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체제(體制)의 무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90년대 중후반, 북녘 땅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처절한 이름 아래 스러져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수백만, 어쩌면 그 이상이 굶어 죽어간다는 소문은 강 건너 바람처럼 스산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시대이기에, 어떤 땅이기에 인간이 곡(穀)이 끊겨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가. 그 참상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길은 막혀 있었다. 대신 나는 두만강으로 갔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갈리는 듯한 그 경계선으로. 중국 쪽 강변을 걷다가 허름한 교회를 발견했다. 십자가 아래,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목사님은 강 건너편의 비극을 너무 많이 목격한 듯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 소녀를 보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라고 하기엔 소녀의 몸은 겨울나무처럼 앙상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굶주림을 피해 얼어붙은 두만강을 목숨 걸고 건넜다고. 소녀의 이야기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천근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가 먼저 눈을 감으셨고, 곧이어 아버지도 기력을 잃고 쓰러지셨다. 남은 것은 어린 동생 셋. 굶주림에 지쳐 울음소리마저 희미해져 가는 동생들을 살려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