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은의 아세안랩 13] ‘랑종’이 뭣이 중헌디? 한국-태국 공포영화 거장 만나다

  • 등록 2021.07.23 06: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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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나홍진 X ‘셔터’ 태국 피산다나쿤...두 천재 흥행감독 만남만으로도 ‘화제’

 

7월14일에 개봉한 ‘랑종(Rang Zong)’이 연일 화제다. 20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동 영화는 개봉 4일만인 17일에 관객 40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개봉 7일째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범죄도시’와 개봉 8일째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던 ‘내부자들’보다 빠르며,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최단기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많은 영화들이 개봉조차 미루고 있는 시점에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 화제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두 천재의 만남의 시너지

 

‘랑종’은 영화 제작 전부터 두 천재 감독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필자도 개봉 이전부터 ‘셔터’를 인생 공포영화로 꼽는 친구에게 이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개봉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곡성’ 나홍진 감독과 ‘셔터’ 태국 피산다나쿤 감독의 만남으로 홍보가 되어 두 천재 감독이 함께 연출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나홍진 감독은 기획과 제작을 맡았으며 연출은 피산다나쿤 감독이 맡았다.

 

두 감독 모두 데뷔작인 ‘추격자’, ‘셔터’부터 흥행을 한 감독이다. 물론, 데뷔작만 흥행에 반짝 성공을 한 감독들도 많이 있지만 두 감독은 다르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으로 2016년 제 69회 칸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이 되었다.

 

피산다나쿤 감독은 ‘피막’으로 태국 최초 1000만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박스오피스 1위에 랭크된 태국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며, 공포영화의 대가다.

 

 

한 감독의 차기작이라고 해도 화제가 될법한데 두 천재 감독의 만남이라니. 그것도 공포영화 대가의 만남은 화제성과 동시에 극강의 공포를 선사할 예정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랑종’은 극장 개봉과 동시에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장편 부분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세계관과 독창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부천 초이스’에서의 수상을 통해 영화는 화제성에 이어 작품성까지 입증되었다.

 

■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에 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을 뜻한다. 영화 ‘랑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내용 출처 : 쇼박스 홈페이지).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되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무당 가문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등장인물들이 소개되어 “이게 왜 무섭다는 거지?”라고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기 때문에 처음 경험하는 공포들이 휘몰아친다. 다큐멘터리 촬영팀들이 실제 촬영하면서 경험하는 극한의 공포 현장들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느껴지며, 때문에 흔들리는 카메라는 더욱 큰 긴장감을 조성한다.

 

혹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 중 이 칼럼이 스포일러가 되어 공포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영화는 더욱 자세하게 쓰인 영화 리뷰를 보고 가더라도 스포일러가 의미가 없으며, 영화를 봐야지만 그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영화를 꼭 보시라는 추천은 하지 못하겠다. 비위가 약하거나 본인의 철학이 확고하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몇몇의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영화를 보고난 후 찝찝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곡성’에서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뭐야, 영화 끝났어?”라며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것과 같이 ‘랑종’도 “여기서 끝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영화를 보고난 후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도록 한 장치다. 혹시 명확한 결말의 영화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랑종’의 결말 역시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랑종’의 “뭣이 중헌디”,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

 

‘랑종’은 캐스팅부터 촬영까지 태국 현지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두 천재 감독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가 크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밍’을 연기한 ‘나릴야 군몽콘켓’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예쁜 태국 무명 배우가 전체의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그녀의 신들린 연기는 두 천재 감독의 만남에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곡성에서 남은 것이 “뭣이 중헌디” 라면 ‘랑종’에서 남은 것은 바로 배우 ‘나릴야 군몽콘켓’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무명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동시에 ‘밍’ 캐릭터가 처음에는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가 점점 공포의 대상으로 변해가는 어려운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도 뒷받침 되어 있어야 했다.

 

‘밍’ 캐릭터를 캐스팅하기 위해 5번에 걸쳐 오디션을 보았는데 ‘나릴야 군몽콘켓’을 대체할 배우는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는 이 영화가 실제 상황의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만큼 신들린 연기력을 선사한다.

