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화: 찬탈적 침략성 2 하(下) 군국주의자 날개 달아준 가공인물 '신공황후']
신공황후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앞에서 보듯이 찬탈적 침략성으로 대표된다. 그것은 남을 해코지하는 요녀와 같은 괴물성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미지에는 적지 않은 인물성의 요소가 겹쳐 있음을 놓칠 수 없다. 전자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날개를 달아 주기 위해 날조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후자는 오히려 실존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역의 찬탈적 침략성이랄까?
그녀의 원상을 두고 일본학자들은 몇 가지 설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는 왕조교체기에 천황의 이른바 ‘만세일계(万世一系)’의 황통을 잇기 위해 설정된 가공인물이라고 전후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학설도 있다.
부연하면 야마토 왕정의 황통은 제14대 추아이(仲哀)에 이르러 단절되었으며, 그 뒤 전혀 별계의 왕조, 곧 규슈 계의 오진(応神) 왕조가 들어섰기 때문에 후세 두 왕조를 하나로 잇는 가교가 필요해져 신공황후라는 가공인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설은 황국사관이 날조되었다는 점에서 일리는 있다.
■ 또 다른 얼굴의 실존 인물: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온 무녀
하지만 나는 신공이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온, 실존 인물로서 무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신공 이미지를 구성하는 인물성 요소인데, 구체적으로 보면 용사신(龍蛇神), 모자신(母子神), 단야신(鍛冶神), 난생녀(卵生女), 무녀신(巫女神) 등 여러 가지가 나열된다. 이들 요소 중 얼른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이 숨겨져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즉, 오롯이 한반도나 이주민 계 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을 추적해 보자. 우선 <고사기>는 오진(応神) 천황[제15대 재위 270~310년] 조, <일본서기>는 스이닌(垂仁) 천황[제11대, 재위 기원전 69년~70년]조 때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전설적인 인물 ‘신라 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눈길을 끈다.
그는 <기기> 기사와 옛 풍토기가 전하는 아메노히보코는 도망간 아내 히메코소(比売碁曾)를 쫓아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 교수가 지적한 대로 신공전설의 분포와 이주민 계의 이즈시족(出石族)의 분포가 지리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아메노히보코 전승과 인연을 가진 지역을 보면 츠쿠젠(筑前), 후젠(風前), 후고(風後), 나가토(長門), 이와지(談路), 하리마(播磨), 세츠(摂津), 오미(近江), 와카사카(若狭) 등은 나열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이 그대로 신공과 인연을 가진 땅이다.
미시나의 말을 빌리면 “이 편력·원정(遠征)의 전승을 문화사적으로 본다면, 대륙문화의 전파 내지 그것을 등에 진 사람들의 이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松前健, 1986, 166 재인용)고.
신공과 아메노히보코 두 전승의 지리적 분포가 이렇게 일치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신라에서 온 무녀 히메코소 이야기와 신공전승이 같은 이주민 계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아야 자연스럽다.
게다가 히메코소의 본명인 아카루히메에 얽힌 난생설화는 그 유래가 한반도 계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사기> 오진천황 조를 보면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의 전승 기사에서 신공황후가 아메노히보코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이는 아메노히보코 설화가 유명한 난생녀(卵生女)의 전승으로 적혀 있는 것이다.
난생녀 설화를 따라가 보자. 한 ‘천한’ 남자가 신라의 늪에서 낮잠을 자던 여인을 훔쳐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잠시 뒤 무지개가 그 녀의 여음을 비추니 적옥(赤玉)을 낳았다. 이 남자가 적옥을 지니고 있었는데,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가 이 남자에 술수를 부려 적옥을 수중에 넣게 된다. 그 적옥을 침상에 두었더니 아름다운 여인으로 탄생했다. 아메노히보코는 이 여인을 처로 삼았지만 일본으로 도망해 버린다. 아메노히보코는 그녀를 쫓아왔지만 나니와(難波: 현 오사카지역의 옛 이름)에서 와타리 신(渡之神)이 막는 바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처는 나니와 있는 히메코소 사당(比売碁曾社)의 제신 아카루히메(阿加流比売)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다지마국(多遲摩國)에 들어가 후손을 낳고 살았다는 것이다(<고사기> 중권 오진 천황 조, 20-7).
