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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논단] 김창범 대사, 미-중 갈등 속 ‘아세안의 불편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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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도네시아 대사 및 전략문화연구센터 고문 ‘신 외교안보 방정식’ 출간 참여

 

[ASEAN논단] 김창범 대사 미-중 갈등 속 ‘아세안의 불편한 선택’

 

전직 외교관들과 미국·중국·북한·통일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국 외교·안보 정책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한 책이 나왔다.

 

최진욱 전략문화연구센터 원장은 주요 외교·안보 부문의 최고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전략문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중 패권 경쟁에 맞닥뜨린 우리 외교안보의 전략적 과제와 방향을 제시한 책 ‘신 외교안보 방정식:네트워크 경쟁과 전략문화’를 출간했다.

 

 

최 원장은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에서 24년간 재직하면서 북한연구학회장을 지낸 손꼽히는 북한-통일 전문가다.

 

공동 저자로는 김재한(한림대),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김홍규(아주대), 이경화(전략문화연구센터), 이상현(세종연구소), 이양구(전 주우크라이나 대사), 이원덕(국민대), 이희옥(성균관대), 전재성(서울대), 한용섭(국방대) 등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책 내용 중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의 글은 38년간의 직업외교관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문화로 본' 아세안을 보는 혜안이 빛났다. 그는 아세안은 미-중 갈등 속 고민에 빠졌고, 한국도 이 상황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창범 대사는 최진욱 원장과 함께 ‘CSCS(전략문화연구센터, Center for Strategic & Cultural Studies)’를 세웠다. 현재 고문을 맡아 인도네시아를 포함 본격 ‘아세안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이 아닌 10년 이후 맹활약할 최고 전문가를 배출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전략과 문화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아세안에 대해 특별한 인연을 맺었고,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김 대사의 '전략적'으로 웅숭깊은 논문 ‘아세안의 불편한 선택’을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전재한다.

 

 

1. 시진핑의 '일대일로' vs.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 아세안 놓고 미-중간 경쟁 본격화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2일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한 정책연설은 1405년부터 시작된 ‘정화(Zheng He)의 대항해’로부터 시작된다. 1435년까지 계속된 7차례의 대항해 기간 중 정화의 함대는 현재의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주요 도서인 자바, 수마트라 그리고 칼리만탄 등에 정박하였다.

 

시 주석은 정화의 대항해를 중국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과 만들어 나가게 된 우호와 협력의 시초라고 규정하였다. 수세기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위에서 시 주석은 해양으로 뻗어가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공식 선언하였다.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 구상(New Maritime Silk Road)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마침 2013년은 중국과 아세안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맺어진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바로 한 달 전인 2013년 9월 시진핑 주석은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한 계기에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새로운 육상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하였다.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공표된 육상과 해상의 새로운 실크로드 선언으로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또는 Belt & Road Initiative) 구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인도네시아에서의 연설을 통해서 제시한 해상 실크로드 구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이 아세안과 ‘운명 공동체(Community of Destiny’)’라는 인식을 표방한 점이다. 이는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인 접근과 동시에 문화적 이해를 기저에 깔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는 아세안이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시 주석이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을 ‘정화의 대항해’로 시작한 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아세안과 중국이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임을 환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유라시아 대륙, 그리고 동북아, 인도양과 태평양을 포괄하는 일대일로는 세계 전략 차원의 중국의 포석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전략에서 동남아시아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은 동남아시아와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하에 끌어들이지 못하거나 다른 강대국가의 영향권에 놓이는 것을 좌시하는 것이 국가 이익을 저해하므로 이를 예방하고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Da Nang)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PEC CEO 서미트 계기 연설을 통해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선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로운 인도-태평양(peaceful, prosperous and free Indo-Pacific)”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인도태평양 구상은 시진핑 주석이 내세운 ‘중국의 꿈’에 대항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꿈’이라고 받아들여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낭 연설을 통해 경제개발, 거버넌스, 안보를 축으로 지역의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와 긴밀한 협력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대중국 견제라는 측면이 부각되어 사실상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구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주창해온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일방주의(unilateralism)’적 접근을 연설 내내 언급한 것도 새로운 구상의 의미를 퇴색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한 달 후인 2017년 12월 미 정부는 ‘국가 안보전략 보고서(National Strategy Report, NSS)’를 통해 수사적, 선언적인 측면이 강했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보다 구체화된 전략으로 탈바꿈했다. 이 보고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핵심지역으로 지목하면서 이 지역 내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가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을 군사력과 경제력을 통해 주변국을 위협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하였다. 보고서는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인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 우위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세안을 둘러싼 미-중간 경쟁은 본격화되고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이 위치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지정학적 지역 개념 또한 이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개념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모두 아우르는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으로 전환되었고 인도-태평양에 대한 이해와 대응 없이는 이 지역의 미래를 논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경쟁적 접근에는 경제적, 군사적, 이념적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지경학적(geoeconomics)ㆍ전략적 가치, 그리고 범세계적, 지역적 공급망과 가치사슬의 변화, 아세안 공동체의 진전,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와 ‘중화주의’(中華主義)라는 자국 중심적 가치체계 등이 그 배경요인이다.

