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대선)의 경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4년 첫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다섯 번째 대통령 선거다. 2024년 2월 14일 인도네시아의 운명이 갈린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약 2억 7000명으로 세계 인구 4위의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이벤트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부터 비용 절감을 위해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한 번에 실시했다. 넓은 영토에서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선거 진행에 세계가 주목했다. 이 선거를 위해 약 700만 명의 선거 관리 인원이 동원되었다. 선거 관리와 투-개표 과정에서 272명이 과로로 사망했다.
그 5년 후인 2024년 2월에 인도네시아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대선 판도는 프라보워-간자르-아니스 3강 구도다. 현재(2023년 11월)는 프라보워가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1위로 앞서고 있다. 프라보워(Prabowo Subianto, 72)는 조코위(Joko Widodo, 62)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Gibran Rakabuming, 36)’을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지정하며 대선 경주의 초반 기세를 잡았다.
조코위 대통령은 직선제로 당선된 첫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다. 그가 자기당 후보인 간자르(Ganjar Pranowo, 55)가 아닌 프라보워인 상대 후보를 지지하면서 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소위 ‘기브란 효과’다. 10월 초 여론조사에서 33.2%의 지지율을 보인 프라보워는 기브란 부통령 후보 지명 이후 11월 초 여론조사 39.7%로 치솟아 2위 후보에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10년간 집권을 하고 있는 조코위의 지지율은 여전히 70%를 넘는다. 조코위의 지지는 이번 선거의 핵심 변수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갈등은 조코위가 소속한 정당인 PDI-P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과연 민주주의-권위주의 진영 간 ‘협력과 경쟁’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 대선 삼파전, 조코위 대통령 아들 기브란 부통령 후보 ‘촉각’
이번 선거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두 번의 정권 교체(two turnover test)가 이루어지면 민주주의가 공고화됐다”고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인도네시아는 2004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2014년에 한 차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두 번째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또한 이번 선거는 현재의 여론 조사 결과로 미루어볼 때 3자 구도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는 조코위 대통령과 프라보워 국방부 장관이 연달아 맞붙으며, 양자대결로 치러졌다.
또한 이번 대선은 주요 후보의 구성이 흥미롭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치러진다. 이번 선거에 등록한 후보 조합은 다음과 같다.
1. 프라보워-기브란 2.간자르-마푸드(Mohammad Mahfud Mahmodin) 3. 아니스(Anies Baswedan)-무하이민(Muhaimin Iskandar)
*대통령-부통령 후보명, 인디카토르 폴리틱(Indikator Politik)의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의 여론 조사 결과 https://indikator.co.id/rilis-indikator-12-november-2023/
순)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국민으로부터 여전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한때 대통령의 재선까지 허용하는 현행 헌법을 ‘3선 개헌’하여 재출마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확고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조코위 대통령의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는 주요 변수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한 정당(PDI-P, Partai Demokrasi Indonesia-Perjuangan)의 후보인 간자르를 지지할 것이라 예상됐다. 간자르는 지방 정부의 유능한 행정가, 소탈한 인상 등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빼닮아 ‘리틀 조코위’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달 조코위의 장남인 기브란이 PDI-P의 상대 후보인 프라보워 후보의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참여하며 인도네시아 정치의 대변동이 발생했다.
■ 조코위-프라보워, 민주주의-권위주의 진영의 ‘협력과 경쟁’ 정치사
인도네시아 대선 후보 구성의 역동성은 인도네시아 현대 정치사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코위와 프라보워는 각각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권위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대표적 정치인으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했다.
조코위와 프라보워는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맞붙었다. 조코위가 두 번 연속 승리했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다당제가 실현되지만, 대선에서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두 후보로 각 정당이 ‘헤쳐 모이’며 양자 대결로 치러졌다.
인도네시아 현대 정치에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는 각각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Sukarno)와 쿠데타로 집권한 2대 대통령인 수하르토(Suharto)의 계보로 (재)구성된다.
