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을 압도하는 미얀마에 대한 낙관론 ② 휴대폰 보급 이후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 한국인들이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시아를 분석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천연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해 발전가능성이 크다”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보고서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이 같은 접근방식은 19세기 이래 지속되어온 ’식민주의(colonialism)‘나 20세기에 유행한 ‘발전주의(developmentalism)’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그리 권장할만한 접근 방법은 아닌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는 조금만 나쁘게 해석하면 “너네 나라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스스로 활용을 못하니 우리가 대신 개발해주면 대박날 건데…”라는 표현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국에 대한 비하와 이를 바라보는 외부인의 은근한 우월주의가 깔린 표현으로 실제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의 이같은 접근법에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한다. 돈벌이로 접근하지 말라는 일종의 무언의 경고인 셈이다. 그런데 마땅히 대안적 접근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군부 독재시절엔 주로 미얀마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적 접근이 많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대개 냉전시대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군부독재를 거진 다 거쳤기
지난 연말의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고 있는데, 옆좌석의 젊은 외국인 아가씨가 내 푸른색 여권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온 것이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저 지금 케이팝(K-POP)을 듣고 있었어요. 한국 사람을 비행기에서 만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해봤어요." 무료한 비행기에서 친근한 인상의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한참을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샨족 출신의 미얀마인 그녀가 싱가포르에서 한 소규모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할 고등학생이 나홀로 싱가포르에까지 가서 공부할 일은 없을 테니 대학생인 것은 알겠는데, 그녀의 앳된 얼굴이 나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혹시 나이를 여쭤봐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올해로 17살이에요. 내년이면 폴리테크닉(3년제)에서 간호학 학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에요." 1. 왜 미얀마의 정규교육은 10년에 불과할까? 미얀마는 여느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무척이나 젊은 국가다. 2018년 기준으로 평균 나이가 28세에 불과할 정도다. 노동인구도 3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로 넘쳐난다. 이런 구
미얀마의 정치체제는 한국과 비슷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연방제 성격도 일부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과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대통령을 국민이 아닌 의회에서 간접 선출하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라고 해도 무방한 게 현실이다. 종합적으로 여러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얀마의 정치권력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에게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선거에서 대승한 집권여당 NLD(민주주의 민족동맹)의 지도자인 수치 여사는 외교부-대통령실-교육부 및 에너지부 장관을 겸직하며 ‘스테이트 카운슬러’ (국가고문)이란 직책으로 사실상 내각과 행정부를 장악하고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로 활약 중이다. 1. 미얀마 민주세력의 고민 수치 여사의 권력이 얼마나 확고한 지는 2016년 이후 미얀마의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됐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NLD의 첫 대통령은 띤 쩌(74)로 아웅산 수치의 비서를 지냈던 측근 출신이었다. 2년 뒤 교체된 현재의 윈 민 대통령(71)은 직전 하원의장이었다. 오랜 기간 수치 여사와 정치를 함께 한 동지이자 충실한 지지자로 알려졌다. 물론 이 두 대통령을 결정한
현재 미얀마 양곤에 살고 있는 필자는 약 2주간의 꽤나 엄격한 도심 폐쇄(lockdown) 상황을 겪었다. 시내의 모든 식당이 영업을 멈추고 거의 유일한 식량공급원이던 슈퍼마켓까지 문을 닫으니 별 수 없이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의 락다운(도시폐쇄)이 여느 대도시의 그것과 유별나게 다른 점이라면 사회기반시설의 불안정으로 상당히 빈번한 단전과 인터넷 끊김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집에서 전력을 소모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예고 없이 전력이 끊긴 양곤의 어두운 밤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력이 끊기면 인터넷도, 냉장고도, 컴퓨터와 에어컨도 모두가 멈춘다. 밖에 나돌아 다닐 수도 없는 환경에서, 한번 끊기면 보통 5시간을 넘기는 단전상황을 겪어보니 더이상 시내에 살아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양곤 외곽으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1. 양곤에 도착한 윈난(雲南)성 출신 사업가 유(劉)씨 성을 지닌 중국인 사업가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필자는 2012년에 처음 미얀마 양곤을 취재한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모 대표님의 제안으로 중국과의 교역으로 한창 활기를 띄던 북쪽의 만달레이에 가