 

 

최근 아세안을 향한 미-중간 경쟁은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soft power) 측면에서 동시에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드파워 면에서는 군사력의 증강, 공세주의적 해양전략의 추진, 그리고 아세안에 대한 경제지원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적극적인 공공외교 활동, 외교적 차원에서는 아세안 각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의 구축은 물론, 다자외교 메커니즘을 활용한 ‘親 아세안 (ASEAN friendly) 정책’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각축은 더욱 표면화되었다. 중국은 여타 국가에 비해 초기 단계에 코로나 확진 추세를 억제하고 방역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주요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코로나 대응에 있어 정책과 자원면에서 여유로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코로나 위기 초기에는 아세안 국가들에 대해 마스크 등 방역물품과 진단 장비를 지원하는 데에 이어 2020년 말부터는 중국 제약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코로나백신을 활용하여 아세안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백신지원 외교(vaccine diplomacy)’에 나서고 있다.

 

한편,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 따라 역내 세력이동(power shift)의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미-중 간 각축은 군사적 분야에서도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 남사군도 내에 7개의 인공 섬을 건설하여 군사 기지화하는 데 따라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의 무력 시위와 전개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2. 아세안의 우려와 대응:

 

▲아세안의 깊어 가는 고민

 

아세안을 둘러싼 미-중간 경쟁이 패권전쟁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세안은 경계감과 불안감을 더욱 더 갖게 된다. 2013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발표 이후 중국의 공세적 접근이 가속화되는 가운데서도 아세안은 일관되고 일치된 대응을 하는데 역부족인 모습을 보였다.

 

2017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고 일본, 호주, 인도 등 역내 주요국들이 유사한 개념과 전략을 제시하자, 아세안은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미국 주도의 4자 안보협의체(QUAD)의 부활, 일대일로 사업을 활용한 중국의 동남아 지역 영향력 확대,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역내 이해당사국 간 갈등 등으로 인해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과 단합성(Unity)이 침해받게 된 것이다.

 

‘일대일로’와 ‘인도-태평양 전략’이 충돌하는 가장 중심 지역에 위치하는 아세안으로서 지정학 변동에 대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부의 압박과 공세적 관여로 대내외적으로 아세안의 중심성이 도전 받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 아세안 회원국 간에 확산되게 된다.

