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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이야기 20] ‘망언제조기’ 아소 다로의 단일민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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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교수 일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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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누구인가3. 일본민족론: 현대 일본인의 다테마에-혼내를 넘는 진실

 

일본 아베 내각의 이인자로 치부되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한국 위안부에 망언을 일삼아 ‘망언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번에는 단일민족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2020년 1월 13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국정보고회에서 “2000년의 긴 세월에 걸쳐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가 이어지고 있는 나라는 여기[일본]밖에 없으니,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에 망언제조기라는 딱지가 붙었으니 ‘망언’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과연 ‘하나의 언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라는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하나의 언어’가 거짓이라는 것은 이전 이야기 ‘일본어 서사’에서 드러났으며, ‘하나의 왕조’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글쓴이가 다른 곳[김정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2018)]에서 짚었기에 여기서는 ‘하나의 민족’에만 초점을 맞춰보자.

 

일본 우익 쪽에서 내세우는 ‘하나의 민족’론, 즉 단일민족론은 겉만 보아서는 그 정체를 놓친다. 그 속에는 일본민족 우월론-->타민족 멸시가 깔려있고, 더 나아가 타민족문화 말살-->타민족 살육-->인종청소 같은 검은 음모가 숨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즉 800만 유태인 인종청소에 버금간다는 것을 놓칠 수 없다.

 

단일민족론에서 출발하는 음모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해 보면 한국인으로서는 기억하기도 싫은 일제 식민지 시절 황민화 모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31년 시작된 군국주의자들은 이른바 ‘15년 전쟁’ 동안 조선민족은 문화말살, 역사말살, 민족 살육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민화라는 허울 좋은 캠페인 아래 수많은 조선청년을 침략전쟁으로 내몰렸는가 하면 황국신민 서사(誓辞) 외우기, 조선말 지우기, 일본식 창씨개명, 신사참배 등 터무니없는 강요로 조선 문화 말살을 자행했다. 이에 저항하는 조선인에게는 생체 실험 같은 반인륜적 살육을 저질렀다. 민족시인 윤동주를 비롯한 많은 조선의 ‘애국지사’들이 희생을 당했다.

 

 

1937년 12월 난징에서 저질러진 30만 명 이상의 중국 민간인 살육은 인종청소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젊은 군인들에 “시나진짱코로(支那人チャンコロ=중국인 멸칭) 민나민나코로세”[중국 뙈놈들 모두 모두 죽이세]라고 노래하도록 가르쳤다. 이것이 일본인 단일민족론에 따르는 숨겨진 정체에 다름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런 단일민족론의 정체를 담고 있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흔히 알려진 대로 일본 문화는 다테마에[立前=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와 혼내[本音=마음속에 담은 속내]가 혼재하는 문화라 일컬어진다. 미국의 일본 관찰자들은 일찍이 이를 간파해 ‘국화와 칼’[Ruth Benedict,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1946], 또는‘ 국화와 가시’[Edwin M. Reingold, Chrysanthemums and Thorns, 1992] 따위로 표현했다.

 

문화인류학자인 베네딕트는 이를 짚어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고 찍어내어 “사람들이 전례없이 공손하지만 ‘그러나 또한’ 오만하며 건방지다고 덧붙여 말하기란 어려운데 일본의 경우 늘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짚었다. 그는 ‘이런 모순적 서술’의 “책들이 일본에는 여기저기 널려있다(warp and woop of books in Japan)”면서 “게다가 ‘국화와 칼’이 전체상의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도쿄 특파원으로서 오랫동안 일본을 관찰한 레인골드(Edwin M. Reingold)는 일본 문화에 내재하는 이런 모순을 지적하면서 ‘오랫동안 외국인들이 보고 황당해하는 것’을 가리켜 “전통에 젖은 옛 문명,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 어떤 서구 국가와도 견줄 만큼 근대적인 국가, 즉 세계의 규범을 선택적으로 지킨다는 권리를 유지하면서 서구와 경쟁하려는 국가”(Reingold, 1992, 67)라고 짚었다.

 

글쓴이는 미국 관찰자들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무모하게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이런 모순을 간파했던 사실은 평가할 만하지만 일본인 단일민족론이 담고 있는 의식구조는 다테마에·혼네를 뛰어 넘는, 보다 근원적인 주술적 편견에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무엇인가?

 

■ 주술적인 안팎 관: “섬 밖의 모든 것은 악마”라는 도깨비 주술

 

일본인들은 새해 정월 입춘 전날 밤 “복은 안으로, 도깨비는 밖으로”라는 말을 외우면서 볶은 콩을 뿌리며 액막이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일본 민중들이 치르는 단순한 민속신앙 의례다. 이들 대부분은 현세 이익적인, 민속신앙의 복음으로 믿었을 점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이들은 “후쿠와우치, 오니와소토(福は内, 鬼は外)”라는 외침이 실은 복음이 아니라 군국주의자들의 주문(呪文)이 될 것으로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즉, ‘우리’라는 섬나라 밖의 모든 것은 악마라는 무서운 도깨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內]에 대해 ‘타인’을 도깨비로 보는 기본 관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우리’[內]라는 울타리 ‘밖’[外]의 모든 것, 즉 타(他)의 인종, 역사, 문화를 터부시하는 주술적 관념이다.

 

그것은 안과 밖 즉, 내외(內外)라는 관념은 나와 너, 아군과 적군, 선과 악, 천사와 마귀를 가르는 금줄[標縄(시메나와)]에 다름 아닌 것이다. 본래 시메나와는 신 앞에 또는 제사[神事]가 치러지는 곳에 부정한 것이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증표로 쳐 두는 새끼줄이다. 보통 서민들은 문 앞에, 또는 집안의 카미다나(神棚: 조상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선반)에 쳐 둔다.

