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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대사가 단숨에 읽었다...다양성 속 통일 <키워드 동남아>

[서평] 서정인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전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키워드 동남아>(2022년)를 단숨에 읽었다. 또 서평을 위해 자투리 시간에 몇 번 더 읽었다. 30개의 주제로 읽는 동남아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다. 각 분야별 주제들을 딱딱하지 않고 쉽게 풀어 썼다. 일간지 연재 글이라서 그런지 글이 임팩트도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동남아를 제일 잘 표현한다는 '다양성 속 통일(unity in diversity)'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동남아시아 역사, 문화, 정치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면서도 그 지역적 정체성이 잘 드러나 이 지역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 신윤환 교수의 서강대 후배 동료-제자 의기투합...동남아 문화 길라잡이 톡톡

 

요새 국내에서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동남아 도우미를 활용하자는 방안이 공론화되고 있는 시점에 동남아 문화를 이해하는 길라잡이 역할도 할 수 있겠다.

 

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동남아 문화 산책: 신윤환의 동남아 깊게 일기>(2008) 이후에 읽을만한 동남아 관련 교양서다. 신윤환 교수의 서강대 후배 동료들과 제자가 의기투합해 쓴 책이다. 선배와 후배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양쪽을 모두 아는 나야 이렇게 재미 삼아 비교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인 후배들은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신간을 접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있다. 그러다 보면 빨리 읽으려 해 독서의 기쁨이 반감된다.

 

이 책은 주제 자체가 딱딱하지 않고, 한 번에 꼭 다 읽어 내려갈 필요도 없다. 시간 날 때 옆에 두고 천천히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 역사는 '바나나머니' '은: 100원 동전' 등 제국주의 유산 영향 다뤄

 

1장의 역사편은 제국주의의 유산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바나나 머니, 인도인, 전염병, 문화재 반환, 은, 황금, 주석 테마를 일본, 중국, 인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과거 동남아를 식민 지배한 제국이나 영향을 미친 국가들과 관련해 적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에 멕시코 대사를 마치고 돌아온 필자에게는 ‘은: 100원 동전이 둥근 이유’ 편이 눈길을 끌었다. 16~19세기 사이 250여 년간 멕시코 아카풀코와 필리핀 마닐라 사이에서 일어난 갤리온 무역의 핵심 결제 수단이었던 멕시코산 은화가 어떻게 페루산 은과 중국 도자기, 비단, 차와 함께 마닐라를 거쳐 푸젠(복건성)까지 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 동전이 중국, 일본, 한국, 동남아 동전 주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지면에 제약도 있었겠지만 복잡다단하지만 동남아 이해에 매우 중요한 근대 동남아의 식민지 역사 관련 주제, 특히 동남아인과 외국인들이 쓴 문학을 통해 본 동남아 역사를 추가했으면 더 흥미로웠을지 싶다.

 

 

■ 문화는 커피와 후추 등 다양성과 혼종성 눈길 '흡입력이 높은 장'

 

2장 문화편은 동남아시아의 다양성과 혼종성에 관한 주제들로 이루어졌다. 쌀, 후추-향료-설탕, 인도네시아 음식, 호커 센터, 베트남 커피, 발리 관광, 발리 힌두교, 종교, 페라나칸 혼례, 전통의상, 베트남 대중 음악, 베트남 영화, 인형극 등을 다룬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근무할 때의 경험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테마들이 많아 흡입력이 높은 장이었다. 일종의 감정이입을 하며 즐겁게 읽었다. 인도네시아 른당 소고기 요리(우리의 찜 요리 비슷하며 CNN 선정 세계 1위 요리)며, 베트남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특히 멕시코에 함께 근무했던 남(Nam) 전 주아세안 베트남 대사가 수시로 준 베트남 일회용 커피를 즐겨 마신 추억이 떠올랐다.

 

동남아산 커피는 네덜란드가 유럽 향료 수요가 주춤할 때 브라질, 콜롬비아, 자메이카 등 중남미 커피보다 먼저 세계 시장에 나온 환금작물로서, 설탕, 사탕수수와 더불어 식민지 정부의 효자였다.

 

■ 인도네시아 루왁-베트남 달랏 아라비카-태국 도이창 커피 등 중남미보다 먼저 시장 나와

 

동남아산 커피 대부분은 일회용 커피에 많이 사용되는 로부스타 종이지만, 베트남 중부의 달랏과 같이 15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에서는 고급 아라비카 커피가 난다. 베트남뿐 아니라 태국 왕실 프로젝트로 개발한 도이창 커피도 일품이다. 태국 방문 때마다 사 오곤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서울 부암동 우리 집 근처에 도이창 커피숍이 생겨 젊은이들로 붐빈다.

 

인도네시아에는 대표 커피인 루왁이 있다. 사향고양이 배설물 중 커피빈을 갈아 만든 커피인데 비싸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를 가둬 놓고 억지로 커피를 먹여 루왁 커피를 만든다는 얘기가 돌자, 동물 학대 논란으로 루왁 커피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생겼다.