 

2018년 1월 9일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신년 대외정책 발표 계기에 아세안의 관점에서 인도-태평양에 대한 구상을 마련할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고 아세안 주도의 지역 구도(regional architecture)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레트노 외교 장관이 밝힌 아세안 중심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평화, 안정, 번영의 생태계(ecosystem of peace, stability, prosperity)”를 지향하며, “자유롭고, 개방되고, 포용적이며, 포괄적인(free, open, inclusive and comprehensive)” 인도-태평양을 추구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인도네시아의 이니셔티브는 아세안 국가로선 처음으로 ‘인도-태평양’ 개념에 대한 공식적인 가이드라인 초안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이는 아세안의 내부 논의를 촉발하고 아세안 차원의 대응을 본격화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주도로, 2018년 2월 6일 아세안 외교장관 비공식 회동(retreat)에서 아세안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2018년 아세안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비비안(Vivian Balakrishnan) 외교 장관은 회동 후 발표한 의장 성명을 통해 ‘국제법과 동남아 우호협력 조약에 기반한 개방되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구도를 강화하기 위한 인도네시아의 제안(Indonesia’s proposal to further reinforce an open, transparent and inclusive regional architecture based on international law and the principles contained in the Treat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에 관해 외교장관 간에 토의가 이뤄졌음을 확인하였다.

 

 

그 후,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을 도출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아세안 회원국 외교당국 간에 진행되게 된다. 2018년 4월 2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세안 차원에서 인도-태평양 협력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세안의 중심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전략적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아세안의 능력을 개발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8년 11월 싱가포르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계기에 해양협력, 인프라 및 연계성,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라는 인도-태평양의 구체 협력분야를 제시하였다. 2018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리센룽(Lee Hsien Loong) 총리도 역내 외교안보·경제의 격전장이 된 아세안이 향후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선택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아세안 회원국 간 강한 결속력 유지가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아울러 2018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불참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관여의 우선순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음을 아세안 정상들에게 각인하였다. 중국의 지나치게 적극적인 관여와 공세적 접근을 우려하고 있던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역내에서 미국과 중국의 균형을 잡는 노력을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된다.

 

아세안 내에서는 아세안이 미-중 간 경쟁 구도 하에서 의도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세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게 된다.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통의 관점을 발표함으로써 내부 결속력을 다지고 외세로부터 아세안의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 간단하고 용이하지만은 않았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한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 아세안의 역할에 대한 표현을 둘러싼 아세안 회원국 간 이견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가급적 빠른 시기에 아세안 내부 컨센서스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인도네시아만의 뜻대로 일정이 진행되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2019년 6월 23일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아세안은 드디어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이하 AOIP)’이라는 문서를 채택하였다. 이는 더 이상 아세안 차원의 원칙과 입장을 수립하지 않고 방관할 경우, 아세안이 미-중간 각축 구도에 더욱 휘말리게 되고 아세안의 중립적인 위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기인하였다고 보인다. 더 늦추기 보다는 비록 불완전한 상태라도 아세안이 하나의 목소리로 대처하는 것이 낫다는 절박한 전략적 계산이었다.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이하 AOIP)’은 ▲ 아시아-태평양과 인도양을 아세안이 중심적·전략적 역할을 하는 긴밀하게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지역으로 인식하는 것(A perspective of viewing the Asia-Pacific and Indian Ocean, ... as a closely integrated and interconnected region, with ASEAN playing a central and strategic role),

▲ 인도-태평양지역이 경쟁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장이라는 것(An Indo-Pacific region of dialogue and cooperation instead of rivalry),

▲ 인도-태평양 지역은 모두를 위한 발전과 번영의 공간이라는 것(An Indo-Pacific region of development and prosperity for all),

▲ 해양영역과 발전하는 지역구도에 대한 시각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the maritime domain and perspective in the evolving regional architecture) 등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아세안은 AOIP의 주요 원칙으로 아세안 중심성과 포용성, 상호 보완성, 국제법에 뿌리를 둔 규칙 기반의 질서, 역내 경제 교류 증진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은 미-중 간의 각축 사이에서도 아세안의 정체성을 지키며 어느 일방으로 쏠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포용성(Inclusiveness)’은 중국을 배제하거나 중국과 대립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규칙 기반의 질서’를 내세워,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 시도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약하면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적인 편들기 요구나 세력 확장은 거부하면서 군사·안보보다는 경제협력에 방점을 두겠다는 점을 확고히 하였다. AOIP는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등 역내, 역외 주요국들의 다양한 인도-태평양 구상들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이자, 아세안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협력에 관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도 자임하고 있다.