조코위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의 장녀이자, 인도네시아의 5대 대통령인 메가와티(Megawati Sukarnoputri, 간선으로 당선)가 당대표로 있는 PDI-P 소속이다. 수카르노의 혈통이 아닌 조코위는 메가와티와 PDI-P를 통해 수카르노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한편 프라보워는 수하르토의 전(前) 사위다. 비록 현재 수하르토의 자녀와 이혼했지만, 군부 출신 정치인으로 국방부장관까지 역임하며 같은 군인 출신이었던 수하르토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실각한 이후 수하르토가 쿠데타로 집권했고 수하르토는 신질서(New Order)를 내세우며 수카르노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수하르토가 실각한 이후 두 번의 과도 정부가 있었다. 수카르노의 장녀인 메가와티가 대통령이 되며 수카르노가 역사,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카르노와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의 상반된 정치적 진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호주 국립대학교 마르쿠스 미츠너(Marcus Mietzner) 교수는 조코위와 프라보워가 맞붙은 2014년 대선을 수카르노의 민주주의 계보와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계보 간 대결로 정의한다. 조코위와 프라보워는 각각 수카르노와 수하르토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으며 서로의 정적으로 지난 10년의 인도네시아 정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의 경쟁은 2019년 선거 이후 미묘하게 변화한다. 조코위가 재선한 이후 2기 정부에 경쟁자였던 프라보워를 국방부장관에 임명하며 거대 연합 내각을 구성했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연합 내각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결합돼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정당 간, 주요 정치인 간 이합집산은 빈번하지만, 직전 선거에서 두 번이나 맞붙었던 상대를 내각에 참여시킨 결정은 인도네시아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 ‘기브란 효과’ 프라보워-기브란 39.7%, 간자르-마푸드 30.0%, 아니스-무하이민 24.4%
조코위와 프라보워의 정치적 연대는 서로를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임시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조코위의 장남이 프라보워와 러닝메이트를 맺는 전격적인 연대는 인도네시아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프라보워 후보의 기브란 부통령 후보 지명은 예상 밖이었을뿐만 아니라,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다. 인도네시아 헌법에서 40세 이상만 정·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지만, 36세인 기브란은 선출직을 역임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활용하여 후보가 됐다. 이 조항은 기브란의 입후보 직전 개정되며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인디카토르 폴리틱(Indikator Politik)의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라보워-기브란 조는 39.7%, 간자르-마푸드 조 30.0%, 아니스-무하이민 조는 24.4%를 얻었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서 프라보워-기브란 조는 2위 후보에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이전 10월 초 조사에서 프라보워의 지지율이 33.2%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기브란 효과'가 있는 셈이다.
■ 메가와티 ‘수카르노 가문 삼대 대권 야심’...조코위 상의없이 후보 선정 ‘폭발’
조코위 대통령을 중심에 두고 이를 살펴보면, 조코위 대통령은 소속 정당인 PDI-P의 후보가 아닌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새다. 사실 조코위 대통령과 PDI-P의 마찰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코위 대통령과 메가와티(Megawati Sukarnoputri) 당대표 간의 갈등이다.
메가와티 당대표는 1999년 간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연이어 두 번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메가와티 당대표는 뒤로 물러서 조코위 대통령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간접적으로 실현했다.
조코위 대통령에 대해 재임 기간 내내 메가와티로부터 ‘수렴청정(垂簾聽政)을 받는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소문이 얼마나 사실일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지만, 메가와티 당대표의 정치적 야망은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이로 인해 조코위 대통령과 메가와티 당대표 사이에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가 존재했고, 두 사람의 갈등은 표면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메가와티 당대표가 자신의 딸이자 수카르노의 손녀인 푸안(Puan Maharani) 국회의장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싶어했고, 조코위 대통령은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메가와티는 수카르노 가문 삼대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꿈을 꾸었고, 이는 푸안의 낮은 지지율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로써 조코위와 메가와티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재는 메가와티가 ‘리틀 조코위’인 간자르를 조코위 대통령과 상의 없이 PDI-P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고, 조코위 대통령은 이에 반발했다고 알려져있다.
이 소문은 기브란이 프라보워의 부통령 후보가 된 이후 조코위 대통령은 상대 후보를 지지하며 증명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메가와티 당대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의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높은 정치적 지지를 활용하여 이에 반발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의 오바마’ 조코위, 권위주의와 연대...이상한 선거
지난 10년간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첫 대통령은 군부 출신인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였으며, 조코위 대통령은 직선제로 당선된 첫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었다.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 불리며 정치적, 문화적으로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4년,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의 당선은 많은 기대 속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시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선거가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조코위 대통령은 권위주의 유산을 이어받는 후보와 연대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계보를 잇고 있는 메가와티는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민주주의, 권위주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메가와티와 프라보워는 이번 선거에 사력을 다할 전망이다. 메가와티는 76세로 고령이며 여러 차례 선거에서 막후 조정하는 역할에 대한 피로도가 높다. 프라보워 역시 72세로 고령에다 세 번째 대선 도전이다. 두 사람에게 이번 선거에서 패할 경우 재기할 기회는 없을 것처럼 보여진다. 이번 선거에서 군부 권위주의와 비민주적인 가문 정치 중 적어도 하나는 끝나는 ‘마지막 승부’이다. 제3의 후보인 아니스가 당선될 경우 둘 모두 끝난다.
조코위의 당선과 재선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정치적 미래의 ‘시작’을 예고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이번 대선은 어느 쪽이 ‘끝나는지’에 이목이 집중된 선거다. 인도네시아 정치의 해묵은 퇴행적 정치 문화 중 하나는 상대방의 승리에 의해 끝난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어떤 정치 문화를 끝낼 것인가, 인도네시아의 ‘끝내주는’ 선거가 막이 올랐다. 분명한 건, ‘시작’보다 ‘끝’을 예상하며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이벤트를 기다리는 마음이 설레지만은 않다.
글쓴이=박준영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사 수료 disciple0411@snu.ac.kr
박준영은?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인도네시아 지역학의 관점에서 도시 지리, 이주의 지리를 전공했다. 석사 학위 논문은 ‘인도네시아 탈식민주의 공간 실천’에 대해 작성했다.
기타 연구 주제로는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한인 이주, 인도네시아 국제 이주, 불안정 노동 문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