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의 아세안ABC
[서정인의 아세안 ABC 30] 동남아 문화를 이해하는 다섯 개의 물결
동남아를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나는 늘 “다양성(diversity)의 세계”라고 말한다. 동남아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느끼는 것은 이 지역이 단순히 여러 나라가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 언어와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나고 섞이며 만들어낸 거대한 문화의 용광로라는 점이다. 동북아가 상대적으로 단일 문명권의 영향 속에서 질서와 체계를 중시하며 발전해 왔다면, 동남아는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되 자기식으로 변형하고 융합하는 데 훨씬 능숙했다. 그래서 동남아 문화는 대체로 유연하고 부드럽다. 개방성(openness)과 혼종성(hybridity)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대표적으로 태국과 한국 모두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태국은 오랜 세월 인도 문화와 불교, 힌두적 세계관이 함께 스며들었다. 그 결과 사회 분위기와 인간관계, 종교 문화와 예술 표현 방식에서도 보다 유연한 색채가 나타난다. 이는 동남아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 다양성 속 통일 역사: 언어에도 남겨진 다양한 문명의 파도 ‘흔적’ 동남아의 다양성은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은 남도 해양어군(Austronesian),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남도 대륙어군(Austroasiatic), 태국·라오스는 타이어군(Tai), 미얀마는 티베트-버마어군에 속한다. 여기에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같은 인도계 언어, 아랍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영어 등이 겹겹이 영향을 미쳤다. 결국 오늘의 동남아 문화는 하나의 단일 문명이 아니라, 여러 문명이 파도처럼 밀려와 남긴 흔적들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외래 문명이 들어오기 전에도 동남아에는 이미 고유한 기층문화(substratum culture)가 존재했다. 이 시기의 공통 특징은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계 종교 이전의 정령신앙 중심 사회였다. 둘째, 문자가 없어 대부분의 정보와 역사는 구전으로 전해졌다. 셋째, 국가보다는 촌락 공동체 중심의 사회였다. 넷째, 농업은 화전 농업 중심이었다.다섯째, 대륙 동남아는 청동기·철기 문화가 발전했고, 해양 동남아는 항해술이 뛰어났다. 이러한 기반 위에 약 2000년 전부터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 교역이 활발해졌다. 이른바 ‘해양 실크로드’다. 교역이 발전하자 항구와 중계 거점이 생겼고, 무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강한 권력이 필요해졌다. 이것이 초기 국가 형성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나라가 후난(Funan)과 참파(Champa)였다. 반면 필리핀은 해상 교역 중심지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대신 바랑가이(barangay)라 불리는 마을 공동체 중심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16세기 스페인이 비교적 쉽게 필리핀을 식민지화하고 가톨릭화할 수 있었다. ■ 첫 번째 큰 물결, 인도 문화: 동남아 최초 힌두 국가 ‘후난 왕국’ 동남아에 가장 먼저 거대한 영향을 준 외래 문명은 인도 문화였다. 1세기부터 6세기까지 존재한 후난 왕국은 동남아 최초의 힌두 국가로 평가받는다. 왕권 강화를 위해 힌두교적 상징과 정치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후 수마트라를 중심으로 한 스리위자야 왕국은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며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 무역국가로 번영했다. 뒤이어 자바에서는 보로부두르 불교사원과 프람바난 힌두사원이 건설되며 인도 문화가 꽃피었다. 앙코르 왕국 시대에는 앙코르 와트와 앙코르 톰 같은 거대한 힌두·불교 문명이 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에도 인도 문화의 흔적이 동남아 곳곳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태국의 국장과 인도네시아의 국장에는 힌두 신화 속 상징인 가루다(Garuda)가 등장한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그림자극 와양(Wayang) 역시 힌두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동남아는 인도 문화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1927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동남아를 여행한 뒤 이렇게 말했다. “동남아 전역에서 인도를 보았지만, 인도는 찾을 수 없었다.” 동남아는 언제나 외래 문명을 자기식으로 변형해 왔기 때문이다. ■ 두 번째 물결, 중국 문화: 베트남은 중국 문화권 성격이 강하다 중국 문화 역시 오랜 세월 동남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그 영향력이 강했다. 인도화된 동남아 왕국들도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쳤고,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속에서 외교 관계를 맺었다. 동남아 국가 중 중국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약 천 년간 중국 지배를 받으며 유교와 한자 문화, 중앙집권 체제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동남아를 크게 나누면 태국·캄보디아·미얀마 같은 대륙 동남아는 인도 문화권의 색채가 강하고,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중국 문화권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의 일대일로(BRI) 전략 역시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현대판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 조공무역 질서의 연장선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 세 번째 물결, 이슬람 문화: 국제 교역망 편입 위해 받아들여 이슬람은 동남아에 비교적 평화적으로 전파되었다. 주로 무역상인들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12~13세기부터 본격적인 개종이 시작됐다. 특히 무역 네트워크와 정치 권력은 이슬람화와 깊게 연결돼 있었다. 토착 지배층은 무슬림 상인을 유치하고 국제 교역망에 편입되기 위해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오스만 제국이나 무굴 제국과의 관계를 통해 권위를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동남아 이슬람은 중동 이슬람과는 상당히 다르다. 인도네시아 아체는 비교적 보수적이지만, 자바는 전통문화와 결합된 온건한 이슬람 성격이 강하다. 즉, 이슬람조차 동남아에서는 현지 문화와 융합되며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 마지막 물결, 서구 문화: 향신료 확보 경쟁 ‘폭력 동반+상업주의’ 서구 문화는 이전의 외래 문명과는 다른 특징을 지녔다. 첫째는 폭력을 동반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상업주의였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동남아의 항구와 무역 거점을 차례로 장악했다. 19~20세기에는 향신료와 시장 확보를 위한 식민지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과 인도인 노동 이민도 대거 유입되었다. 오늘날 동남아 화교 사회의 형성 배경이다. 하지만 서구 문화의 영향은 역설적이다. 정치·경제 체제는 완전히 바뀌었지만, 필리핀을 제외하면 동남아의 종교적 기반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유럽 열강에게 우선순위는 선교보다 무역과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Gold, God, Glory”를 내세웠지만 실제 핵심은 Gold, 즉 상업적 이익이었다. 다만 서구 식민지 시대는 오늘날 동남아 국경 형성에도 영향을 남겼다. 중동처럼 인위적 국경선이 대규모로 그어지기보다는 기존 자연적 경계가 상대적으로 존중되었고, 이는 오늘날 동남아 국가 간 국경 갈등이 중동보다 덜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동남아의 힘은 ‘융합’이다 동남아를 보면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완전히 지배한 적이 거의 없다. 대신 기존 문화 위에 새로운 문화가 층층이 쌓이며 공존해 왔다. 그래서 동남아 사람들은 외부 문화를 비교적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동시에 자기 정체성도 쉽게 잃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세계가 갈등과 충돌 속에서도 동남아를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양성을 견디고, 서로 다른 문명을 공존시키는 힘. 그것이 동남아 문화의 가장 큰 저력인지도 모른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