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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 태국 ‘태권도 국민영웅’ 최영석, 랑싯대서 만나다

정환승 교수 ‘최영석 배 태권도 대회’ 현장 장사진 속 인터뷰 '시선집중'

 

최영석(50)은 이 시대의 영웅이다. 2002년부터 태국 태권도 대표팀을 맡았다. ‘타이거 최’라는 별칭으로 태국인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듬뿍 받고 있다.

 

최근에는 태권도뿐만 아니라 태국올림픽위원회 부단장으로서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 출전한 20명의 선수단을 이끌고 한국을 다녀갔다. 이 대회에서 태국 태권도 팀은 태국 역사상 최초의 동계청소년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재작년에는 한국문화명예홍보대사와 한국관광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최영석 감독의 일대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를 제작돼 태권도와 한국문화를 더욱 폭넓게 홍보할 예정으로 있다. 이러한 공로로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태국에서는 베트남의 축구 영웅인 박항서 감독만큼 ‘국빈급’ 인사다. 올림픽 5회 연속 메달, 도쿄올림픽 금메달로 ‘국민영웅’이 되었다.

 

2월 초 태국 방콕 소재 랑싯대학교(Rangsit university) 체육관에서는 특별한 태권도 대회가 열렸다. 이름은 ‘최영석배 태권도 대회’였다. 경기장에는 무려 1650명의 선수들이 참석했다. 태국의 태권도 인구는 100만명이 넘는다.

 

 

필자는 랑싯대학교에서 지난해 9월 1일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정년퇴직하고 젊은 시절 열정을 불태웠던 그 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인을 직접 만났다.

 

최영석 감독은 “내가 한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태권”하는 기합소리 속에서 마음이 따뜻하고 겸손한 그의 모습을 만나는 자체가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 태국 태권도 인구는 100만명...대회는 벌써 11회 ‘국가대표’ 선발

 

Q. 랑싯대학교 체육관에서 ‘최영석 배 태권도 대회’가 개최되었다. ‘최영석배’라는 이름의 의미가 각별하다. 설명해달라.

 

‘최영석 배 국제 태권도 대회’는 2012년도 푸껫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올해가 11회다. 매년 태국의 여러 지방 도시를 돌아가며 열린다. 태국의 여러 지역 사회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는 모두 8개국에서 165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 중에서 1400명이 겨루기 대회에 참가하고 250명은 품세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현재 태국 내 태권도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 대회를 통해 국가대표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각 체급 1. 2위 입상자들은 국가대표팀 선발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대회다.

 

Q. 체육관 입구부터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 대회의 열기를 소개해달라.

 

벌써 10년 넘게 대회를 개최하면서 참가 선수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규모가 커졌다. 여러 나라 선수들이 참가하기도 하고, 태국 선수도 여러 지방에서 몰려들다 보니 늘 이렇게 장사진을 이룬다.

 

 

태국 정부와 태권도협회 그리고 한국 정부의 관심 속에서 대회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태국에서 태권도를 하는 아이들이나 그의 부모들은 대부분 이 대회를 알고 있다.

 

대회의 경기를 하루에 모두 소화할 수 없어 이틀간 열린다. 현재 태국의 태권도 인구는 1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태권도가 태국 사회에서 그만큼 저변 확대가 이루어진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Q. 박용민 주태국 한국대사와 앗타윗 우라이랏 랑싯대 총장 그리고 주요 인사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자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태권도 시범경기도 있었다.

 

 

경기 규모가 커지면서 매스컴에서도 다투어 보도하고 또 이틀간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무언가 좀더 체계를 갖추고 볼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권도 대회도 알리고 태권도 자체의 홍보를 위해 묘기도 선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식전 행사와 시범 경기를 마련했다. 올해는 새로 부임한 박용민 주태국 한국대사와 앗타윗 우라이랏 랑싯대학교 총장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다.

 

 

■ 태권도로 4회 연속 올림픽 메달...도쿄 올림픽 유일한 금메달 감격

 

Q. 최 감독은 국민영웅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파니팍 웡파타나낏 선수가 태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따면서 최 감독도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감독으로 성적과 가장 기쁜 순간을 알고 싶다.

 

태국은 이미 무에타이라고 하는 그들의 국기(國技)가 있다. 이곳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태권도 종목에서 야오와파 부라폰차이 선수가 동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비롯해 5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 파니팍 웡파타나낏 선수가 태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그때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해 온 모든 순간이 내게는 모두 소중한 시간이었다.

 

Q. 태국 왕실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고, 쁘라윳 총리로부터 직접 태국 스포츠 대상 최고지도자상을 수상했다. 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인이 되었다. 이를 실감하는 때는 언젠가?

