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일본이야기 38] 일본의 신화에 담긴 정치적 작위성

  • 등록 2021.02.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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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작위성1 나오키 ‘천양무궁의 신칙’은 조작...천황 통치를 ‘신정' 승화

 

[일본 신화 정치적 작위성1] 나오키 ‘천양무궁의 신칙’은 조작...천황 통치를 ‘신정' 승화

 

지난번 이야기에서 이른바 ‘국학’에 이어 그 사상적 기반을 종교적 옷을 입힌 ‘국가신도’, 그 모두가 천황 통치에 부조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런데 국학의 천황 부조를 뛰어넘어 천황 통치를 ‘신정(神政)’의 위치로 승화시킨 것이 따로 있다. 일본 신화이다. 메이지 헌법은 겉으로는 입헌군주제의 옷을 입히고 있지만 천황의 ‘신성한’ 존재로 못박고 있다. 그 배후에 바로 일본 신화가 밑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유구한 문명을 품은 세계의 민족은 대체로 여러 신화를 내재한다. 그 중에 건국 신화, 종교 신화, 민중 신화가 보편적이다. 무사의 나라 일본에는 영웅 신화도 있다. 앞서 본 스사노오노미고토가 하늘나라 고천원에서 내려와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큰 뱀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베어 처녀를 구했다는 이야기라든가 전설적인 영웅 야마토다케루 이야기 등.

 

글쓴이가 일본 신화에 주목하는 첫째 이유는 그 정치적 작위성이 두드러진다는 데에 있다. 이 정치적 작위성은 천황을 일본의 통치자로서 정당성에 부합하도록 조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서 ‘천양무궁(天壤無窮)의 신칙(神勅)’을 살펴보자.

 

이 천양무궁의 신칙은 <일본서기> 본문이 아니라 별전 일서가 전하는 신화다. 본문이 아니라 별전은 격이 떨어지지만 이렇게 되어 있다. “천조대신은...황손에게 「아시하라노치이호아키노미즈호노쿠니(葦原の千五百秋の瑞穗の国: 갈대가 우거진, 벼가 익는 영원한 나라)는 그러므로 내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할 땅이니라. 너 황손이여 가서 다스려라. 하늘이 내린 후손의 황위[아마노히츠기(寶祚)]의 번영이 항상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원하리라(寶祚之隆 当与天壤無窮者矣)」”(강조-지은이).

 

 

■ 나오키 코-지로 “천양무궁의 신칙이 조작된 것” 추적 분석

 

일본의 고고학자 나오키 코-지로(直木孝次郞)은 천양무궁의 신칙이 조작된 것이라며 그 순차적 경위를 다음과 같이 추적 분석한다.

 

예컨대 <기기신화>의 중심을 이루는 천손강림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에 대해서 주요한 것만 해도 <고사기>와 <일본서기> 본문 외에 <서기>의 제1·제2·제4·제6의 각 일서(一書)에 이전(異伝)을 실어 합계 여섯 종류의 소전(所伝)이 널려 있다. 그 각각의 소전은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씨의 연구를 토대로 별고에서 서술하듯이 서기 본문-->제6의 일서-->제4의 일서-->제2의 일서-->고사기-->제1의 일서의 순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발전의 족적을 보면 삼종의 신기(三種の神器: 천황의 신분을 보증하는 세 가지 보물--글쓴이) 수여의 설이 <고사기> 단계에 비로소 나타나고, 이른바 천양무궁의 신칙의 이야기가 최후의 제1의 일서에 만 나타난 것이 상징하듯이 천조대신의 자손[천손]에 의한 일본 통치의 유래를 설명 내지 합리화한다는 방향으로 작위가 행해진 것으로 추측된다(直木孝次郞, 1990, 88~89).

 

<기기신화>를 중심으로 한 일본신화가 이렇듯 조작되었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조작을 저질렀는가? 그 전에 신에 관한 이야기, 즉 신화란 무엇인가 짚어 보자. 신화학자들은 세 가지 요건을 지목한다. 첫째 ‘신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 둘째 일부 지식인의 창작이 아니라 민중이 널리 구전되어 믿을 것, 셋째 종교성 또는 주술성을 가지고 사회를 규제하는 힘을 가질 것. 이는 원시사회에서 신화가 도덕이나 법률에 버금가는 기능을 갖는 것은 신화의 이 성질에서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신화는 신화의 이 요건에 부합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일본 신화학자들은 연구 결과에 근거해 밝힌다.

