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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의 눈] 신도 발상지 ‘소토산’, 의성 성황당 흔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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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교수 일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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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3. 쌀처럼 신도의 고향 쓰시마서 한반도 전래 흔적

쓰시마 섬이 일본인의 주식인 쌀을 한반도에서 전한 고장이라는 것은 이 전 이야기에서 알았다. 이번 이야기는 쓰시마가 일본인의 주식인 쌀을 넘어 그들이 정신적인 양식으로 삼는 종교적 신앙, 즉 신도(天道)를 낳은 고장이라는 것을 핵심 줄거리로 한다. 게다가 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도의 고향 역시 한반도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신도가 일본에 고유한 종교라고, ‘국민적 상식’이 통한다. 이는 신도를 가업으로 하는 신도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지식인들도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기를 든 것 역시 쓰시마 섬이다. 이것은 ‘종교반란’이라고 할만하다. 이번에는 쓰시마 남단 쓰쓰 마을의 소토산(卒土山)을 산책하기로 하는데, 그것은 소토가 그 종교반란의 호루라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시마에는 덴도(天道)신앙이라는 토속 신앙이 뚜렷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이 하현 쓰쓰(豆酘)와 상현 사고(佐護)에 남아 있는 적석탑(積石塔)의 모습이다. 두 곳 모두 텐도산(天道山)이라고 부르는 영험한 산이 있다. 특히 쓰쓰의 텐도산 기슭의 성지를 소토산(卒土山)이라 한다. 소토산의 ‘소토’는 한반도의 옛 마한 사람들이 성스러운 금족지로 여긴 소도(蘇塗)와 통하는 지명이다. 소토산은 다테라산(竜良山)이라 부르는데, 텐도신앙의 발상지이다.

 

쓰시마 사람들이 받드는 텐도사마(天道樣) 즉, 텐도 신령님이 묵고 있다는 산이다. 이 산신령에 적미를 바쳐 우러러 모셨다고 이 전 이야기에 전했다. 쓰쓰나 사고에 뚜렷한 형적이 남아 있는 적석탑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산 곳곳에 보이는 성황당(城隍堂)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텐도사마는 누구이며, 텐도 신앙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서 한국의 뛰어난 민속학자 임동권(任東權, 1926~2012)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저술 <쓰시마의 한국 민간신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년에 10년 만에 쓰시마를 찾아가 3주 정도 현지 조사를 해본 결과 ‘단산’(檀山)이라는 산이 많은 것을 알았다. 고문헌에서 단산은 산과 연결되는 것임이 확인된다. 한국에서는 마을마다 반드시 존재하는 ‘당산’(堂山)에 해당하는 것인 것 같다.

 

이 당산은 초기의 단계에서는 흙단[土檀]이지만 제2단계는 돌단[石檀]으로 높아진다. 이것은 집단으로 쌓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제3단계는 사당으로 변해간다. 경제력의 향상이나 두터운 신앙심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형태는 한국과 쓰시마가 매우 유사하다.

 

현재는 산기슭이나 마을 어귀에 모셔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산 정상에 모셔지는 신이 가장 신성하다. 이것은 하늘과 관련성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덴도신(天道神)을 생각해보자. 쓰시마에서는 덴도신을 덴도 사마(天道樣), 덴신(天神), 오히데리사마(お日照り様), 아마테리(天照り), 하치류(八龍), 가나구라사마(金倉樣)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특징은 주위에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변이나 강어귀에도 보이고, 돌을 그대로 겹쳐 쌓은 것이지만 이것은 한국의 성황당(城隍堂)과 유사하다.

 

이 덴도 사마는 쓰시마에서는 언제부터 모셔지게 되었던 것일까. 덴도사마가 모셔진 성소를 ‘소토(卒土)’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한국의 ‘소도(蘇塗)’에 연결되는 것이다. 소도는 고구려나 삼한시대의 마한에서 천신을 모셨던 신단을 가리킨다. 쓰시마에서는 다테라산(竜良山)을 소토산(卒土山)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위 글은 재일작가이자 한일 고대사 연구가인 김달수 선생이 쓴 인기 연재물 <일본 속의 조선문화>(日本の中の朝鮮文化)에서 임동권 교수의 글을 따온 것이다(김달수, 1993, 354). 여기서 말하는 다쓰라산은 쓰시마 남단 쓰쓰 마을에 있는 소토산을 가리킨다.

