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급변하는 국제정세, "북방은 닫히고 남방은 열리다"

  • 등록 2022.04.28 07: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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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명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신냉전 위기 동남아 긴밀한 연대 시급

 

분단된 반도를 둘러싸고 대륙의 거센 바람과 열도의 거친 파도가 날카롭게 부딪친다.

 

북핵문제로 차갑게 식어가던 동북아의 정치지형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더욱 빠르게 얼어간다. 남북협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유라시아와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현정부의 신북방정책은 종적이 묘연하다. 그러나 동남아-남아시아와 지역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은 성과가 주목된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요체를 안보(足兵), 경제(足食), 신망(民信)이라 설파한다. 그의 고전적 성찰은 현대적 정치이론에서 평화의 필요조건으로 부각되는 정치군사적 세력균형, 경제사회적 상호의존, 문화이념적 연대의식과 적절하게 조응한다.

 

그것은 21세기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변동에 따라 동북아와 동남아를 아우르는 광역적 동아시아 차원에서만 충족된다. 정치군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 국력의 급속한 반전에 따라 동북아 역내 세력균형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중국은 GDP에서 2010년 일본을 추월한 다음 2020년 일본의 3배를 초과한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로 북방은 굳게 닫히지만 남방은 활짝 열려있다. 중국에 대한 세력균형의 필요에 따라 동남아와 인도까지 한국의 ‘안보권’이 확대된다.

 

경제사회적으로, 세계적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1990년 한국무역의 절반에 근접하던 미국(26%)과 일본(22%)의 비중은 2020년 각각 13%와 7%로 감소한다. 그러나 1990년 중국(0%)과 동남아(7%)의 비중은 2020년 각각 25%와 15%로 급증한다.

 

시장경제의 지역적 확산으로 인해 상호의존의 중추가 미국과 일본에서 중국과 동남아로 교체되고 한국의 ‘경제권’이 확대된다.

 

문화이념적으로, 한자와 유교의 문화적 전통과 어긋나는 지배와 종속의 역사적 경험은 동북아의 정체의식을 희석한다. 한-중-일 사이 반감이 항상 호감을 압도하는 바, 최근의 반감은 최악의 수준이다. 불교, 유교, 이슬람, 기독교 등 다양한 전통의 동남아가 오히려 동북아에 우호적이다. 그러한 문화적 변동을 대변하는 광역적 연대의식은 한국의 ‘문화권’을 확대한다.

 

이와 같이 한반도 평화의 조건은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대륙과 열도에 에워싸인 지리적 위상과 중국과 일본에 시달리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의 시각을 자꾸 동북아로 축소한다. ‘천조(天朝)’를 자부하던 중국과 ‘신국(神國)’을 자임하던 일본보다 한국은 너무 동북아에 갇혀있다. 이제 근시적-정태적 시각보다 거시적-역동적 시각이 요청된다.

 

첫째, 동남아는 사면초가의 돌파구다. 남북협력과 북미대화의 단절에 따라 신북방정책의 북한-중국-러시아 협력구상도 무너진다. 대일관계도 최악의 수준이다. 대륙과 해양의 통로가 모두 막혀버린 한국은 고도와도 같다. 한국무역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지난 30년 동안 줄곧 2%에 불과하지만, 강화되는 제재가 동북아의 사면초가를 더욱 악화한다. 대안은 동남아이다.

 

둘째, 동남아는 사통팔달의 교두보다. 동남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교차로에서 세계를 향해 열려있다. 과거의 패권을 돌이키려는 ‘중국몽’과 현재의 패권을 지켜내려는 ‘미국몽’이 마주치는 ‘세기의 마라톤’이 거기에서 전개된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이 동남아에서 중첩한다. 양국의 접점을 확대하는 것이 세계를 향한 한국의 출구를 여는 열쇠이다.

 

셋째, 동남아는 미래질서의 시금석이다. 한미동맹은 평화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못된다. 강대국과 중소국이 모두 지역질서의 원칙으로서 ‘아세안 중심성’을 수용한다. 동아시아는 질서(유럽)와 무질서(중동)의 중간에서 방황한다. 동남아의 2015년 아세안공동체는 2001년 한국이 주도한 동아시아비전그룹의 “평화, 번영, 진보의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시금석이다.

 

신냉전의 위기를 신질서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한국과 동남아의 긴밀한 연대가 시급하다. 중국이 주도한 ‘중화(中和)’의 위계적 질서와 일본이 시도한 ‘대화(大和)’의 강권적 질서를 넘어 강대국과 중소국이 공정하게 공영하는 공화(共和)의 민주적 질서가 역사적 숙제다. 신북방정책은 재론과 조정이 필요한 부채이지만, 신남방정책은 계승과 발전이 기대되는 자산이다.

 

글쓴이=박사명 전 한국동남아연구소 이사장

정리=박명기 기자 highnoon@aseanex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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