 

AOIP는 아세안 중심성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협력 증진을 위한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이 인접한 영토 공간이 아닌, 긴밀히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지역으로 본다는 아세안의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군사, 안보 중심의 대결 공간으로 보지 않고 경제와 연계성이라는 개발지향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어느 특정국가(중국)를 배제하고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지역구도 개념을 추구한 것은 아세안의 핵심 가치를 지켜낸 것으로 이해된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협력 공간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협력체계를 만들지 않고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ASEAN+1,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ASEAN Regional Forum) 등 기존의 아세안 주도 하의 다자협력 플랫폼을 메커니즘으로 제시한 것도 아세안의 중심성을 잃지 않으면서 기존의 구도를 유지하려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해석된다.

 

또한 아세안 간 단합을 강화하고 통일된 대응을 도출하기 위해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 플랜(MPAC) 2025'와 같은 다양한 역내 연계성 이니셔티브추진을 가속화할 계획임을 확인하였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아세안 통합이 진전되지 않고는 아세안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견고하고 단일화된 대응을 하는 것은 역부족이고, 설사 대응하게 되더라도 지속적인 실행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AOIP를 통해 아세안은 역내 안보 질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대국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역내 지정학적인 내러티브(narrative)를 구체화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향을 보여주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지정학적 특성을 제외하면 정치·문화·종교적 이질성이 적지 않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처럼 중국에 경사된 국가도 있고, 베트남처럼 미국 쪽에 좀 더 기울고 있는 나라도 있다. 이러한 차이가 상존하는 가운데서도,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공통 분모를 도출하여 아세안만의 관점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AOIP’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아세안의 ‘불편한 선택(Uneasy Choice)’

 

▲아세안의 선택의 의미

 

«하나의 목소리를 위한 노력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을 마련한 아세안의 전략적 대응은 예견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편한 선택(Uneasy Choice)’이다. 동시에 쉽지 않은 선택(Not an Easy Choice)이기도 하다.

 

 

아세안은 ‘아시아-태평양’이 아닌 ‘인도-태평양’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중국 봉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였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에의 동조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AOIP를 발표함으로써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그널을 보냈다.

 

아세안은 AOIP를 통해 아세안이 역내 문제에 있어서는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역내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아세안 10개 회원국들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동의 견해(collective voice)를 도출해 낸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AOIP가 국제법 및 보편적인 국제 협약들의 원칙에 입각하여 아세안의 입장을 정립한 것은 역내 담론의 형성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아세안의 이러한 외교적 접근은 아세안의 가시성과 존재감, 즉 아세안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아세안 나름의 시각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앞으로 아세안의 중심성을 강화해 나가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의 AOI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을 하나의 균일한 해양 영역 (maritime space)으로 본 미국·호주·인도·일본 4개국의 국가별 구상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보다 포용적이며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실질 협력을 중시하고 있으며 군사적인 해법이나 접근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세안의 관점은 상이한 점을 드러낸다.

 

아세안이 AOIP를 얼마나 구체화시키고 미-중간 압박 속에서 스스로의 원칙을 견지해낼 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세안의 결속력 면에서도 아직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한 대외 전략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AOIP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쟁이 아닌, 대화 및 협력’ 구축 추진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미-중 경쟁의 심화, △여타 역내 강국간 역학 관계(인도-중국 및 일본-중국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아세안이 어느 한쪽 편을 택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중간 경쟁이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 예를 들어 남중국해상의 군사적 충돌이나 구체 현안을 둘러싼 외교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상황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역내의 불안정한 지정학·지경학적 환경 속에서 과연 아세안이 아세안의 중심성(centrality)과 연관성(relevance)을 얼마만큼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공히 아세안의 중심성을 지지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겨 이를 보장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이 주도하는 역내 프로세스를 보충(supplement)하는 역할에 만족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 가능성이 높다.