 

칸 영화제에서 ‘곡성’을 보고 배우 황정민이 실제로 무당이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랑종’에서는 ‘밍’의 이모이자 무당 역할이었던 ‘님’을 연기한 배우 ‘싸와니 우툼마’에게 그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필자도 초반에 영화를 보면서 실제 무당 중에서 연기를 할 만한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영화를 보다보면 실제 무당이 아니라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구나를 알 수 있다.

 

 

영화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시나리오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채 즉흥적으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때문에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 더욱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관객에게 다가왔던 것 같다.

 

■ 영화 하나가 쏘아올린 한-아세안 영화협력의 공

 

‘랑종’이라는 하나의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한국 영화이자 동시에 태국 영화인 ‘랑종’은 한국, 태국을 넘어 다른 국가에도 태국 영화, 그리고 한국-태국 합작 영화의 가능성을 널리 알려주고 있다.

 

한-아세안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협력에 동 영화가 자의든 타의든 불을 지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성과사업으로 한-아세안 영화기구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이후 한-아세안 영화인들의 합작 영화를 또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비단 피산다나쿤 감독만이 동 영화를 통해 큰 성과를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오히려 나홍진 감독이 참 영리한 선택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의 공포영화는 여름=공포영화가 공식이 되어 호황을 누리던 시기도 있었으나 뻔한 내용, 뻔한 공포에 식상함을 느껴 최근 들어 흥행에 성공한 공포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랑종’의 이국적인 배경과 이국적인 연출은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공포영화에 날개를 달아줌과 동시에 “나홍진표” 공포영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사실, 영화산업에 있어 아세안 지역은 전반적으로 공포영화가 강세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의 끈적한 날씨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세안 지역에서는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문화가 있는데, 때문인지 아세안 지역에서 공포영화는 타 장르에 비해 큰 자본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흥행에서는 성공을 하고 있다.

 

CJ E&M은 아세안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데, 2017년도에 CJ E&M이 제작한 인도네시아 최고의 장르감독으로 꼽히는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는 역대 로컬 공포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바 있다. 이는 CJ E&M이 제작한 영화가 인도네시아 박스오피스 순위 TOP10에 처음으로 진입한 것으로 아세안의 공포영화가 한국과 결합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한편, ‘랑종’ 역시 태국에서 모두 촬영한 덕분에 한국의 다른 영화에 비해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저예산, 고효율의 공식은 한국과 아세안 공포영화와의 또 다른 콜라보 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 제2의 ‘랑종’을 기대하며...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아세안의 귀신 한국서도 보고 싶다

 

이 밖에도, 아세안 공포영화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장치는 많이 있다. 특히, 아세안은 종교나 문화적 영향으로 전설, 요괴, 귀신들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소한 많은 종류의 귀신들이 있다.

 

전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태국의 ‘낭낙’ 귀신, 사람의 내장을 파먹으면서 살아가는 태국의 귀신 ‘폽’, 임신 중 사망한 인도네시아의 귀신 ‘꾼띨아낙’, 아이를 납치하는 할머니 귀신 ‘웨웨곰벨’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한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이 돌아가면서 토착귀신 ‘뽀쫑’ 분장을 하고 마을 입구를 지킨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귀신들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도 있는데,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아세안의 귀신을 한국의 영화에서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김시은 asean.sekim@gmail.com

 

김시은은?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교 형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에서‘인권을 기반한 개발’을 논문 주제로 하여 국제개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국제개발학 박사과정을 수료 후‘아세안 문화개발협력’ 관련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2010년부터 2012년 초까지 외교부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준비기획단에서 근무하고,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내에서 한-아세안 협력사업을 관리하는 전문관으로 근무하였다.

 

현재는 한-아세안 협력사업 컨설팅 및 아세안 관련 정보 제공을 주 업무로 하는 아세안랩(ASEAN LAB)을 창업하여 운영하며, 아세안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 외교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아세안 업무 매뉴얼을 담은 책 '아세안랩'을 8월 8일 출간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수잔리 하원의원 표창, 2012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 2017년 외교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정리=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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