 

 

그렇다면 일본열도에는 내외라는 관념이 지닌 ‘사악성’을 깨달은 철학자나 종교인, 또는 전문가는 없는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정신의학자 나카가와 데츠야(中川哲也)는 일본인의 마음속에 ‘미우치의 세계(身內の世界)’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인은 자주 내외(內外)라는 말로 인간관계의 종류를 구분합니다. 엔료-(遠慮=거리낌, 사양, 양보)가 없는 미우치(身內=우리 집안사람)는 문자 그대로 ‘안’[內라]이며, 거리낌이 있는 의리의 관계는 ‘바깥’[外]입니다. 내외를 구별하는 기준[目安]은 거리낌의 유무입니다. 일본인에는 자주 이 내외에 대한 태도에 극단적인 차이가 인정됩니다. 우치(內)라는 일본어 미우치(身內)라든가 나카마(仲間=한패거리)우치라고 말하듯이 주로 ‘개인에 속하는 집단’을 가리키고 영어의 프라이빗[private]과 같은 ‘개인 자체’는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은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리낌이 작용하는 인간관계를 중간지점[中間帶]으로 하면 그 안쪽에는 거리낌이 없는 ‘우리 집안의 세계’[身內の世界], 그 바깥쪽은 거리낌을 작용할 필요가 없는 ‘타인의 세계(他人の世界)’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안쪽의 세계와 가장 바깥쪽의 세계에서는 개인의 태도가 거리낌 없음[無遠慮]이라는 점에서 공통이라는 것입니다(中川哲也, 1982, 73).

 

위의 정신의학자가 짚은 일본인의 정신세계 분석에는 철학자의 성찰이나 종교인의 회오가 없다. 거기에는 차가운 분석이 있을 뿐이다. 그가 짚은 ‘거리낌’이라는 도구는 ‘우리 집안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확연히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이다.

 

그러나 이 정신의학자는 이 신묘한 망원경을 발명해 놓고도 자신은 화성(火星)과 같이 다른 ‘타인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는 ‘우리 집안의 세계’ 밖의 ‘타인의 세계’에서 거리낌 없이 일어난 ‘역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망원경을 통해 ‘타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문화말살, 역사말살, 인종 학살이 일어난 역사를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본 군국주의들은 이런 금줄 안의 일본은 내지(內地), 금줄 밖에 식민지 땅인 조선, 만주, 대만은 외지(外地)라고 불렀다. 이런 금줄을 치고는 군국주의자들은 조선인들에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외지의 조선인에 천황의 ‘우리’ 신민으로 받아들이는 시혜를 베푼다는 식이다. 친일 소설가 이광수가 내선일체를 주재로 소설을 쓴 경우도 있지만 제정신을 가진 조선 사람 중 누가 이를 시혜로 받아들이겠는가.

 

■ 단일민족설의 픽션: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계에 유래했다는 역사 부정

 

다시 단일민족론으로 돌아가 과연 일본민족은 단일민족인가? 한국 여행객이 일본 수도 도쿄의 한 복판에 서면 엇비슷한 여느 일본인들은 만난다. 그와 비슷한, 그러나 결코 같지않은 일본인의 모습이다. 규슈대학의 스즈키 히로(鈴木広) 교수는 이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일본인 남자는 키가 작고 조금 뚱뚱하여 떼굴떼굴 걸어, 언 듯 보아 귀여운 듯하다. 그들은 모두 같은, 거무스름한[흑, 회, 감색] 신사복 상하의와 잘 닦은 검정 구두를 신고,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매어 몸을 차리고 있다. 일본인은 거무스름한 신사복이라는 제복을 입는 민족이다.

한 나절의 여인의 모습은 흔치 않지만 그 복장은 남자와 같이 거무스름하다. 색깔은 확실히 풍부하지만 모두 밋밋한 색이며, 문자 그대로 제복도 매우 많다(은행원, 점원, 사무원).

남자는 멀리서 보면 작은 몸집으로 귀엽지만 가까이 보면 그 눈초리가 매우 험악하다고 할까 하품이라고 할까, 어쨌든 리얼한 동물적인 눈이다. 또한 용모도 대개 추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동일인종이라는 것이 곧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모발과 피부·체형·복장의 획일성에 있다. 놀라울 만큼 검은 곧은 머리털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인종이라고는 거의 짐작도 할 수 없다(鈴木広, 1982, i ~ii).

 

 

위에서 현대 일본인의 겉모습이 엇비슷하다고 하여 단일민족이라고 한다면 이는 픽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현대 일본민족이 형성된 과정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 이야기에서 보듯이 벌써 조몬 시대 말기에 도래인의 파도가 몇 번이나 물결을 쳐 일본열도로 건너갔다. 기마민족 정복설, 조선계 야요이 인의 조몬인 정복설에 이어 마한계의 백제인이 토착일본인을 정복하고 야마토 일본 건설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 ‘설’을 곶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해도 과연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한반도 계에 유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아소다로 부총리 같은 일본의 극우 인사들이 단일민족론을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이 역설적으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외친 말을 일깨워 주면 무어라 답변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침고문헌

Edwin M. Reingold, Chrysanthemums and Thorns: The Untold Story of Modern Japan, New York: St. Matin's Press, 1992

Ruth Benedict,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New York: New World Publishing Co., 1967

규슈대학출판회, <日本人--その思想と行動>, 1982

鈴木広, “はじめに”, 위 책

中川哲也, “日本人の心”, 위 책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jkkim63@hotmail.com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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