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일본이야기 37] 국학, 야쿠스니 참배 등 국수주의 신앙 진화

  • 등록 2020.12.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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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누구인가 20 일본의 국학이란? 하(下): 천황 지배의 사상적 지주

 

일본의 국학이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는 종교적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가신도’에도 깊숙이 관련을 맺는다. 국가신도란 무엇인가? 일본의 코지엔(広辞苑)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神社神道)를 황실신도 아래 재편성하여 만들어진 국가종교.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 되었다.

 

이 단순한 정의가 “메이지 유신 뒤, 신도 국교화 정책에 의해...만들어진 국가종교”라고 했지만 이는 무미건조한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신도가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나라 조선에 자행한 만행이나 자국민에 저질은 죄상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청년들이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 정의가 언급한 “군국주의·국가주의와 결부되어 추진되고 천황을 현인신으로 하여, 천황지배의 사상적 지주로..”하여 그 일단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그 영문도 모른 채 죽은 극히 일부가 야스쿠니(靖国) 신사에 ‘호국영령’으로 묻혀 있다고. 문제는 전후 일본 총리라는 자들이 이 ‘영령’에 참배하여 국가신도가 저질은 만행을 기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령’이기는커녕 억울하게 죽은 원령이다. ‘원령’이라고 짚은 이는 신도학자 미하시 다케시(三橋健)이다. 그는 1984년 4월 ‘야스쿠니 신앙의 원질(靖国信仰の原質)’이란 논문에서 야스쿠니 제신은 영령이 아니라 원령이라고 짚었다.

 

야스쿠니 신, 즉 호국의 영혼들은 국가가 잘못을 저질은 정치에 의해 전지로 끌려가 결국은 ‘억울한 죄’[無実の罪]로 살육을 당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 악 때문에 죽임을 당한 신인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나 호국신사에 모셔진 신들은 원한을 가진, 말하자면 원령신, 어령신인 것이다...[야스쿠니 신들은] 죽고 싶어 죽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살고 싶었지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때문에 죽었어도 죽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本音]다(강조-글쓴이).

 

 

마하시는 ‘원령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비유적으로 스사노오 신의 죽음을 든 점이 눈길을 끈다. <고사기>에 의하면 다케하야스사노오노미고토(建速須佐之男命)이라는 신으로 등장하는 그는 하늘나라 다카마가하라(高天原-이하 ‘고천원’)에서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利)에 내려와 일본으로 건너온 신으로 되어있다.

 

그의 누이로 되어있는, 천황가의 조상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괴롭힌 죄로 ‘팔백만 신’들이 손톱 발톱을 뽑고 고천원에서 추방한 버림받은 신으로 되어 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지금 이세신궁 내궁의 제신으로 되어 있다.

 

미하시는 “야스쿠니 신앙의 원질이나 야스쿠니 신의 관념이라는 것은 일본의 마을이나 읍에 산재해 있는 전통적인 신사나 거기에 모셔져 있는 신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 원류는 유구한 신대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면서 스사노오를 비유적으로 말한다.

 

예컨대 농민이 범한 죄를 짊어지고 억울한 죄이면서도 저승[底つ根国]에로 추방된 스사노오를 믿고 존경하는 마음과, 악정(惡政) 때문에 전쟁터로 끌려가 결국 죽음을 당한 야스쿠니 신, 즉 호국의 혼령들을 믿고 존경하는 마음과는 하나로 통하는 길인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미하시는 때문에 신사본청, 야스쿠니 신사, 이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도대학인 국학원대학 측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국학원대학문학부 신도학과 학생들이 미하시 교수 담당 수업을 다른 교원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그해 수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기기> 신화에 따르면 고천원에서 삼귀자의 하나로 태어난 스사노오는 이렇다 할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도 저승길로 가는 미코시(神輿)를 타야 했다. 나는 스사노오가 ‘억울한 죄’를 짊어 졌다고 하는 신도학자 미하시의 인식이 나타내는 바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하시가 스사노오가 신라 신인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굳이 이 ‘원한의 한신’을 야스쿠니 신들과 결부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스사노오 신이나 야스쿠니 신이나 모두 억울한 죄를 들 씌어 죽은 원령이라면서 일본인이 두 신을 숭경하는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제 군국주의자들이 사지로 내몰아 죽인 원령이란 바로 ‘원혼의 한신’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일본에서 ‘신도학의 권위’라는 평을 듣는 가마타 토-지(鎌田東二)도 야스쿠니 신이 ‘영령’이라는데 미하시와 함께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祭神)문제는 고대 이즈모 대사와 같은 패자의 진혼은 어떻게 되는가와 결부되고 있다면서, 전통적으로 신사의 제신은 ‘패자의 령’이었다고 일깨운다. 이어 “미하시가 야스쿠니 제신 원령 설을 주장해 국학원대학이나 신사본청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지만 일본 종교사상의 긴 역사나 그에 관련해 죽음의 경험을 생각하면 나는 미하시 씨와 같이 문제를 제기한 것도 지금 새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에 대한 비판을 폈다.

