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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피 땀 눈물로 쓰여진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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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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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원 선생 도착한지 100주년...각각 인물과 사건 엮어 ‘거룩한 역사’ 탄생

 

어린 시절 색종이를 오려서 하나를 고리로 만들고 다른 종이를 고리에 걸어 다시 고리를 만들기를 반복하다 보면 커다랗고 알록달록한 고리 목걸이가 되었다.

 

각각의 인물과 사건이 고리처럼 연결되어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이하 한인사)라는 무지개빛 커다란 고리목걸이가 됐다. 한인사 집필을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원고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니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비추며 형체를 드러낸다.

 

■ 일제 식민지-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인도네시아 한인 삶과 사건 ‘고리 목걸이’

 

재인도네시아한인회는 1920년 9월 20일, 장윤원 선생의 네덜란드령 동인도 도착을 기점으로 한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인사를 출간하기로 했다. 2019년 7월 26일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의실에서 출범식을 갖고 그 시작을 알렸다.

 

한인사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한인의 삶을 시작한 인물과 계기 그리고 일제 식민시기에 온 한인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인도네시아에 건너온 한인과의 연결 고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인에게 고리의 시작은 100년 전 장윤원 선생이다. 장 선생은 조선이 일본에 점령당해서 더 이상 조국이 그를 보호해줄 수 없게 되자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에 와서 정착했다.

 

이어 약 20년 후 일본의 강압으로 조선인 위안부와 군속들이 인도네시아에 왔고, 장 선생은 일본 패망 후 그들이 귀국하는 과정을 도왔다. 다시 20여 년이 흐른 후 인도네시아에 온 한국인들은 장윤원 선생의 자녀인 장남해와 장평화 등의 도움을 받았다.

 

또 1940년에 일본군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와서 인도네시아에 남은 김만수와 유형배는 1962년 열린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을 지원했고,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맏형 역할을 하며 각자의 고리를 다음 고리에 연결시켰다.

 

■ ‘길없는 길’ 개척한 KODECO-미원-서마두라 한인 기업 계보 한눈에

 

전설처럼 이야기되던 한인 사업가와 한인 기업들의 개척기도 한인사에 모아 놓으니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인도네시아와 한국 더 나아가 세계 경제라는 큰 틀에서 움직인 모습이 보인다.

 

1968년 ‘한국 해외 투자 1호’ 한국남방개발(KODECO)의 원목 사업, 1973년 ‘한국 해외 생산 플랜트 수출 1호’인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 1981년 ‘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 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 1992년 우리나라 대외무상원조 기관인 코이카의 해외사무소 1호 설치, 한국산 고등 훈련기 T-50과 잠수함의 최초 수출국 등.

 

 

한국인들은 낯선 땅 인도네시아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발전과 개인의 성공을 이뤄냈다.

 

1960년대 말 한국기업이 진출한 이래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도 있고 사라진 기업도 많다.

한인사를 쓰며 어떤 기업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사라졌는지도 물었다. 인도네시아 원목산업은 원시림에서 나무를 베어서 원목 상태로 수출하다가 원목을 합판으로 가공해서 수출하고 이제는 나무를 심어서 조림목을 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신발산업의 메카는 자카르타 서부 위성도시 땅그랑에서 시작해 서부자바로 이어서 중부자바로 옮겼다. 봉제산업은 노동자들이 재봉틀을 돌려서 만들던 2차 산업에서 ITC기술을 도입해 4차 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한인슈퍼마켓은 한국식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다가 한류를 타고 한국식품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식품수입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인기업들은 경쟁하고 협력하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탄탄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고 변화에 휩쓸려 사라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 한인기업들은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와 각종 산업협회들을 통해 협력하며 한인경제공동체를 키웠다.

 

■ 2018년 아시안게임, 한인-인도네시아인 하나로 만든 빛나던 시간

 

인도네시아에 한인사업가와 기업이 진출한 뒤 한국대사관이 설립됐고, 한인회도 한인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 현지에 체류하는 한인과 한인기업 입장에서 한인회와 한국대사관의 역할은 위기 때 더 절실하다.

 

최근 양국 간 포괄적 동반자협정(CEPA) 타결로 양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한층 늘어나 현재 현지 교민 수는 현재 3만 명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회와 한국대사관이 1998년 5월사태 같이 절박했던 순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비판을 받은 이유는? 다른 한편으론 2018년 아시안게임과 같이 빛나던 시간에 어떻게 한인과 인도네시아인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했는지 한인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인사에서는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오는 과정, 한국음식 구하기, 한국인의 정체성 교육 시키기, 종교와 문화 생활 등 우리들의 소소한 생활상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이 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폈고, 한류가 인도네시아에 어떻게 확산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한인공동체에서 소수로 분류되고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신자와 유학생들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했다. 마지막 장은 한국 정부 관련 단체와 한인 문화예술 활동 그리고 지한파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을 소개했다.

 

한인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100년은 한 권의 책에 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고 1년여의 취재와 집필 시간 그리고 500쪽 가량의 책에 정리하기에는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변화무쌍하다.

 

쓰고 나니 빠진 부분도 보이고, 썼다가 지면의 한계로 인해 삭제한 부분도 많아서 아쉽다. 여러분께 들은 이야기와 받은 사진과 자료를 다 기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 책이 다음 고리의 시작이 되어서 더 많은 한인과 한인공동체의 이야기들이 기록되고, 내일을 위한 나침반이 되길 바라며 1년 여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조연숙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국장 dailyin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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