 

아세안의 AOIP가 미-중 간 경쟁구도 하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압박의 무게를 완화시켜줄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봐야할 사안이다. 다만 AOIP가 아세안의 위치를 분명히 함으로써 향후 미-중의 전략적 판단에 일정한 제약을 부과하고 아세안과의 협력 방향에 좌표를 설정하는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우리가 눈 여겨 볼 부분이다.

 

« 미-중 경쟁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

 

아세안 회원국 정부차원의 AOIP 채택을 넘어서, 아세안의 선택을 이해하고 관찰하는데 있어 일반 국민의 여론의 향배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각이 과거와 비교하여 변화하는지, 또 변화한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지는 아세안의 선택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국민 여론이 정책 결정자들의 미래의 선택에 여하히 영향을 미칠지도 흥미로운 논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싱가포르 소재 ISEAS-Yusof Ishak 연구소가 2020년 11월 아세안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세안이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나라를 택하겠느냐”라는 가상적인 질문에 응답자의 53.6%가 미국을 선택하겠다는 답을 택하였다. 중국을 선택한 응답자도 46.4%에 달하여 사실상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응답자의 국적별 분포를 살펴보면, 국가별로 좀 더 복잡한 상황임이 드러나고 있다. 즉, 라오스(73.8%), 브루나이(69.1%), 미얀마(61.5%), 말레이시아(60.7%), 캄보디아(57.7%), 태국(52.1%), 인도네시아(52%)는 과반수 이상이 중국을 선택하였다. 반면, 베트남(85.5%), 필리핀(82.5%), 싱가폴(61.3%)은 미국을 보다 많이 선택하였다. 아세안 전체 차원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을 놓고 의견이 반반으로 나눠지는 모습이나 실제 회원국 국가별로 관찰해보면 국가 간 이해의 상충과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회원국 간 컨센서스를 도출해내는 것이 어려운 과제임을 증명하고 있다.

 

가장 정치적, 전략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국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45.2%에서 2020년 52.2%로 중국이 계속 1위를 유지하였다. 미국은 2019년 30.5%에서 2020년 26.7%로 연속해서 응답자 비율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이 중국을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꼽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중국을 선택한 응답자의 85.4%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편,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대국에 관한 설문에 대해서는 중국이 가장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응답자 중 73.3%가 중국을 지목한 데 이어서 2020년 79.2%로 약간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중국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캄보디아(88.5%) 태국(86.5%) 브루나이(85.5%)순이었다. 미국이라 답한 응답자는 고작 7.9%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중국에 대한 우려를 가진 응답자의 비율은 여전히 높게 나타났다. 중국을 가장 영향력 높은 국가로 보는 응답자의 71.9%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중 가장 우려를 표한 응답자가 많이 나온 국가는 필리핀(82.1%), 베트남(80.2%), 태국(75.9%)이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가져올 ‘걱정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책적 시사점

 

아세안의 전략적 대응은 예견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편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아세안의 선택은 매우 어려웠지만 나름 선택을 위한 기준을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아울러 아세안은 그 기준을 토대로 정책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의 네트워크화로 보다 구체화되는 미국의 접근과 중국의 압박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한민국에게도 참고할 만한 정책적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미-중 경쟁에 대해 아세안은 기본적으로 경쟁으로부터 야기되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하나에 편승하기 어려운 상

황에 놓인 아세안의 선택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주목할 첫번째 사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사이에서 아세안의 근본적 선택은 원칙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이다. 원칙면에서 아세안의 중심성을 잃지 않고, 아세안 특유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네트워크의 활용이다. 이는 앞에 서술한 원칙과 가치라는 사항을 실제로 구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방향이다. 아세안은 아세안의 중심성과 연관성(relevance)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 이외의 주요 파트너, 즉 일본, 호주, 인도, 한국, EU 등과 제휴하고 연대하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세안+1,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을 통해 아세안이 중심이 되어 지역 내 변화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중 일방의 편을 들지 않는 ‘열린 포용성(Open Inclusive)’전략이다. 아세안이 참여하지 않는 미국 주도의 QUAD(미국, 호주, 인도, 일본)나 중국의 공세적 접근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응하면서 기존의 아세안 방식을 고수하는 접근이다. 동시에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구성원인 일본, 호주, 인도, 한국 등 역내 파트너국가들의 관여와 협력을 권장하고 이를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네째 전략은 ’헤징(hedging)과 균형(balance)’으로 표현할 수 있다. 아세안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대립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경제적ㆍ안보적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역내 국가와의 협력도 보다 증진시켜 나간다는 구상이다.

