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접어든 할리우드는 영화의 예술성을 간과하는 대신, 돈맛을 본 거대한 자본 세력에 의해서 성냥공장이 되어간다. 같은 기능과 같은 모습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
거대 자본 세력들은 티켓 파워는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스타급 배우 위주의 캐스팅과 천편일률적인 서술구조를 반복하는 장르영화들로 은막을 채우기에 바빴다. 동시에 지배계급이 원하는 전통적인 관습들과 상업적 유행들을 은근슬쩍 대중들의 무의식에 심어놓는 기능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런 생태계에서 배우로 살아가던 존 카사베츠는 반체제적이고 전위적인 ‘그림자들’ (원제 Shadows. 1959년 제작) 로 미국영화역사상 최초의 독립영화를 만든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고인 물이 되어가던 생태계에 새 물결을 대준 것이다. 그리고 12년 후, 카사베츠는 1930년대의 대공황시절에 탄생했던 스크루볼 코미디의 장르적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오늘 소개할 영화를 만든다. 그는 이 영화에 필름 누아르,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웨스턴, 로맨스 드라마 등 여러 장르들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비틀고 녹여서 인물들의 내면을 성공적으로 표현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맑고 밝은 날 흐르는 경쾌한 시냇물의 리듬이고, 이키루는 어두운 밤에 핀 환한 달빛을 반사하며 비장하게 흐르는 강의 리듬이며, 라 스트라다는 굽이굽이 거친 계곡을 타고 흘러가는 격류의 리듬이라면, 이 영화는 눈부시게 쨍쨍한 하늘에서 느닷없이 내리는 소나기의 리듬이다. 잠시라도 넋을 잃고 있다 보면 우리들의 감정은 축축해졌다가 시원해지고, 바짝 말라가다가 이내 선선해진다.
줄거리는 이렇다. 기성의 가치관에 반기는 들었지만 평화운동으로 시작하다가 결국엔 기성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 히피문화를 상징하는 대리 주차원 모스코비츠는 여느 일상처럼 퇴근 후 술집을 전전하며 시비를 걸고 난동을 부리다가 구시대를 상징하는 아이리쉬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는 문득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는 일념만 품은 채 뉴욕을 떠나 미지의 서부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다.
한편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적이고 매력적인 미니는 전통적인 여성상의 그늘과 할리우드 영화들이 심어놓은 환상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공허감에 찌들어가는 독신녀이자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살아간다. 그녀는 관계를 맺고 있던 찌질하고 폭력적인 유부남에게 먼저 이별통보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되고 점점 신경쇠약의 상태에 빠진다. 참고로그 유부남은 카사베츠 본인이 연기했고 미니 역을 맡은 제나 롤런즈는 카사베츠의 부인이다. 이런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고 알게된다.
이성적인 사고보단 직관적인 행동의 모스코비츠는 첫눈에 미니에게 빠지지만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상반된 모습들만 들춰보는 미니에게 거부만 당한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드라마를 치달리던 둘의 관계는 모스코비츠가 자신의 진실함을 보여준다고 그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상징되는 콧수염을 자르고 나서야 다시 스크루볼 코미디로 전환되고, 미니는 정신적 공허감과 헛된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서 꽃을 피운 진실한 사랑으로 사회의 편견들을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카메라는 아늑한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미니와 모스코비츠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이의 돌잔치 풍경을 와이드 쇼트로 잠깐 보여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인물들의 삶 속으로 빠르게 줌 인(zoom in)해서 들어간다. 카사베츠는 그 풍경 안에서 먹고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며 즐기는 미니와 모스코비츠, 그 둘의 늙은 엄마들 그리고 새싹 같은 둘의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경의와 동감을 보내고 동시에 사랑의 진동과 찬란한 순간들을 관객들에게 나눠주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글쓴이 = 송예섭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