 

가마타는 야스쿠니 신의 ‘영령’ 논이 가지는 문제점을 짚은 논지에 그가 신도의 권위자라서 아니라 그가 짚은 논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신사의 창건이나 신에게 올리는 마츠리(祭り)에는 본래 씨족들이나 숭경자들이 평화, 평안, 안녕, 안태, 안녕, 번영, 건강 등을 신에게 바라는 간절한 기원(祈願)이 근본적인 동기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그 기원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있다. 그 ‘누구를 위한 것’에는 배제, 배척, 대립, 알력이 생기는 한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간절한 기원인 보편적인 원망을 떠나 특정집단의 이해를 현재화 시키고 말기 때문이다(鎌田東二, 2011, 75~76).

 

가마타는 그 특정집단을 지정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현인신 교를 떠받치는 광신도나 네오 군국주의자들이 아닐까?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문부정사의 형식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영령’의 현창만으로는 령=제신의 마음과 혼도, 전몰자와 전쟁희생자도, 다양한 유족의 마음과 혼도 구제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과 희생의 고통, 슬픔, 그리고 원한과 쓰라림. 거기에서 ‘영령’뿐만 아니라 ‘원령’도 고대로부터 전통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인가”(위 책, 83).

 

이야기가 야스쿠니에 묻힌 제신들이 영령인가 원령인가로 흘렀지만 다시 국학이 국가신도와 관련되는 문제에 눈을 돌려 보자. 일본의 현대 철학자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는 “메이지 시대 만들어진 ‘국가신도’가 천황만을 유일신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라고 짚었다.

 

글쓴이는 ‘국가신도’야말로 전통적인 신도와는 전혀 다른 종교의 탈을 쓴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 원점이 된 국학사상을 다시 되돌아보면 자명해진다.

 

메이지 천황은 국가신도의 유일신, 곧 ‘초인’이 되었는데, 그 창작자는 노리나가의 사후 문인(門人)을 자임한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 1776~1843)였다. 그 역시 스승 노리나가와 함께 ‘국학의 사대인’이다.

 

국학이 추구하는 이념은 국가신도가 국수주의적 신앙으로 진화했다. 이전 이야기에서 국학이 천황을 ‘현인신’으로 만든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신도의 밑뿌리가 바로 국학임이 드러난다. 에도 중기에는 이른바 ‘국학’연구 풍조아래 국수주의적인 신도가 일었다. 그것이 히라타 신도(平田神道)이다.

 

 

이를 ‘복고신도’라고도 하지만 국가신도의 전신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히라타 신도는 가모 마부치(賀茂眞淵, 1967~1769)의 <만요-슈>의 고어연구,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고사기> 연구, 이를 바탕으로 노리나가의 ‘문인’을 자임한 히라타 아쓰다네가 창도한 신도이다. 히라타 신도는 불교나 유교 등 외래요소를 배제하고 이른바 ‘야마토 코코로(大和心)’ 중심으로 신의 도를 찾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 원조는 노리나가 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것이 메이지 시대 천황의 조상신으로 천조대신을 모시는 이세신궁이 중심이 된 국가신도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세신궁을 전국신사의 본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떠받드는 데서도 드러난다.

 

국가신도는 황국사관을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뒷받침한 종교 아닌 종교, 곧 의사(擬似)종교인데, 그 시절 사실상 국가종교로 추진되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뒤 점령통치를 총괄한 맥아더 총사령부(GHQ)는 국가신도를 폐지했지만 ‘개인으로서 일본인의 종교’로서 국가신도는 허용했다. 그것은 하지만 오늘날도 황실제사의 형태로 살아남게 하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 국가신도의 나쁜 유산이라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鎌田東二. <現代神道論: 霊性と生態智の探究>, 春秋社, 2011

三橋健. “靖国信仰の原質,” <伝統と現代>제15권제1호(통권 제79호), 1984년 4월, 인터넷 판: http://bbgmgt-institute.org/mitsuhashi.html 2013-06-29

梅原猛.<神と怨霊: 思うままに>, 文藝春秋社, 2008

--.<神殺しの日本: 反時代的密語>, 朝日新聞社, 2006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정리=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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