 

또한 실리면에서는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이 야기할 수 있는 주권의 약화와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 감소에 대처하기 위하여 중국의 경제적 접근, 특히 일대일로(BRI) 사업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즉 어느 일방으로부터의 위험을 분산시켜서 관리하는 헤징 전략과 동시에 균형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에 기초한 전략이다. 아세안의 중심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해양안보, 연계성, 지속가능개발 목표 달성,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아세안의 AOIP가 구체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세안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아세안 내에서 각 회원국 별로 AOIP의 이행에 대해 의지와 생각이 상이한 탓으로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가시화될 경우에는 단합된 행동을 보이지 못할 우려가 크다. 더욱 아쉬운 것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AOIP는 가이드라인 이상의 아무런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 대한민국의 선택을 위한 소회

 

대한민국 정부는 아세안의 AOIP에 대해 2019년 11월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아울러, 2019년 11월 25일~26일 부산에서 개최된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공동의장성명 6항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아세안은 대한민국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에 대한 지지를 포함하여, 진화하는 지역 구도에서 대한민국이 아세안 중심성을 지속적으로 지지해 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34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동 관점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역외 협력국들과 아세안의 기존 및 미래 구상들 내에서 가능한 협력을 촉진하는 지침으로 활용할 것을 장려하였다.”

 

한-아세안 관계 차원에서 아세안의 입장을 원칙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세안의 역내 대화상대국으로서 한-아세안간 협력을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미-중 경쟁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아세안의 고민과 우려, 그리고 아세안의 선택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아쉬운 대목이다.

 

아세안의 전략적 선택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중 간 대립구도에서 원하지 않는 외교적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아세안이 처한 대내외 환경과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 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므로 아세안의 사례를 그대로 원용하거나 이를 대입하는 데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불편한 선택’은 많은 고려사항을 제공하고 있다.

 

▲선택의 고려 요소

« 원칙에 기반한 선택

 

아세안이 선택의 기준으로 아세안 중심성을 견지한 데 주목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켜야할 원칙은 무엇인가?

 

남북 분단의 현실과 대북 관계 개선의 필요성, 한미 동맹의 유지 발전은 아세안의 중심성에 견줄 수 있는 한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자 제 1위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협력은 경제, 안보 양면에서 불가결한 고려 요소이다. 미-중 양국의 경쟁과 각축 구도 하에서 한국이 반드시 지켜내고 타협할 수 없는 사활적 국익이 무엇인지를 선별해 내고 이를 수호하기 위해 어떠한 원칙적 기준이 필요한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세안의 경우, 10개 회원국이 서로의 이견을 극복하고 컨센서스를 통해 입장을 정립하게 됨에 따라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이에 비해 단일 국가인 한국이 국가의 사활적 이익을 정의하고 이를 개념화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한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 보편적 가치를 따르는 선택

 

즉,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에 대한 존중은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확고하게 지켜 나가야 할 가치이다. 이는 외교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양자와 다자 무대에서 좌표로 삼아야할 부분이다. 한국이 수호해야 할 가치측면에서 우선 미국과 공유하는 공통 분모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 국제법 존중 등이 그 일례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전략적 대화의 축적을 통해 우리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도 긴요하다고 본다. 물론 가치의 충돌과 상충은 국가 간에 항상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이를 회피하거나 무시하려고 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트워크 외교의 필요성

 

«동북아지역협력 주도

 

대한민국은 한미동맹 체제의 틀을 넘는 대외적 네트워크의 확장에 소극적이었다. 냉전체제 그리고 이어진 미국 중심의 單極(unipolar) 체제 하의 탈 냉전 시대에서는 새로운 네트워크 창출과 외연의 확대를 서두를 이유나 동기가 적었던 것이 현실이다.

