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2021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월 말 기준 각각 누적 확진자 수 133만 명, 57만 명을 돌파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지에서도 감염 사례가 연일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나마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속속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열에 합류하는 사실이 위안거리입니다. 이렇듯 일상으로 복귀가 당분간은 쉽지 않아 보이는 아세안을 강타한 소식이 2월의 첫날 들려왔습니다. 바로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주도로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후 군부 독재 체제로 회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얀마 곳곳에서 펼쳐졌고, 이를 군경이 강경 진압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안타까운 외신이 보도됐습니다.
미국과 EU(유럽연합) 등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가 군부를 겨냥한 비난과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민주화를 외치는 미얀마 국민들의 목소리 또한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1980년 5월을 연상시키는 미얀마의 2021년 2월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 10개 나라가 가입된 지역협력기구인 아세안의 통일된 입장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올해 의장국인 브루나이에 이번 쿠데타를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공식 논의하자는 의사를 전달하고, 싱가포르가 이에 찬성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대응책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은 ‘남의 나라’ 문제라며 뒷짐을 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방인의 시각에서 언뜻 이해하기 힘든 역내 환경은 아세안 특유의 ‘내정 불간섭(non-Interference)’ 원칙에 기반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내정 불간섭 원칙은 ‘합의에 기반한 의사 결정(Consensus Decision-Making)’ 원칙과 더불어 아세안 고유의 운용 방식인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해 온 두 축으로 일컬어집니다.
지난 1967년 아세안이 처음 설립된 후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진 아세안 방식은 보통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이끌어 온 일련의 규약들로 풀이됩니다.
실제 아세안 회원국들은 그 동안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습니다. 2017년경 지구촌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로힝야족 난민 사태는 아세안의 불간섭 원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이슬람계 소수 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군의 학살에 항의하는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 무슬림 단체 등의 시위는 이어졌지만, 정작 아세안 차원에서는 눈에 띌 만한 움직임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웃 나라의 쿠데타를 비교적 무덤덤하게(?) 관찰하는 아세안 전반의 분위기도 이러한 특유의 작동 원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세안과 아세안의 주요 이슈를 들여다보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인 내정 불간섭 원칙에 앞으로도 비아세안 국가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다름 아닙니다.
글쓴이=방정환 YTeams 파트너 um0517@hanmail.net
방정환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매일경제신문》에서 6년 반가량 취재기자로 일했다. 미국 하와이와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받았다.
2011년 싱가포르의 다국적 교육업체, 2013년 인도네시아의 한국계 투자기업에 몸담게 된 이래로 동남아시아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입문 교양서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에 이어 동남아의 최신 디지털 경제와 스타트업 열풍을 다룬 ‘수제맥주에서 스타트업까지 동남아를 찾습니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