아메노히보코 신화와 닮은 설화가 <일본서기>의 경우 스이닌(垂仁) 천황 조에 나와 있다. 다만 이름이 ‘쓰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이며 오호카라노쿠니(意富加羅國: 대가야국) 왕자로 되어있고, ‘이마에 뿔 달린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쓰누가아라시토도 백석(白石)에서 동녀(童女)로 변한 미인과 ‘교합(交合)’하려 하였으나 일본으로 도망가 나니와(難波)의 히메코소신사(比売語曾社)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고사기>가 전하는 아메노히보코 전승의 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신라 또는 대가야국에서 도망쳐 일본에 왔다고 하는 아카루히메는 적옥이든 백석이든 알에서 태어난 신으로 한반도의 난생설화 계열에 속한다. 또한 그것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눈길을 잡은 것이 이 히메코소 신이 <엔기시키>(延喜式)의 신명(神名) 조에 후젠국 다카와군(豊前國 田川郡)의 ‘카라쿠니오키나가오히메오메노미고토 신사(辛國息長大姬大目命神社)’라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젠국풍토기> 다카와군 카하루노사토(鹿春鄕) 조에 “옛날 신라로부터 신이 도래해 카와하라(川原)에 살고 있었기에 “카하루 신(鹿春神)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적혀 있다. 카라쿠니오키나가오히메란 바로 이 신이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이 신이 지닌 긴 이름인데, 마쓰마에 다케시(松前健)가 지적하듯 이는 ‘카라쿠니,’ 곧 한국에서 도래한 ‘오키나가 여인’이라는 뜻으로, 신공황후의 본명인 오키나가타라시히메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신공전승을 깊게 연구한 마쓰마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아마도 이것이 정한(征韓)의 여왕으로 여겨지는 신공의 원상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풀이하면 한반도에서 도래한 자들이 섬기는 히메코소 여신이 현실화되어 오진의 생모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오진 때 실제 한반도와의 여러 가지 교섭(예컨대 카츠라기노소츠히코(葛城襲津彦)의 외교 군사 교섭) 등이 반영되어 그 생모의 위대한 대륙정벌의 원조(元祖)와 같이 제사지내게 된 것이 아닐까? (松前健, 1986, 166).
■ 가라서 건너간 무녀:기장벌(機張伐)의 여인
여기서 잠시 신공황후의 출신 신원을 살펴보면 그 아버지는 오키나가노쓰쿠네 왕(息長宿禰王)이 이즈시(出石)계의 가츠라기노다카누카히메(葛城高額媛)와 혼인해 낳은 딸로 되어 있다. 바로 이 황후의 어미가 다지마에 정착한 아메노히보코의 후손이라고 <고사기>는 적고 있다.
아비는 오미(根江)의 사카다군(坂田郡)에서 번성한 호족 오키나가 씨족에 출신이며, 따라서 황후의 본명은 오키나가타라시히메(息長帶比売命)으로 되어 있다. 어미 쪽은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의 후손이니 신라 계 이주민 이라는 것은 보여준다. 아비 쪽의 오키나가 씨족은 어떤 부족인가? 마쓰마에 다케시는 오키나가 씨족도 이주민계라고 보고 있다.
앞에서 본대로 신라에서 도망쳐 온 난생녀가 일본에서 히메코소 신이 되었는데, 이 신의 이름이 카라쿠니오키나가오히메오메노미코토(辛国息長大姬大目命)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카라쿠니,’ 곧 한국(韓國)에서 오신 오키나가 여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서 이 ‘오키나가’라는 이름이 도래 계의 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오키나가 씨족이 제철기술을 가진 이주민계의 부족이라고도 생각된다. 이는 ‘오키나가’라는 이름과 일본 각지의 지명으로 퍼져 있는 이주민계의 ‘다타라’라는 지역이름과 연결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북 규슈의 카시이궁(香椎宮)은 신공황후를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사이다. 그 남쪽에 있는 다타라무라(多多良村), 다타라하마(多多良浜)라는 지역은 단야(鍛冶) 기술과 관계되는 한국말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오키나가(息長)’ 역시 다타라에 관련된 이름으로, 이는 ‘후이고’[鞴: 풀무]로 공기를 내보낼 때 ‘숨을 길게’[息を長く] 빨아들이는 모습에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西田長男, 1956, 마쓰마에 168 재인용).