 

배타적 성격의 지역질서가 아니라 ‘포용적 지역질서’를 우리의 국익에 맞게 조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동북아 지역 협력의 강화를 통해 동북아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하는데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3국 간의 대화와 협력에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임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 전체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한일관계의 개선은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야할 과제이다. 한중관계와 나아가 중일관계의 개선에도 기여함으로써 중국과의 신뢰와 협력을 확대시켜 나가는 데에도 일조하게 될 것이다.

 

 

«아세안 협력 네트워크의 확대

 

아세안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고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태동기에 아세안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동아시아 비전 그룹(East Asia Vision Group) 구성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정상회의 체제를 출범시켰던 동아시아 외교 이니셔티브는 미-중 경쟁의 격화 속에서도 양자 택일의 선택을 넘어서는 보다 창의적인 해법의 사례이다. 이는 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데에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 정책 역시 포용적 지역질서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신남방 정책이 한국과 아세안 간 경제 협력의 질적인 격상과 경제 다변화는 물론, Post China 시대의 대안으로서 주목받는 대아세안 진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로 한국의 대외 네트워크를 확장함과 동시에 외교적 선택을 넓히는 헤징(hedging) 전략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도-태평양 구상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도, 호주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내실화 함으로써 대한민국 외교의 네트워크를 보다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대중국 관계 차원에서도 한국-인도 간 전략적 대화와 공조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소 회

 

전략은 문화적 이해를 토대로 할 때 보다 활성화되고 효과적일 것이다. 미-중 강대국 간 대립구도가 격화되는 것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게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미-중 대립구도가 격화되면서 전략문화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듯이 다음 몇 가지는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복합적 전략문화’의 필요성이다. 전략문화는 특정 국가 혹은 특정 지역의 연구에서 매우 효과적이나, 특정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자칫 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소홀히 하고 국가나 지역의 특수성에 빠짐으로써 균형을 잃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국가, 지역,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대아세안 전략은 아세안과의 협력차원 뿐만 아니라, 아세안 개별 회원국에 대한 양자 전략, 동북아 전략, 일본, 인도, 호주 등 주요 역내국가와의 관계,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 등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입체적으로 고려할 때 균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둘째, 문화도 중요하고 전략도 중요하며 문화전략의 시너지 효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전략이 문화를 반영하고 이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문화의 중요성을 내세우면서 문화를 왜곡하고 조작하려는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전략이 실패하게 되는 경우 실패를 합리화하려고 문화적 실체를 가공하거나 문화를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전략문화는 담론이나 탁상공론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반드시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계획과 역량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고려를 바탕으로 하는 전략문화는 분명 매력적인 접근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미 전략문화적 접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38년간의 직업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나서야 전략문화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문화를 고려한 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전략이 부재한 상태에서 전술만 휘둘렀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이 정책결정자와 학계, 언론계간 보다 밀접한 교류를 통해 좀 더 일찍 해소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는?

 

전직 외교관으로 현재 전략문화연구센터 고문을 맡고 있다. 1981년부터 2020년까지 외교부에 근무하면서 한반도 평화, 한미동맹, 유럽연합과 아세안과의 관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2012년부터 3년간 주 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로 재직하였으며, 2018~2020년 2년 6개월간 주 인도네시아 대사로 근무하였다.

 

외교부 본부 근무 기간 중에는 안보정책 과장, 북미3 과장, 혁신인사기획관, 그리고 한반도 평화교섭본부 초대 평화체제 기획단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부터 4년 3개월간 대통령 의전비서관을 지내며, 각종 정상회의와 해외 순방 및 대통령 일정을 담당했다.

 

2015년부터 2년간 서울시 국제관계 자문대사로도 재직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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