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묵은 레지던스는 40층 알타라(Altara)였다. 30층 내 방에서 퀴논 시내와 해수욕장, 그 반대편으로 항구가 보였다.
소위 ‘시티뷰, 바다뷰’가 끝내줬다. 전날 저녁을 먹고 커피와 음료수를 먹었던 ‘불야성’이었던 모래사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해수욕하는 이들이 보였다.
시선을 돌려 퀴논 시내를 한눈에 훑어보니 오른쪽으로 항구다. 어선이 정박한 ‘만 안의 만’ 그리고 그 바깥 무역항에는 컨테이너 야적장이 이어졌다.
그 유명한 프랑스 ‘풀만’ 호텔도 우뚝 서 있다. FLC 호텔 등 10여개만이 30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10층 안팎의 건물이 몇 개, 그리고 2~3층이 대부분인 소박한 도시였다. 시내 외곽 쪽으로 신도시가 건설 중이었다.
■ 퀴논성당과 랑송수도원 천주교 유서 깊은 건물
오전에 퀴논 유적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찾은 곳은 퀴논성당이었다. ‘농 성당’으로 불리는 이곳은 베트남인이 자주 쓰는 모자 ‘농’을 닮았다. 정말 꼭대기가 농을 덮어쓴 것 같았다.
평일 낮 인적이 드문 성당은 적막했다. 건물들은 정갈하고 단아했다. 본당 건물 첨탑 위쪽 ‘농’을 보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봤다. 서울 명동성당 같은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니 더 유럽풍이었다.
퀴논 성당 다음으로 이름난 천주교 수도원도 찾아갔다. 1864년 지은 것으로 알려진 랑송(Lang Song)수도원은 가톨릭신학교이자 성당이었다. 퀴논시 중심부에서 약 10km 떨어진 퍽 손(Phuc Son)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원래 신학교로 사용되었으나 월남전 이후 종교의 자유가 통제된 1983년 신학교는 폐쇄되고 지금은 성당과 수녀원의 역할만 한다. 건물들이 고색창연했다.
이곳은 현대 베트남 문자로 표기된 최초의 책을 찍어낸 곳이기도 했다. 랑송 인쇄소는 로마자를 바탕으로 한 베트남어 표기 체계인 꽝응우(Quoc Ngu)에서 책을 인쇄한 최초의 세 시설 중 하나다. 다른 두 인쇄소는 사이공의 탄딘과 하노이의 닌푸에 있다.
■ 시내에 있는 힌두 쌍탑 ‘탑 도이’, 판티엣에서 봤던 힌두 탑
퀴논 도심 지역에서 힌두탑 ‘탑 도이’(Thap Doi)를 만났다. 판티엣에서 첫 방문지가 힌두탑이었다. 그렇다. 퀴논은 힌두교를 바탕을 둔 참파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참파왕조는 퀴논에서 출발한 응우옌왕조에게 멸망했다.
퀴논은 참파왕국의 문화 북방한계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남북 베트남 충돌지이기도 했다. 프랑스가 개항을 했고, 2차 대전에는 일본군이 진주한 곳이다.
큰길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니, 탑 주위에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탑 도이’는 탑(Thap)은 탑(塔), 도이(Doi)는 2로 더블(double), 쌍둥이탑이라는 뜻이다. 눈앞의 2개의 쌍둥이탑은 3층 정도 높이로 붉은 벽돌로 웅장했다. 탑 상단부, 풀과 나무가 자란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바신을 모시기 위해 지어진 탑이다. 정면 계단을 밟고 실내로 들어가 보았다. 향이 피워진 과일로 가득한 제단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이 뚫려있다.
이 쌍둥이탑은 오랜 전란과 관리 소홀로 파괴되고 방치되었었다. 복원된 건 1990년대였다. 이곳에 탑이 세워진 것은 12세기 말 참파왕국의 전성기 때다. 이 쌍탑은 빈딘지역에 남아 있는 참족 탑 8개 중에 하나다.
■ 처음 타본 ‘침대버스’...누워서 베트남을 질주하다
풍경은 거기에 있는 사물들의 이름을 알 때 다르게 보인다. 퀴논 성당과 쌍둥이 탑을 둘러보고 퀴논의 특산물 ‘참치쌀국수’(분카)를 먹었다. 이제 쌀국수가 한국의 짜장면처럼 친근해졌다.
호텔 체크아웃하고 미니버스를 탔다. 여러 호텔에 들러 목적지가 같은 일행을 더 태워 터미널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는 건 6시간 동안 우리를 태워줄 다낭행 ‘침대버스’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타본 ‘슬리핑버스(Sleepingbus)’였다.
이 침대버스는 최고급은 아니었다. 일반용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다. 비닐봉지에 신발에 담고, 방처럼 신발 없이 통로를 오갔다. 양 창가에 7개 1, 2층 침대좌석이, 가운데는 8개의 1, 2층 침대좌석이 자리잡고 있다.
좌석에는 등받이가 있고 누우니 다리를 뻗을 수 있었다. 앞사람의 등받이 아래로 발을 넣을 수 있다. 의자는 누울 만한 각도로 뒤로 젖혀졌다. 베트남인들 평균 키보다 큰 사람들은 짧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 침대와의 사이 공간 위에는 물병이 하나, 사탕 세 개, 그리고 얇은 담요가 준비가 되어있었다. 젊은 남자 안내원 2명은 좁은 통로를 오가며 승객들을 살폈다. 중간에 내리거나 휴식 시간이면 방송으로 알렸다. 에어컨이 빵빵해 담요를 덮지 않으면 추울 지경이었다.
침대버스는 달려갈 때 조금씩 출렁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면 장기여행의 훌륭한 동반자로 손색이 없었다. 버스에서 한 번씩 틀어주는 베트남 노래를 들으니, 이국에서 새로운 모험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했다. 옹알이하는 아가 소리와 어린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버스 안을 채웠다.
버스는 두 번 쉬었다. 휴식 시간은 15분. 화장실을 가려고 내릴 때마다 버스 측에서 '쪼리'를 제공했다. 재미있는 건 이 버스 뒤에 ‘당신 결혼하라’는 한글 글자가 거꾸로 적혀 있었다. 신기했다. 아마 한국 버스를 인수 개조해 운행해서 그런 것 같다. 미얀마 시내에 ‘미아리’ 같은 한글 버스노선이 적혀 있는 버스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낭으로 달려가는 동안 날씨도 자주 바뀌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계속 쳤다. 흐려졌다가 해가 쨍쨍하기를 반복했다. 퀴논을 출발한 시각은 오후 1시. 오후 7시 25분에 한국인이 많이 찾아간다는 ‘경기도 다낭시’로 불리는 도시에 도착했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졌고,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거리 곳곳 한글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국 식료품 전문마켓 K-MART도 보였다. 다낭의 5개 중 다리 중 하나인 다리를 넘어 이름난 ‘월남쌈’집을 찾았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쌈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포만감’에 행복했다.
숙소는 다낭 미케비치 인근 호텔이었다. 체크인하자마자 기절한 것처럼 잠으로 빠져 들어갔다. 내일은 호이안과 다낭의 유명지 ‘배나힐’에 올라갈 생각이다. 제대로 다낭의 낮 풍경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