 F발음을 하느라 아랫입술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 상인 : 마이 미~(눈 앞 가판대에 진열해 놓은 것 뻔히 보고 있는데도 없단다.)
- 나 : 눈 앞에 버적이 진열된 환타 캔을 가리키며, “니 응아이 라!=없다니, 그럼 이건 대체 뭐요?”
- 상인 : “어~ 휀따~”
요즘 태국인들의 한국어 학습이 한류 붐을 넘어서 학문적 차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165개 고교에서 4만 5000명 내외의 학생이 200여명이 넘는 현지인 교사들로 부터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 학습하고 있다. 또한, 12개 대학 13개 캠퍼스의 대학생이 한국어학, 한국문화학, 한국어교육학으로 세분화하여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지난달에 주태 한국 대사관이 주최한 ‘태국의 한국어교육 발전 모색을 위한 전문가 세미나’라는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의 패널로 참가해 유창한 한국어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 태국인들의 한국어 실력은 예전에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이따금 마주치던 어줍잖은 어투로 몇마디 하는 여승무원의 짧은 한국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토론의 내용성은 물론이고 한국어 발음 측면에서조차 여느 한국인 학자들의 세미나에 견주어 봐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깜짝 놀랐다.
이제 우리도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게 우리가 살거나 교류하는 나라의 언어를 보다 적확하게 구사하는 노력을 들여, 현지에 발디딘 사람들로서의 성의를 보이는 것도 한·태 민간외교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지연의에서 "맹획이 칠종칠금했다"는 남방 땅 외지의 태국 땅에서 살아가다 보면, 태국에 대한 깍듯한 애정보다 애증(?)이 쌓이는 경우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때론, 이방인으로서 이 나라 사람들을 제3자 관찰자 시점으로 비평하는 속에서 현지생활의 개선점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그렇지만, 그 와중에 현지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현지어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면 현지생활이 상대적으로 즐거워지고 다방면에 걸쳐 이득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암 파라곤’이 아닌 ‘싸얌 파라곤’ 백화점 가서 영화도 보고, ‘칸차나부리’가 아닌 ‘깐짜나부리’에 가서 ‘쾌강의 다리’도 보면서 골프도 즐기는 한편, 바다가 그리울 때는 ‘푸켓’이 아닌 ‘푸껫’에도 가보고 말이다.
전창관은?
18년간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세일즈 &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며 2회에 걸친 방콕현지 주재근무를 통해 가전과 무선통신 제품의 현지 마케팅을 총괄했다.
한국외대 태국어학과를 졸업 후, 태국 빤야피왓대학교 대학원에서 ‘태국의 신유통 리테일 마케팅’을 논문 주제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태국학회 해외자문으로 활동 중이다.
아세안의 관문국가인 태국의 바른 이해를 위한 진실 담긴 현지 발신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