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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서울시 '필리핀 가사도우미' 월급 100만원 가능할까

서울시 시범사업 최저임금 보장 우선 시행.. 가정 부담 줄이고 노동환경 개선 방안 나와야

 

서울시가 올해 추진하고자 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준비가 마무리 단계다. 정부가 필리핀 정부와 협의를 완료하는 대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허가와 임금 등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남아 있어 정확한 시행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서울시 시범사업은 만 12세 이하 아동을 키우거나 출산 예정인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필리핀 가사도우미 100명을 6개월 간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입주가 아닌 출퇴근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범사업이라 최저임금(시급 9860원)이 보장된다. 서울시는 가사도우미가 머물 숙소나 교통비 등은 지원하지 않을 계획이다. 수혜가구에 대한 보조금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필리핀 직업훈련원(TESDA)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수료증을 발급받은 만 24세 이상이 대상이다. 이들 중 한국에서 육아 및 가사 관련 경력과 지식, 어학능력 평가, 범죄 이력 등 신원 검증, 마약류 검사 등의 심사를 거쳐 선발된다.

 

국내 입국 전후에는 한국 언어와 문화, 노동법 등을 교육받고, 지난 해 10월 선정된 2곳의 국내 가사도우미 서비스 제공기관에 배정된 뒤에 아동학대 방지를 비롯해 가사-육아, 위생-안전과 관련한 교육을 받고 가정으로 보내진다. 숙소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마련하고, 숙소 비용은 가사도우미가 부담한다.

 

시범사업은 최저임금 적용으로 월 206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게 되지만, 고용주인 가정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 부담이 커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3월 5일 발표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는 2023년 육아도우미 고용 비용이 월 264만 원(최소 10시간 이상 기준)으로 나타났다. 30대 가구 중위소득 509만 원의 50% 이상이다. 높은 비용 부담은 여성의 경제활동 제약, 저출산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해 8월 한 달간 0~12세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전일제로 이용할 경우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월급여는 124.9만 원으로 조사돼 최저임금에 미달했다.

 

 

한국은행은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 도입을 언급하면서 두가지 검토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개인 간의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가정의 ‘가사 사용인’은 근로관계 법령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며, ILO협약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따라서 월급 100만원의 고용이 가능해진다.

 

둘째는 외국인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 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법이다. 즉 가사서비스에 대한 최저임금을 내외국인 구분 없이 낮게 책정하는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이 업종별 차등적용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위원회가 의결하면 가능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중한 한국은행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월급이) 월 200만원이 넘어서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 시장은 지난 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한 100만 원 정도 되면 정말 정책 효과가 좋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월급 100만 원을 적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성평등 걸림돌’ 인사로 지목하자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가사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막는 선제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12일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는 돌봄서비스의 가치를 폄훼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차별을 두어 노동시장으로 유입한다는 발상은 국제적인 협약과 기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비켜가기 위한 꼼수 "라고 지적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위원장은 "부족한 돌봄 인력을 외국인 근로자로 채우고 싶은데 법적으로 정해진 임금은 주고 싶지 않다, 권리 보장은 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이하로 차별 받을 이유가 없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 정책은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사 서비스 임금이 낮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국제노동기구(IPO)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최저임금이나 업종별 차등 적용을 받지 않는다. 시장 가격에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으로 1997년에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인 ILO 제100호에 비준하였고 1998년에는 인종-성별-종교-출신국 등에 따른 고용 및 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ILO 제111호에 비준했다.  따라서 임금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할 수 없다. 또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불공정무역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낮은 급여는 가사도우미의 이탈 및 불법체류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개별 가구와 직접 계약을 통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방안은 사적 계약이라는 특성상 정부 등이 관리 감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불법체류를 하지 않도록 유인하는 제도를 같이 마련해야 한다.

 

내국인 가사근로자를 보호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낮은 임금을 주거나 돌봄서비스 업종에 차등 임금을 주는 것도 내국인 가사근로자의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교육 등을 통해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서 외국인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내국인은 언어 및 문화 차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이 거의 없는 장점도 있다. 다만 이행과정에 필요한 교육이나 소득 하락에 대해서는 보조금 등을 통해 적극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크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이용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74%가 ‘의향 없음’으로 답했다. ‘의향 있음’은 26%다. 돌봄 노동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맡기기엔 아직 거부감이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도입보다는 국내에서 문제해결 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맞벌이 가구 여성노동자의 하루 평균 아이 돌봄 시간은 12시간에 달한다. 부담 해소를 위해 공적 돌봄 이용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응답자들은 가장 필요한 돌봄 정책으로 ‘돌봄 서비스 기관의 질적 향상(32%)’을 꼽았다. 돌봄 서비스 질 향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가 지목됐다.

 

공적 돌봄 확장과 서비스 질 향상만이 답은 아니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52.8%)이 부모 근로시간 소폭 감축, 자녀 돌봄시간 소폭 증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부모가 직접 돌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희망했다.

 

결국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노동환경과 생활 여건의 개선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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