전세계 주식시장이 신종바이러스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미얀마의 주식시장인 '양곤 스톡 익스체인지' 줄임말로 'YSX'가 그 주인공이다. 동남아시아 금융시장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미얀마의 주식시장의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016년에 본격적인 문을 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늦게 태동한 현대적 증권거래소이자 가장 작은 규모의 시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상장된 기업의 숫자는 5개에 불과하고 전체 시총도 5000억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다 (인접국 태국의 상장회사는 600여 개에 이른다). 이런 소규모의 미얀마 증권거래소(YSX)가 최근 국제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오는 3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의 거래 참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의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얀마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어야 하고, 외국인 지분은 기업전체 지분의 35%를 넘어설 수가 없도록 정해졌다. 이 외국인 지분에 대한 내용은 개별 회사가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다. 앞으로 거래를 원하는 외국인은 양곤시내 증권거래소에 가서 계좌
3월 12일자로 미얀마 정부도 인접국 태국과 베트남의 선례를 따라 이탈리아, 이란 및 한국인의 관광객 입국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3월 7일부터 대구경북 거주자에 대한 입국은 제한이 되어 왔었다). 코로나19로부터 감염이 안됐다는 의료증명서를 지참하면 입국이 허가는 되지만, 그같은 절차를 감내하면서까지 관광비자를 받을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실상 관광목적의 입국은 불허가 된 셈이다. 아웅 조 잔 미얀마 법무부 사무국장은 "한국을 포함한 3개국 대사관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사전에 잘 설명했다. 다만 항공편은 차질없이 운행이 지속될 것이다"고 미얀마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 입국자에 대한 조치는 크게 두 대목인데, 다음과 같다. Anyone who departed from South Korea must submit a medical certificate to prove that they are not infected with COVID-19 at designated medical centers (as of Mar 12): 3월 12일 이후 한국에서 오는 사람은 '코로나 음성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Anyone who is a resident or
미얀마는 한반도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미얀마가 중국과 국경을 맞댄 14개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이다. 무려 2100km의 국경을 중국의 윈난성과 공유한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 1334km보다 1.5배 가량 긴 셈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미얀마에게 커다란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했다. 당연히 화려한 중국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반대로 최고의 불교문명을 일구던 바간 왕국이 몽골의 침략으로 무너지기도 했고, 명나라의 황족이 만주족의 공격에 쫓겨 도달한 곳이 미얀마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 군대 일파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주로가 버마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중국인이 국경 오지에서 양귀비를 키우며 생존을 모색하기도 했고, 많은 패잔병들은 결국 대만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되돌아가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중국은 미얀마 폐쇄경제 유지의 가장 중요한 생명줄이 되어왔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활발한 국경무역을 통해 부족한 생필품을 보충하고 미얀마의 주요 생산품인 천연가스와 목재 광석 등을 몰래 수출하면서 서구사회의 경제제재로부터 버틸 수가 있었다. 금수
현대 미얀마의 상징 "아웅산 수치"와 개헌 그리고 2020 총선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세계적 인물은 다름아닌 '아웅산 수치' 여사다. 미얀마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그녀의 이름과 민주주의를 향한 고귀한 행적은 글로벌 상식으로 통한다. 1945년생인 그녀는 올해로 75세가 됐다. 영어로는 Aung San Suu Kyi라고 쓰고 '수치 여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는 행정부 정식 명칭인 "스테이트 카운셀러(일종의 총리직)"로 표기하며, 미얀마 국민들은 그냥 "아메 수(엄마 수)"로 부를 정도로 친근한 실질적인 지도자로 통용된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미얀마는 여느 아세안 국가들 처럼 대통령이 온 것이 아니라 수치 여사가 방문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그는 2016년부터 '외교부' '교육부' '에너지 전력부' '대통령실 장관' 등 4개 부처의 장관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권한은 물론 나라의 상징성까지 두루 갖춘 미얀마라는 국가의 최고 책임자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대통령이나 총리는 어디 가고?"란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직함을 갖게 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