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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과 과식, 나눔이 공존하는 말레이시아 '라마단'

라마단 금식은 굶주림 체험과 신에 대한 믿음 시험.. 하지만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소비해

 

말레이시아는 지금 라마단(Ramadan) 기간이다. 통치자 인장 보관인이 지난 12일부터 라마단을 시작한다는 이브라힘 국왕의 결정을 라디오를 통해 알린 지 보름이 지났다.


라마단은 초승달이 보일 때 시작해서 다음 초승달이 보일 때 끝난다. 이슬람력은 윤달이 없는 순 태음력이라 양력 날짜는 해마다 조금씩 앞당겨진다. 지난 해에는 3월 23일부터 시작됐다. 올해는 3월 10일부터이지만 10일에 초승달 관측이 안돼 12일로 연기됐다. 3월 12일부터 4월 10일까지가 라마단 기간이다.

‘강렬한 더위’란 뜻의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에서 아홉 번째 달의 이름이다. 마호메트가 알라에게 처음으로 코란을 계시 받은 날이 속해 있는 달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금식, 금욕을 하며 경건하게 지낸다. 라마단을 금식 성월이라 부른 이유다.

 

라마단 금식에 대해서는 코란에 나와 있다.

 

“하얀 실이 검은 실과 구별되는 아침 새벽까지 먹고 마시라. 그런 다음 밤이 올 때까지 단식을 지키고 여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사원에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할 것이라. 이것이 알라께서 제한한 것이니”(코란2장 187절)

 

금식은 해가 뜰 때부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한다. 올해는 아침 6시 쯤에 시작해서 저녁 7시 대까지 하루 13시간 정도 금식한다. 먹을 것과 마실 것뿐만 아니라 담배나 껌도 안 된다.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체험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데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식 후에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면서 음식 소비량은 더 늘어난다. 지난해에는 육류 소비량이 평소보다 50% 늘었다. 버려진 음식물도 9만톤으로 15~20% 증가했다.

 

 

모히딘 압둘 카데르(Mohideen Abdul Kader) 페낭(Penang) 주 소비자 협회 회장은 “라마단은 무슬림들에게 강렬한 헌신의 달로 여겨지지만, 일부에게는 잔치와 낭비의 달이 됐다.”며 “ 20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기아에 처해 있으므로 성월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슬림이 운영하는 할랄 식당들은 낮시간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여행객이나 외국인,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오거나, 중국식당 또는 인도식당을 이용한다. 무슬림이 대부분인 직장들은 어차피 점심을 먹지 않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일하는 대신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이상 앞당긴다.

 

말레이시아 공립학교도 금식하는 무슬림 학생들을 배려해 구내식당을 폐쇄한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학교 매점 운영자 협회는 비무슬림 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10% 보다 적으면 매점 폐쇄를 권고했다.

 

해가 지면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새벽까지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저녁 식사를 ‘이프타르(Iftar)’라 하고, 해뜨기 전 식사를 ‘수후르(Suhoor)’라고 한다. 

 

주부들도 금식을 하느라 기력이 약해져서 라마단 기간에는 대부분 밖에서 사 먹는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뷔페 맛집과 가볼 만한 바자회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웬만한 식당들은 일몰이 끝나기 전부터 붐빈다. 손님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와도 먹지 않는다. 모스크의 ‘아잔’이 들려야 비로소 식사를 시작한다.

 

 

‘아잔’은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소리로 대개 모스크의 스피커에서 울려퍼진다. 무슬림들은 하루 5번 기도하기 때문에 아잔도 5번 울린다. 아잔이 울리는 시간은 새벽(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때), 정오(해가 정점에서 가라앉기 시작할 때), 낮(정오의 그림자에 자기 그림자만큼 더해졌을 때), 일몰(일몰 직후), 저녁(어둠이 내리고 하늘에서 빛이 없어질 때)이다. 이 중 일몰 시간에 하는 네 번째 기도를 ‘마그리브(영어로는 마그레브 maghreb)’라고 한다. 

 

모스크에서 나오는 아잔은 “신은 위대하다”, “나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증명한다” 등 다양하며, “기도하는 것이 자는 것보다 낫다”라는 아잔은 새벽에만 들을 수 있다.

 

 

마그리브 아잔이 들리면 식사를 시작한다. 쇼핑몰에서는 안내 방송으로 친절하게 금식이 풀리는 시간을 알려준다. 이때 사람들은 “라마단 카림(Ramadan Kareem)”이나 “무바라크 라마단(Mubarak Ramadan)” 라고 말하면서 식사를 시작한다.

 

식당들은 팔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라마단 기간에 덕을 쌓으면 복을 두세배로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푸지아 살레(Fuziah Salleh) 국내유통및소비자부(KPDN) 차관은 “라다만 시작 후 6일 동안 마이세이브푸드(MySaveFood)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라마단 바자회에서 11만6천링깃(한화 약 3300만원) 상당하는 8.1톤의 음식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이세이브푸드는 바자회에서 팔리지 않은 음식을 모아 복지시설이나 소외계층에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상점들은 라마단 특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2~3주 전부터 라마단을 알리는 안내판과 화려한 장식을 하고 특별세일을 한다. 라마단 기간 동안 상점 매출이 연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크다. 대추야자나 견과류는 특히 많이 팔린다.

 

모스크에서는 ‘이프타르’를 무료로 나눠준다. 페락(PERAK) 주에 있는 한 모스크는 라마단 기간 동안 16가지 이상의 향신료가 들어간 80년 전통의 제조법으로 만든 ‘부부르 람북(Bubur Lambuk)’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부부르 람북은 일종의 쌀죽으로 라마단 기간에 많이 먹는다.

 

모스크 관계자는 "라마단 첫날 오전 8시부터 모스크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해서 오후 1시쯤에 포장과 배포 준비를 한다. 부부르 람북 배포는 매일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되며,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면업체인 매기(Maggi) 말레이시아도 매년 부부르 람북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한다. 올해도 20만 그릇을 제공한다.

 

 

말레이시아의 주들은 라마단 기간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거나 행사를 진행한다.

 

멜라카(Melaka), 조호르(Johor), 케다(Kedah) 주는 라마단 첫날을 공휴일로 정한다.

 

멜라카(Melaka) 주는 주 범죄법에 따라 라마단 기간 동안 낮에 공공장소에서 식사하는 무슬림을 적발하여 구금하고 음식을 판매한 상인들에게도 조치를 취한다. 금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검은 비닐봉지 갱단(black plastic bag gang)’이라 하는데, 작년에는 96명을 체포했다.

 

파항(Pahang) 주의 경우는 라마단 기간 동안 공무원들의 금요일 근무시간을 낮 12시 30분으로 단축했다.

 

한 달의 라마단이 끝나면 보통 사흘 정도 ‘이드 알 피트르(Id al-Fitr)’라는 명절이 곧장 이어진다. ‘이드’는 아랍어로 잔치를, ‘피트르’는 금식의 끝을 가리킨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하리 라야 푸아사’, ‘하리 라야 아이들피트리’ 또는 줄여서 ‘하리 라야(Hari Raya)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 새 옷을 입고 모스크의 아잔에 맞춰 기도를 올린다. 오전에는 모스크나 광장에서 특별 기도행사에 참가한다. 친척과 지인들을 방문하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오픈하우스를 진행한다. 화교 영향을 받아 친척이나 손님들에게 초록색 돈봉투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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