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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新加坡 통신<10>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2편

미뤄진 2020 총선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후폭풍....리콴유 비서로 정계 입문 '대권' 눈앞

新加坡 통신⑨ 싱가포르 차기 지도자 '헹 스위 킷' <2> 리콴유 비서로 정계 입문

 

싱가포르의 고위공무원 가운데는 군인 장교출신이 유난히 많다. 현 리셴룽 총리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65년에 말레시이아 연방에서 독립한 신생독립국인 만큼 국방력 강화가 아주 절실한 국가과제였던 영향이 크다.

 

그래서 1970~80년대에 아주 많은 인재들이 군대로 유입이 됐고, 이후 성공적으로 행정관료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여타 군부정치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엘리트 군인의 활용인 셈이다. 

 

 

1. 경찰로 커리어 시작한 '글로벌 수재'

 

헹 스위 킷. (그의 중국식 이름 표기는 왕서걸(王瑞杰)이다. 중국 5대 화교에 속하는 조주인인 탓에 조주어 발음표기인 Heng Swee Keat 으로 불린다. 이 발음은 '헹' 보다는 '헝'에 가깝고, '킷' 보다는 '낏'에 가깝지만, 이미 널리 헹 스위 킷으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표기법을 따른다.)  

 

헹 스위 킷은 1984년 경찰(PAP)로 공직 커리어를 시작했다.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영국식 통치제도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행보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두각을 보였는지 1990년대 초반에는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으로 제 2차 유학을 해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그의 케임브리지와 하버드 졸업장은 그의 명석함과 글로벌 인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40대 초반인 1997년 행정청 산하 교육부로 자리를 옮기고 곧장 당시 총리직에서 물러난 선임장관인 리콴유의 비서일을 시작하며 정계와 연을 맺는다. 아시아 정치환경에서 최고지도자의 비서라는 자리는 최고의 엘리트들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정치인의 입문”의 정석적인 과정이다.

 

실제 그는 이 과정에서 국부 리콴유는 물론 당시 총리인 고촉통로부터 “차세대 지도자 감”이라는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평가는 그의 관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01년부터 그는 상무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2005년에는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MAS에서 전무역할을 맡으며 치안에서 교육부 무역과 재정에 이르는 '전천후 관료'임을 입증한다. 

 

그리고 2011년 총선에 차출되어 국회의원이 된 그는 곧장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며 본격적인 차기지도자 경쟁군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2. 청소년 시절부터 관리는 '싱가포르형 수재


2011년에 교육부 장관이 된 그는 2015년 총선 직후에는 싱가포르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재무부 장관이 됨으로써 사실상 차기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계획경제에 가까운 싱가포르 정부의 예산안을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그 위상과 중요성은 새삼 재론할 여지가 없을 정도다. 

 

당시, 집권 인민행동당(PAP)에서 인기가 높은 정치인은 인도계인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부총리가 있었고, 이 밖에도 거의 모든 장관급 인사들이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헹 스위 킷은 이 과정에서 녹록지 않은 정치력과 실력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총리인 리셴룽은 70세가 되는 2022년에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아버지처럼 선임장관으로 물러나 막후에서 싱가포르 정치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이번 2020년 선거는 사실상 헹 스위 킷이 총대를 메고 압승을 거둬야 하는 하는 최종 시험 앞에 놓인 셈이다.

 

그런데 때마침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진 것이고, 집권여당 입장에서는 경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과제까지 추가로 주어진 것. 


싱가포르 정치를 사실상 이끌어온 집권 인민행동당(PAP)은 1965년 독립 훨씬 이전부터 집권해 왔으니 벌써 60년 가까운 1당 정치독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권력이 오래 집중되다보니 피로도가 없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이전에는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며 의회를 싹쓸이했다면, 2000년 이후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60%까지 크게 줄며 정권교체 분위기는 아니지만 변화해야 한다는 욕구가 늘어난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명목상 국가의 대표격인 대통령을 국민투표로 뽑는 작업을 간간이 실험해온 싱가포르는 2011년 대선에서 야당세의 성장에 크게 놀랐고, 아예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폐지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전세계에 몰아닥친 '코로나19'는 동서양 중계무역을 기반으로 먹고사는 싱가포르에도 전례없는 피해를 안길 전망이다. 

 

 

3. 코로나 사태로 연기된 '2020 총선'

 

특히 ‘안전’을 국가의 화두로 삼는 싱가포르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례없는 시련이 되고 있다. 대만과 홍콩과 더불어 나름 성공적인 방역국가로 손꼽히기는 하나, 4월 10일 현재 1900여명의 확진자와 2명의 사망자는 기준이 높기로 유명한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썩만족할만한 수치는 아니다.

 

인구 600만의 도시국가임을 감안하면 사실 한국 기준으로는 1만 8000명 (9배)의 확진자가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2월 초 확진자가 급증하자 빠르게 사태 수습에 돌입했지만, 3월 중순 학생들의 개학을 허가했다가 확진자가 하루 120명까지 급증하자 3월 말에는 싱가포르로 입국하는 모든 항로를 끊고 사실상의 '셧다운'에 돌입하는 등 최강의 수로 확진자 감소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헹 스위 킷은 국민들 앞에서 5조 원 규모의 코로나 극복을 위한 "연대 예산"을 선보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경제의 침체가 예상되자 3월 말에는 50조 원 규모의 파격적 경기부양책까지 들고 나왔다.  실제 싱가포르 정보는 올해 GDP 성장 전망치를 -4%~-1%로 까지 수정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정해진 법률에 따라 싱가포르의 선거는 내년 초까지는 미룰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선거를 계속 미루기만 하는 게 실제 선거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차기를 예약한 헹 스위 킷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무난하게 국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 정치에서 빼놓지 말고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정호재는?

기자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아시아 사회를 연구 중이다.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동남아 유력 정치인 등을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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