규슈 동쪽의 옛 후젠(豊前)지역에 있는 우사신궁(宇佐神宮)도 신공황후와 오진천황을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유서 깊은 신사다. 그 경내에 ‘오타라시히메뵤진자(大帶姬廟神社)’가 있고 또한 우사신이 ‘단야의 옹(鍛冶翁)으로 나타나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냈다는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마쓰마에는 이 단야에 관련된 이름으로 보아 “오카나가타라시히메[신공황후]라는 인물이 원래 이러한 이주민계의 단야 씨족의 모신(母神)인지도 모른다”고(松前健, 1986, 168).
아메노히보코 전승을 연구한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는 신공전설의 분포가 이상하게도 아메노히보코 전승, 그리고 이즈시 족의 분포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본 그대로다. 이를 근거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적어도 고전사료에 의하는 한, 신공전설은 아메노히보코 전설과 지리적 분포가 대응하며, 더욱 분포경계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아메노히보코의 편력담(遍歷談)은 황후의 원정사화(遠征史話)와도 행동 코-스[경로]가 일치한다. 극언하면 신공황후는 아메노히보코의 난생녀와 등치(等値)할 수 있는 존재이다(三品彰英, 1972, 53),
미시나가 강조하듯 신공이 난생녀와 ‘등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신공은 한국의 재야 사학자 김성호(金聖昊)가 말하듯이 아메노히보코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여인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보듯 신공은 히미코와 동일인물로 본다면 신공의 원상은 삼한정벌의 여왕과는 거리가 먼 그 옛날 가야 땅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무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공의 신원에 대하여 김성호는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신공황후의 추호(追戶)인 ‘氣長足姬’가 일본 고훈(古訓)으로 ‘오키나가다라시히메’라고 읽히지만 한국식 한자음으로는 ‘기장족희’로서 ‘氣長(기장)’은 부산 동쪽의 해안인 ‘機張’[양산군 기장면의 기장]에서 유래된 듯하고, ‘足(발)’은 國, 原, 野를 뜻하는 ‘伐(벌)’의 차자(借字)로 볼 수 있음으로 결국 ‘氣長足姬’는 ‘기장벌(機張伐)의 여인’에서 유래된 듯 하다”(金聖昊, 1982, 186)는 추정이다.
<고사기>에는 오키나가다라시히메를 ‘息長帶比売命’라고 적고 있으나 <일본서기>가 적은 ‘氣長足姬’를 두고 그렇게 해석한 것은 재미있는 견해이고 그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신공황후가 앞에서 보듯 오미(近江)의 사카다 군을 근거로 번영한 오키나가(息長) 씨족의 후손이라면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것은 오키나가 씨족이 부산과 가까운 가라 땅에서 단야기술을 가지고 건너간 신라 계 이주민 부족이며, 이 소부족가를 지배하던 무녀 왕이 세력다툼에 밀려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라고 무리없이 추리할 수 있다.
참고문헌
<古事記>, 倉野憲司 校注, 岩波書店, 1991
<日本書紀> 시리즈 (二), 坂本太郎·家永三朗·井上光貞·大野晋 校注, 岩波書店, 1994
金聖昊, <沸流百濟와 日本의 國家起源>, 知文社, 1982
金達寿, <古代朝鮮と日本文化: 神々のふるさと>, 講談社, 1986
松前 健, <大和國家と神話傳承>, 雄山閣出版, 1986
三品彰英, <增補日鮮神話伝説の研究>, 平凡社, 1972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외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이션 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