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과의 방문군 협정(VFA) 종료 통보를 철회했다. 기존 결정을 번복하고 협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AP통신 등 외신 7월 30일자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이 전날 방문 중인 로이드 오스틴(Lioyd Austin)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난 뒤 방문군 협정을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마닐라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로렌자나 국방부 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측에 전달한 VFA 종료 통보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스틴 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결정은 오랜기간 동맹인 양국의 국방 협력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필리핀 동맹이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안전성, 번영을 위해 필수요소로 남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두 나라는 1998년 훈련 등을 위해 필리핀에 입국하는 미군의 권리와 의무 등을 규정한 VFA를 체결했다. VFA는 미군이 필리핀에서 연례 합동 군사 훈련인 ‘발리카탄’ 등을 벌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어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미국이 자신의 정치적 동료인 로널드 델라로사 상원의원의 비자 발급을 취소하자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VFA 종료를 통보했다.
이후 필리핀은 3차례에 걸쳐 협정 종료 시한을 연장했고, 지난 6월에는 올해 8월 종료 예정인 VFA를 6개월 추가로 연장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기존 결정을 번복하며 VFA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이 배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해리 로케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자국의 전략상 핵심이익을 지키고 양국간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책무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필리핀이 미국의 대(對) 중국 압박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선인 ‘남해 9단선’을 따라 영유권을 주장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아세안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휫선(Whitsun) 암초에는 인공섬을 조성해 군사 목적의 시설들을 설치하고, 중국 선박 수백 척이 정박하면서 양국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016년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통적인 우방국이었던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더 친밀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이유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양국 간의 골이 깊어졌다.
한편 동남아를 순방 중인 오스틴 장관은 지난 27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중국의) 이 같은 주장은 해당 지역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제법에 따라 남중국해 연안국들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그들을 계속해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