 

난 이 커피를 여러 번 마셔 보았지만 여느 커피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요새 인도네시아에선 아노말리 등 가성비 좋은 다른 커피들도 많이 개발되었다. 최근에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갔을 때 플라자 인도네시아라는 대형 몰에 방문했는데, 스타벅스 옆에 있는 인도네시아산 전문 커피숍에는 현지인은 말할 것 없이 외국인들도 많았다. 스타벅스의 반값이었다.

 

 

■ 과일 천국 동남아..."두리안이 최고다" "아니다, 망고스틴이 더 낫다"

 

이 책 필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동남아는 과일 천국이다. 과일의 왕인 두리안과 계절의 여왕인 망고스틴을 비롯해 바나나, 망고, 코코넛, 파파야는 지천으로 널렸다.

 

내가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근무할 때 1불의 행복이라고 느끼며 즐겨 먹은 냉동고에서 차게 한 코코넛은 상하의 동남아를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난 특히 두리안을 좋아하는데 두리안은 천국의 맛, 지옥의 향기라고도 불리지만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아세안 대사 때 재미 삼아 동남아 대사 간 싸움을 붙이면, 태국산 두리안이 최고라든지, 말레이시아산도 좋다느니, 미얀마산이 섬유질이 더 많다느니 등 얘기를 하면서 각국이 자존심을 걸고 자기네 두리안이 최고라고 했었다. 그 정도로 두리안은 동남아를 대표한다.

 

 

■ 타이-미얀마-싱가포르-인도네시아 정치 해부...미얀마-타이 ‘쌍둥이 독재자’ 눈길

 

마지막 3장 정치편의 제목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살아가는 기술’이다. 밀레니얼 연대, 타이 왕실, 타이식 민주주의, 왕립 개발 프로젝트, 강소국, Bebas dan Aktif(다이내믹 인도네시아), 다자외교 등의 주제를 다룬다. 타이, 미얀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4개국 관련 사항만 있어서 1, 2장에 비해 적어 좀 아쉬웠지만 내용은 알차다. 최소한 베트남 정도는 더 추가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시내 교수의 미얀마-타이 ‘쌍둥이 독재자’에 맞서는 청년들, 타이 왕실 및 타이식 민주주의의 글 들은 만약 태국어로 소개되었으면 현 교수가 입국을 거부당할지도 모를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다.

 

특히 그의 글은 2014년 쿠데타 이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올해 5월에 실시된 총선 이후의 태국 정국을 생각하게 된다. 총선에서 나타난 밀레니얼 세대의 표심에 힘입어 태국 40대 기수론의 피타 총리 후보가 이끈 전진당이 친탁신 정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되었다.

 

그의 글을 읽고 나서 집권 세력에 유리한 헌법 때문에 선거에 이기고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지 않은 현 태국 정국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좌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잔상이 남았다.

 

 

■ 강소국 싱가포르, 다이내믹 인도네시아 외교 및 다자외교 '일목요연'

 

주아세안 대표부 선임연구원으로도 활동하면서 동남아 현장을 경험한 서강대 배기현 교수의 강소국(싱가포르), 다이내믹 인도네시아 외교 및 다자외교(ASEAN의 외교 양식과 교훈)도 일목요연하게 잘 쓴 글이다.

 

특히 다자외교 글에서 그는 아세안 외교의 3대 특징을 잘 제시했다. 첫째가 아세안이 강대국들을 모두 불러들여 동심원적 다자외교의 협의체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여러 개의 태양과 항해의 자유로 표현했다.

 

둘째는 동남아 국가들은 위계적인 국제관계에서 리더 국가의 권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는 권력보다는 권위를 중요시 하다고 강조한다. 아세안 성공의 열쇠인 대국 인도네시아의 권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마지막 특징은 동아시아 지역 질서 규칙은 아세안이 만든다는 것이다. EU 방식이 아닌 협의와 합의를 중시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의미한다.

 

이 책이 아쉬운 부분은 역사, 문화, 정치 편으로만 한정한 점이다. 과거 유럽 열강의 동남아 식민지는 물론 지금도 외국 투자가 동남아로 쏠리는 게 하는 것은 경제다. 동남아 경제가 역사, 문화, 정치에 얽혀 상호 영향을 주는 핵심 분야임을 인식하면 경제가 쏙 빠진 게 아쉽다. 간단하게나마 몇 개의 경제 관련 테마들을 소개했으면 그야말로 동남아를 이해하는 종합 선물 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속편이 기대된다.

 

글=서정인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위원(전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출처:2023년 6월 발간된 웹진 <서강동연> 16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서정인 대사는?

 

1988년 외무고시 22기로 외무부에 들어가 인도네시아-호주-일본-태국 대사관 근무에 이어, 남아시아태평양국에서 동남아과장, 심의관 및 국장을 역임했다.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재직시에는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실질협력 분야를 담당했다.

 

그 이후 주아세안대사 및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와 기획단장을 맡았다. 35년 외교관 커리어 중 20여 년 이상을 아세안에 천착했다. 마지막 포스트로는 멕시코 대사를 거쳤다. 서훈으로는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하다’ 공동 편집 및 ‘아세안의 시간’(박번순 교수) 특별기고 및 아시아 경제, 매경 등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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