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옳다.” 2017년 겨울, 한-아세안 협력기금 사업 일환으로 열린 ‘한-아세안 플루트 페스티벌’ 공연을 보고 벅찬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각 국가별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의 ‘플루트’가 존재하였고 11개국 연주자가 어우러져 아름답게 내는 소리는 필자가 한-아세안 협력사업 담당자로서 근무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음악 애호가로서 하나의 창작 장르를 알게 된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공연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개원한 지 2~3개월 남짓했던 부산 아세안문화원의 공연장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느낀 감동도 덧붙여져 필자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외교부 생활 중 손꼽히는 특별한 기억이 무색하게 국악, 그리고 아세안 전통음악은 필자에게 잊혀 갔다. 그러던 중 잔잔하게 남아있던 본능을 이끌어 준 공연을 지난 3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음악 덕후에게도 소외되었던 국악, 아세안을 통해 다시 만나다 그 감동은 바로 아세안문화원 주최로 3월 한 달 간 선보인 온라인 공연, 국악으로 만나는 아세안 음악 <아세안 X 시나위>를 통해서이다. 아세안 10개국의 전통음악을 국악으로
미얀마는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나라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스스로 아세안 전문가라 칭하면서도 아세안 개별 국가 하나하나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모르는 국가를 꼽으라고 하면 미얀마가 아닐까 싶다. 2014년, 미얀마에서 개최된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마친 후 경험한 미얀마 맥주의 알싸한 향기와 맛에 반해(?) “아세안에 뼈를 묻을 거예요” 라는 말을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3회차 김시은의 아세안랩 참조). 아마도 다른 9개국에 비해 출장 기회가 적었고(사실, 2014년 출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0개국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보면 미얀마 사람들이 얌전한 성격에 수줍음이 많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친한 동료이자 친구들을 많이 못 만든 탓이었던 것 같다. 알고 나면 티 없이 맑고 한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미얀마 사람들인데, 더 가까워지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2월 첫날 새벽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 ■ 미얀마의 다채로운 매력을 담은 사랑 고백서 “나는 왜 미얀마와 사랑에 빠졌을까”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을 홀린 듯 바로 구매하였다. 아마도 미얀마에 더욱 다가가고 싶은 나의 갈
1989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이후 1990년부터 시작된 한-아세안 협력사업은 역사만큼 다양한 협력사업이 있다. 이 중에서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사업을 이어오는 기관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대전대학교다. 2013년, 처음 외교부 한-아세안 협력사업 전문관으로 근무할 때 이러한 장기 사업들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정말 성과가 있는지, 첫 단추가 잘 끼워져 운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윗선에서 “밀고” 있는 사업은 아닌지. 의심의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러한 의심이 든 이상 장기 사업들은 더욱 철저하게 검증해야겠다. 그리고, 부실하게 이어져온 것이라면 반드시 종료시켜 다른 기관들에게 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사실, 대전대학교 사업은 이러한 의심의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한-아세안 대학생 간 교류를 증진시키고자하는 무수의 대학교 중 왜 대전대학교인가. 2014년 한-아세안 협력사업 심사를 앞두고 나는 이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아니, 사업을 종료시킬 명분이 있다고 확신한 채) 대전대학교로 향했다. ■ 오해는 애정으로, 첫눈에 매료된 대전대학교 대전대학교는 대전역에서 차로 약 10분, 그리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세계가 연초 계획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한해다. 지난해까지 외교부 아세안협력과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난다. 아세안 업무의 특징은 업무 시기나 흐름이 예측이 가능하다. 통상적으로 매년 초부터 11월 초 아세안 의장국에서 개최되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위해 준비회의를 하며 달려간다고 보면 된다. 스케줄은 빡빡하면서 빠르게 흘러간다. 예를 들어 3~4월 대사급 회의, 5~6월 차관급 회의, 7~8월 장관급 회의 등이다. 1년을 마무리하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끝나면 비로소 한해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안도하곤 한다. ■ 한-아세안 관계의 꽃,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러한 루틴에 벗어나서 한-아세안 관계가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사건’도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다.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대화관계 수립 이후 2009년, 2014년, 2019년 등 10년 안에 세 차례에 걸쳐 국내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었다. 특히,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2014년 제2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후 우리나라 때문에 ‘아세안 외에서의 특별정상회의 개최는 10년 이상 주기로 개최된다’라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외교부’의 ‘인사이더’는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 외무고시(현재는 국립외교원)에 5급 공채로 합격하여 입부한 외무공무원, 그 중에서도 북미, 동북아, 북핵 관련 업무를 거쳐 간 외교관일 것이다. 현재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유리천장을 깨긴 했지만, 역대 장·차관, 차관보, 한반도본부장 등 외교부 고위급 인사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예외없이 이 공식이 적용되었다. ■ 외교부 인사이더 VS 아웃사이더,,,퇴사 후 아세안 ‘민간 외교관’ 선언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외교부 ‘아웃사이더’였다. 외교부에서 흔치 않은 민간 전문관 자리, 그것도 ‘인사이더’와는 거리가 먼 ‘아세안협력과’에서만 7년을 근무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외교부가, 함께 일한 외교부 사람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아세안 사람들과 함께한 아세안 업무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민간인 입장에서 경험한 외교부 아세안 업무 그리고 아세안의 매력에 대해 널리 알려야겠다는 것이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그리고 나의 퇴사 시기(2019년 12월)와 너무 멀어지지 않는 시점에 책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퇴사 후 약 6개월 간
미국 중심의 외교 안보 정책 우선순위를 인정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곳이 있다. 바로 아세안이다. 아세안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의 10개국을 통칭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말한다. 인구 6억 5000만 명으로 한국의 제2의 교역대상이다. 한국은 아세안의 값싼 토지와 노동력을 이용해 공산품 생산기지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의 대 아세안 공적개발원조(ODA)는 전체 ODA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미-중-일에 치우친 한국 외교에 있어 아세안은 수출 및 기업 진출에 있어 또 다른 활로인 동시에 국제사회에 있어 남북 관계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2013년 7월 외교부 아세안협력과 전문관으로 채용되어 2019년 12월 말 퇴사할 때까지 한-아세안 협력기금 사업 관리 및 아세안 관련 회의 준비 등의 실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커리어 우먼이다. 물론, 외교부 내의 많은 조력자들이 그녀의 업무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다. 그녀 또한 민간인 신분으로서 자신이 맡은 업무가 한-아세안의 관계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