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부고] 아들의 인성을 고려해 생물학적 계산까지 철저히 한 공인회계사 김기선 씨 별세, 향년 89세

그토록 찾으신 식탁 위 찹쌀떡은 사실 제가 먹어 치웠습니다

 

 

  어렸을 때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했습니다. 형편없는 수영실력이지만 친구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오기 하나로 물에 뛰어든 결과였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직접 수영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세상의 전부였던, 물론 어머니의 반쪽 세상을 합한 전부이지만, 아버지는 저에겐 그야말로 구루였습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아버지에게 수영을 배운다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만, 수영은 몇 번 하다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배운 수영이 폼나는 '자유형'이 아니라  '개헤엄'이란 걸 알았던 겁니다. 아버지에게는 테크닉보다 존재와 삶이 우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겸손과 절약 그리고 성실을 좌우명 삼아 살아오셨습니다. 89년 인생 중 84세까지 현역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귀감의 대상이었습니다. 음식 베풀기를 아껴 하지 않는 탓이기도 했습니다. 다정하셨고 합리적이며 때론 함께 인생을 상의할 친구 같은 분이셨습니다. 늘 뒤에서 붙들어주시고 토닥여주셨으며,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아마도 생전 어머니의 전투력이라는 뒷배를 많이 믿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과 손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독서광이셨던 아버지는 한때 문학도를 꿈꾸었던 저에게는 올려다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5cm 차이가 나는 키로 인해서, 아버지를 올려다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세를 낮춰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인성을 위해, 겸손의 미덕을 갖춘 아들을 만들기 위해 생물학적 계산까지도 철저히 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키가 아버지보다 5cm 정도 크셨으니까요.

 

   어머니와 사별 후 아버지는 힘겹게 버텨 오셨습니다. 눈치 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셨겠지만, 어머니 생전 사진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천국으로 향하는 열쇠가 있다면, 그런 투명한 눈물로 빚어 만든 것일 테지요. 생전에 두 분이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오셨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대목입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급적 밝은 부분을 보여주려고 애써 오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론 환하게 웃으시며, 때론 힘겹게 버텨오던 고된 세월의 고삐를 스르르 놓으신 아버지, 이제 모든 시름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아버지는 언제나 제 마음의 영웅이십니다. 늘 양보하고 희생해오신 아버지께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얼마 전 식탁 위에 놓여있던 찹쌀떡은, 사실 제가 먹어 치웠습니다.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계속 찾고 다니신 걸 알고 있습니다. 다음날 가져다 놓은 시루떡이 그 보상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제가 다 먹어버리고 말았지만. 

 

  목련이며 벚꽃이며 봄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남쪽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온몸을 내던지는 동백과 함께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올해에는 개나리 필 때 즈음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기로 했었지요. 작년 가을 조금은 스산했던 벌초가 맘에 걸리셨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 걱정 붙들어 매도 좋습니다. 제가 1년에 한 번 이상은 장담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재회하실 테니 발걸음은 가벼우실 겁니다. 햇수로 7년 만의 만남이니 하실 말씀들이 얼마나 많으시겠어요.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 즐거움에 취해 저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가네요. 이승에서 두 분이 같이 지내셨던 날들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많은 날들을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저의 영웅이십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믿음을 주고, 꾸며내지 않지만 멋스러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제 모든 시름 벗어 던지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이 못난 아들이 엎드려서 빕니다.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아들 김한종

 

 

김한종(매일경제 이사) 희종(요리연구가) 씨 부친, 허정선 씨 시부, 김혜주 씨 조부

빈소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 2호실

임종  2024년 04월 07일(일) 08시 45분

입실  2024년 04월 07일(일) 11시 30분

입관  2024년 04월 08일(월) 15시 00분

발인  2024년 04월 09일(화) 08시 00분

장지  대전공원묘원

포토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