 

임동권 교수가 10년 만에 이 산을 찾았다고 한 것이 1990년대 초다. 그러니까 그는 1980년대부터 소토산에 남아 있는 적석탑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한국 산 곳곳에 보이는 성황당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를 뒷받침한 대표적인 학자는 일본에서 이름난 고고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 교수인데. 그는 소토산의 성지를 누석단(累石壇)이라며, “조선의 누석단이 종종 모신(母神) 또는 신자(神子)를 제사하거나 사람을 장사지내는 곳으로 전해지는 등 아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松前健, 1986, 164). 그런데 나그네는 이를 좀 더 확실하게 고증해 낸 사람이 쓰시마 재지 사학자 나가토메 히사에(永留久惠) 씨라고 보고 싶다. 이제 나가토메 씨가 고증으로 밝힌, 그의 글을 읽어보자.

 

쓰쓰의 소토산은 ‘무서운 곳(おとそろし所)’부르는데, 피라미드 형 제단[또는 탑이라고도 한다]이 있고, 전설에서는 텐도의 묘라고 하지만 분묘는 아니다. 단상으로 쌓은 형적이 있고, 7단으로 보이지만 분명치는 않다. 기저의 정면은 6.2미터, 측면은 5.5미터이며 높이는 3.1미터. 최상층에는 대강 1미터 사방의 돌이 쌓여져 있다.

 

이것과 아주 비슷한 ‘부도(浮屠)’가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석탑동(石塔洞) 산중에 있는데, 그 석탑 동쪽은 7단이며, 서쪽은 5단으로 된 것은 산기슭의 경사면 때문에 하부가 묻혀버린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탑 사방에 감실(龕室)이 있는데 각각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의 조형양식으로부터 정영호(鄭永鎬, 미술사)는 9세기 작이라고 한다. 참고가 된다.

 

쓰쓰의 핫초가쿠(八丁角)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성역 공간을 사방팔방[八丁四方]으로 터진 곳이다. 이곳을 핫초-가쿠(八丁郭)이라고 부르는데, 사견으로는 본래 탓초-, 즉 탑두(塔頭)이었던 것이 핫초-로 전와되어 핫초-(八丁)이라는 아테지(当字: 한자 뜻과 상관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 쓰는 한자-필자)로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永留久惠, 2009, 425).

 

이 글을 읽어보면 소토산의 ‘무서운 곳’에 있는 피라미드 형 돌탑의 원형을 찾아가는 그의 학문적 열정이 묻어난다. 그는 바다를 건너 경상북도 의성까지 와, 쓰쓰 소토산의 핫초-가쿠 돌탑과 아주 비슷한 ‘부도’를 찾고는 양자를 면밀히 견주어 본다. 핫초-가쿠 돌탑은 의성의 부도보다 좀 작다면서 그러나 서쪽 돌단이 동쪽 7단보다 낮은 5단이 된 것은 경사면 때문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즉 핫초가쿠의 사방이 같은 단과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는 안동까지 올라와 비슷한 부도가 있는 것을 알았지만 산이 험해 찾는 것을 단념했다고 한다[1920년 생인 나가토메 씨는 당시 90세를 넘은 고령이었다].

 

그는 쓰시마에 있어 텐도 신앙의 중심지 상현의 사고와 하현의 쓰쓰 라면서, 각각 그 유사성와 차별성을 견준다. 특히 쓰쓰의 텐도는 ‘우쓰로 선(ウツロ船)’, 즉 통 나무배를 타고 쓰시마 섬으로 표착한 뇨보(女房: 마나님)가 햇볕에 감정(感精)돼 텐도(天童)을 낳았다는 전승에 주목한다. 이 텐도가 숨어 들어간 산이 다테라산 즉, 소토산이라고. 이 소토와 <위지·동이전> ‘마한’ 조에 보이는 소도(蘇塗)와 무관하지 않는 것은 일찍이 선학에 의해 논하여져 온 바라고 일깨웠다.

 

한(韓)의 그 습속은) 귀신을 믿고 국읍(國邑)에 각각 한 사람을 두어 천신을 제사지내는 제주로 삼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한다. 또한 모든 나라에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를 이름하여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大木]에 영고(鈴鼓)를 걸어 귀신을 섬긴다. 모든 도망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고로) 멋대로 도적을 만든다. 그 소도를 세우는 것은 그 뜻이 부도(浮屠)와 비슷한 것이다.