 

아무래도 매스컴에 등장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태국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때마다 내가 태국 사회 속에서 '공인'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실감한다. 한편으로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 임시 코치로 태국 취업 “이젠 제2의 조국”...태국어로 선수와 의사소통 원칙

 

Q. 29살 때 태국으로 와서 24년째 살고 있다. 태국에 오게 된 이유를 알고 싶다.

 

사실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태국에 발을 디뎠다. 2002년에 당시 태국 태권도 팀 한국인 코치가 계약 만료 전에 사퇴하면서 내가 잔여 임기 8개월 동안 코치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쳇말로 “땜빵”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코치직을 수행하면서 선수들과 정이 들고 가족처럼 대하게 되었다. 내가 애정을 쏟는 만큼 그 결과가 여러 경기나 대회에서 성적으로 나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태국을 사랑하게 되고 태국 사회에 태권도 보급하는 일에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태국인은 나에게 또다른 가족이고 태국은 제2의 조국이 되었다.

 

 

Q. 그동안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달라.

 

처음엔 태국이라는 나라가 내게는 아주 생소한 나라였다. 음식도 썩 입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언어 소통이 제일 어려웠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 처음에 장애물로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다.

 

태국의 날씨에도 적응이 되고 태국 음식도 맛있게 먹게 되었다. 그리고 선수들 훈련에 가급적 태국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진입장벽이 어려워 아직 읽고 쓰는 것은 잘 못하지만 웬만한 의사소통은 태국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선수들과 장벽은 없다. 태국 사회 속에 있어도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정을 붙이고 열심히 하면 그곳이 내 집이 되고 내 고향이 되는 것 같다.

 

 

■ 일년에 절반 해외 출장 ‘귀화 요청’...태국정부 ‘관용여권’ 특별대우

 

Q. “찻차이최”라는 이름으로 2022년 귀화까지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다. 귀화하게 된 이유나 계기는?

 

그동안 태국에 대해 정이 많이 들었다. 중간에 여러 번 이곳 저곳에서 러브콜이 왔었다. 좀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더 나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제안이 왔지만 나는 이미 태국에 대한 애정 깊어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태국 선수들은 이미 나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태국에서 하는 일이 규모가 커지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지면서 사업이 외국에까지 확장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일을 좀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니 좀더 해외나들이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좀더 활발히 활동하고 해외 출입국을 좀 더 원활하게 하고 싶어 귀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드디어 지난해 12월 태국 국적을 취득했다. 태국 정부가 특별히 배려하여 내게 관용여권(고위공직자, 대통령과 부통령, 외교관 등 공무원들이 업무상 해외를 방문할 때 사용하는 여권)을 발급해주었다.

 

 

■ 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나는 태국 여권을 소지한 한국인”

 

Q.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에 태국 대표팀을 이끌고 부단장으로 한국을 찾았다. 소회는?

 

태국 국적을 취득하긴 했지만 아직 한국 국적이 소멸되지는 않았다. 형식상으로 이제 태국인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하게 되어 다소 어색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태권도를 통해 내 육신과 내면 세계를 성장시켜 왔다. 국적은 바뀌었지만 나는 태국 여권을 소지한 한국인이다. 나의 태국 국적 취득으로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를 더 효과적으로 보급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Q. 한 명의 무도인이 태권도에 대한 사랑과 태국에 대한 애정으로 인생 자체가 기적을 일구어 낸 것 같다. 앞으로 한국과 태국의 관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내가 한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내게는 꾸준한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에타이의 나라' 태국에 한국의 태권도를 보급하고 성장시키는 일이었다. 간절한 염원은 끝내 이루어진다.

 

이제 앞으로 태국의 유소년 태권도와 청소년 태권도를 꾸준히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태국의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나는 국제태권도학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현재는 태국의 까쎗삿 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 분야 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향후 대학에서 태권도 보급과 KO-태권도 아카데미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국제 체육기구나 올림픽위원회 등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아 일하고 싶다.

 

태국=정환승 객원기자, 태국 랑싯대학교 한국어과 학과장 chaiyothai@hanmail.net

 

 

정환승 교수 프로필

 

현 태국 랑싯대학교 한국어과 학과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통번역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 학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남아연구소장-한국태국학회 회장

1999-2002-2005년 한국-태국 정상회담 통역

 

1958년 한국과 태국이 수교한 해 태어남

1995년 태국 쏭클라대학교 대학원에서 태국어학 석사

2000 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 박사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한 해 태어난 딸은 베트남 아시아투데이 특파원(정리나)

최근 저서로는 ‘태국 들여다보기’, ‘태국역사문화기행 황톳길 위에서 미소를 만나다’,

‘담장너머의 태국 치앙마이-치앙라이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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