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가 5월 26~27일 서울에서 개최된다. 4년 5개월 만이다. 26일에는 한중회담과 한일회담을 한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7일에 열린다.
이번 정상회의는 “세 나라가 3국 협력체제를 완전히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말했다. “3국 국민들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차장의 발언이 언감생심일지언정 생각치 못했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두 팔을 벌려 환영하겠지만 구조적 한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참석한다. 리창 총리는 중국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는 시진핑 주석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3국 회의가 갖는 첫번째 구조적 한계다.
한중일 3국은 경제, 안보, 첨단기술 등 제반 분야에서 복잡하고 중요한 현안을 공유한다. 서로에게 상호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3국간에는 무역 불균형과 보호주의 정책, 기술이전 문제 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그 이전에 역사적 갈등이나 영토 분쟁, 그리고 안보에 있어서의 이해관계 차이는 서로간의 신뢰구축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반도체, 인공지능, 5G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기술 우위 확보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또한 대기 오염, 해양 오염 등 환경문제를 둘러싼 국경을 초월한 문제들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변화도 커다란 갈등 변수다. 3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들이자 두번째 구조적 한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3개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2023년 기준 미국의 64.5%에 달하며, 무역 규모는 세계 1위로 전 세계 최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경제와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자료출처: Asia Times, Worldometer 2024년 현재 한국의 인구통계 데이터, OECD Economic Outlook Volume 2023 Issue 등 참조)
일본은 세계 4위 경제대국이자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1위로, 전 세계 자산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다.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발간한 ‘2023 한중일 3국간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3국의 GDP는 24조3500억달러(약 3경 3,310조 8,000억 원)로 전세계 GDP의 23.4%를 차지한다. 인구는 15억8700만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0%가 3국에 살고 있다. 또한 무역의 18.7%, 상품수출의 20.2%, 상품수입의 17%가 3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중일 3국은 다양한 경제적 상황과 구조적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경제 관련 이슈를 공유하고 있다.
저출산 및 고령화가 첫번째이다.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은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과 노동력 부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한 중국이나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어온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두번째로, 세 나라 모두 공공부채와 가계 부채가 높은 수준이다. 가계 부채 비율이 높은 한국, 부동산으로 야기된 부채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 공공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이는 결국 재정 건전성과 경제정책 운용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세번째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혁신과 경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3국의 노력 또한 비슷한 점이 많다.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경제의 다변화와 신사업 육성이 절실하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은 기술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동 시장 개혁과 여성 노동 참여 확대 등을 주요 과제로 가지고 있는 일본은 디지털화와 혁신을 통한 경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한중일 3국은 이러한 경제적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기술 및 의료서비스의 교류를 통하여 공통된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협력해야 한다. 또한 상호 이민 정책에 대한 공동 연구와 협력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두번째로 공동 연구 개발 및 기술 표준화를 통해 기술혁신 및 산업협력을 이뤄나가야 한다. 이는 각국 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로 경제블록 형성 및 무역 자유화를 통해 경제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 2012년 11월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3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민감한 산업 분야에서의 이견으로 인해 아직 체결되지 않았지만,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넷째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공동 정책을 마련하고, 탄소 배출 감소 목표를 공유하며 환경 기술을 교류할 수 있다. 또한 재생 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통해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다섯째,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설립하여 경제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금융시스템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김태효 차장의 말처럼 3국 정상회의가 실질적인 협력의 모멘텀이 되고자 한다면, 정상회의 이후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창구로 해서 고위급 회담을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강화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정치와 외교적인 관계를 떠나 상호 경제적 이익의 최적점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딜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