 

쓰시마 남단 쓰쓰의 소토에 대하여 일찍부터 일본은 물론 조선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선 왕조의 임금 성종의 명으로 중신 신숙주(申叔舟)가 일본을 두루 보고, 1147년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남겼는데, 쓰시마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남북에 높은 산이 있는데 다 이름을 천신(天神)이라고 하고, 남에 있는 것을 자신(子神)이라 하고 북에 있는 것을 모신(母神)이라 한다. 신을 숭상하는 풍속이 있어 집집마다 소찬(素饌)을 차려놓고 제사 지내며 산에 있는 초목이나 금수도 이를 범하는 사람은 없다. 죄인이라도 달아나 신당(神堂)으로 들어가면 그도 또한 감히 쫓아가서 잡지 못한다(<해동제국기> 대마 조, <해동제국기, 간양록>, 이을호 역, 118~119). [南北有高山, 皆名天神, 南稱子神, 北稱母神, 俗尙神, 家家以素饌祭之, 山之草木禽獸, 人無敢犯者, 罪人走入神堂, 則亦不敢追捕]

 

나가토메 씨는 여기서 말하는 ‘남북 모두 천신’이라 한 것은, “남의 쓰쓰 텐도산, 북의 사고 텐도산으로 보여진다” 면서 “본래 덴신산(天神山)인 것을 후세 덴신을 덴도(天道)로 고쳤기 때문에 덴도산에는 어디에도 웅악(雄嶽)과 자악(雌嶽)이 있었다”고. 지금 쓰쓰의 소토산을 보면 남쪽의 웅암(雄岩), 북쪽의 자암(雌岩)이 드높게 솟아 있다(2009, 426).

 

쓰시마의 소토와 한반도의 소도에 대한 비교 연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이가 1920년대 즈음 도쿄대학의 히라이즈미 스무(平泉澄) 교수다. 그가 쓴 <중세에 있어 사사(社寺)와 사회와의 관계>라는 저서에서 쓰시마의 소토산을 마한의 ‘소도’와 결부시키고 있다.

 

그는 세계의 아지루[あじーる(아지루)는 금족지를 가리키는 asylum의 일본어 표기-필자]에 관한 이 비교연구에서 특히 쓰시마의 소토산의 예를 크게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이 책에서 1919년 쓰시마의 쓰쓰촌(豆酘村) 아자모(浅藻)에 있는 소토산에 들어가 느낀 감격적인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기이한 새의 울음소리, 깊은 계곡의 물소리, 듣는 모든 것이 무섭고, 제단 앞에 서서 사방을 돌아 볼 때 귀신의 기운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永留久惠, 2009, 426 재인용).

 

‘귀신의 기운’이 서린 ‘무서운 곳’이기에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不入地]’이다. 만일 속인(俗人)이 잘못해 그 곳을 들어가면 주문(呪文)을 외쳐 용서를 빌지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고 (위 책, 426). 그때 잘못 들어간 사람은 머리에 짚신을 올리고 맨발로 뛰어 나오면서 “인노코, 인노코” 라고 외쳐야 용서를 받는다. 이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아들[이누노코(犬の子)”라고(大江正康, 2010, 35).

 

이 주문은 덴도마츠리(天道祭り)를 현장 연구한 오오에 마사야스가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텐도란 ‘슈겐자(受驗者)의 산중 수행의 일종’이라며, 덴도 법사(天道法師, 덴도 사마를 가리킴-필자)를 ‘덴도의 의례를 습득한 슈겐자’라고 짐작한다. 이어 그는 덴도 신앙의 뿌리가 소도가 아니라 일본의 산악 종교인 슈겐도(受驗道)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가 쓴 “쓰시마의 덴도 신앙과 쿠마노(対馬の天道信仰と熊野)”에서 내세우고 있는데, “덴도의 뿌리[ルーツ]는 중국에서 찾을 수 있고 조선을 거쳐 왔다”(위 논문, 33)고. 이는 일본인 한반도 ‘패싱’ 편견의 마침표를 찍은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쓰쓰 마을의 소토산은 덴도 신앙의 발상지이며, 그 고향은 소도를 낳은 한반도라는 것은 나가토메 씨가 위에서 고증한 연구 결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덴도 신앙은 오늘날 일본인들의 ‘국민 종교’라고도 일컬어지는 신도의 토대인 고신도이다. 그렇다고 쓰시마를 거쳐 일본열도로 건너간 ‘소도’가 신도의 모두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일본 토양에서 꽃피운, 즉 한국의 민속학자 임동권이 말하듯 돌단에서 사당으로 진화한 신도는 일본의 훌륭한 종교문화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석단에서 돌단으로 진화한 단계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나중에 들어온 불교나 유교의 득세에 밀렸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나가토메 히사에, <対馬国志:ヤマトとカラの挟間で活きた対馬)>제1권 원시-고대편, 2009

김달수,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 동아일보사, 1993

松前健, <大和国家と神話伝承>, 雄山閣出版, 1986

大江正康, “対馬の天道信仰と熊野”, 2010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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