 

예컨대 쓰다 소우기치(津田左右吉, 1873~1961)와 같은 역사학자는 일본에서 실증주의적 역사연구로 유명한데, 그 대표적 저술이 <신대사의 연구>(神代史の硏究)·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연구>(古事記及日本書紀の硏究)이다. 하지만 군국주의자들은 황실의 존엄에 상처를 주었다 하여 1940년 이들 저술에 대해 판금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기·기> 신대 이야기, 이른바 <기기신화>는 민간의 신화·전승을 소재로 포함되어 있지만 일본의 통치자로서의 천황 지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작위가 가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 작위가 행해진 것은 <고사기>의 서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조정의 귀족들이었다. 이렇게 생긴 <기·기> 신대 이야기를 「고대 사람들」이 신화로서 믿고 있었을 리가 결코 없다. 현대 정치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기득권 계층의 이해를 위해 신화를 조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쓰다는 조정의 귀족들조차 <기·기> 이야기를 믿고 있었는지 여부도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하나의 방증으로서 <만요-슈(万葉集: 옛 와카(和歌) 시집>에 신대가 어떻게 읊어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만요-슈> 권 18에는 ‘아마테라스 신의 치세로부터(天照らす神の御代より)’라는 예가 하나인데 대해, 같은 와카 집 권 18에 ‘오오나무치 스쿠나 신의 치세로부터’(大汝 少彦名の神代より), 권 6 및 권 10에 각각 ‘야치히코 신의 치세로부터’(八千戈の神の御代より)의 두 예가 나와 도합 3 예가 된다는 것이다.

 

쓰다가 말하는 것은 만요-인들은 아마테라스 신보다 오오나무치 신이나 야치히코 신을 중시한 것을 시사한다. 아마테라스 신은 이세신궁에 모셔지고 황조신인데 대해 오오나무치 신이나 야치히코 신은 이즈모(出雲) 계로 황조신에 대립한다.

 

특히 오오나무치 신(大穴持命)은 이즈모대사(出雲大社)의 제신 오오쿠니누시 신(大国主命=큰 나라의 주인어른)의 별칭인데 <이즈모국풍토기>에는 그를 소조천하대신(所造天下大神: 천하를 만드신 대신)으로 부르고 있다(上田正昭, 1996, 183).

 

■ 아마테라스는 황조신 아닌 형용사...천조대신 의문

 

게다가 이 <만요-슈>에 보이는 ‘天照らす神’은 천황의 조상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의미하는지 의심스러우며, ‘아마테라스(天照らす)’는 ‘신(神)’을 단순히 수식할 뿐의 형용사이지도 모른다. 일본어 아마테라스(天照らす)는 ‘하늘을 비추는’란 뜻이다.

 

 

물론 이세신궁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을 천황의 조상신으로 모시고 있다. 카와자키 쓰네유키(川崎庸之) 씨는 이를 천조대신으로 하는데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짚는다.

 

많든 적든 ‘카미요(神代)’의 주재자 또는 그 대표자로서 만요 인의 의식 속에 들어있는 신들은 오오나무치, 스쿠나히코나 및 야치호코 신일 뿐이라는 것으로 된다(直木孝次郞, 1990, 85).

 

나오키 교수는 이를 “따라야 할 설이라고 생각한다” 며, “이런 신들이 이즈모(出雲) 계 신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여 보면 천조대신을 주신으로 하는 ‘장대’한 <기·기>의 ‘신화’ 체계는 만요 인들에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위에서 이즈모 계로 분류된 오오나무치(大穴持命)는 이즈모대사(出雲大社) 제신 오오쿠니노누시노미고토(大国主命)의 별칭이다.

 

일본 신화는 고천원에서 내려온 황손에 굴복해 나라의 통치권을 내준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황손 측이 그를 두려워해 회유했다고도 서술한다. 어쨌든 천황가로선 그가 껄끄러운 존재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일본신화가 정치적 작위를 일삼았지만 이 대목만은 숨길 수 없었듯하다. 그가 제정일치 시절 지금 시마네현(島根県) 북안, 즉 신라를 마주하는 땅을 다스리는 막강한 지배자라는 점에서 보면 그는 신라 도래인 집단의 우두머리이었을 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참고 문헌

直木孝次郞, <日本神話と古代国家>, 講談社, 1990

上田正昭, <神道と東アジアの世界: 日本文化とは何か>, 德間書店, 1996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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