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후반, 북녘 땅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처절한 이름 아래 스러져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수백만, 어쩌면 그 이상이 굶어 죽어간다는 소문은 강 건너 바람처럼 스산하게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시대이기에, 어떤 땅이기에 인간이 곡(穀)이 끊겨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는가. 그 참상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길은 막혀 있었다. 대신 나는 두만강으로 갔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갈리는 듯한 그 경계선으로. 중국 쪽 강변을 걷다가 허름한 교회를 발견했다. 십자가 아래,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목사님은 강 건너편의 비극을 너무 많이 목격한 듯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 소녀를 보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라고 하기엔 소녀의 몸은 겨울나무처럼 앙상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굶주림을 피해 얼어붙은 두만강을 목숨 걸고 건넜다고. 소녀의 이야기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천근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가 먼저 눈을 감으셨고, 곧이어 아버지도 기력을 잃고 쓰러지셨다. 남은 것은 어린 동생 셋. 굶주림에 지쳐 울음소리마저 희미해져 가는 동생들을 살려야 한
인공지능(AI)의 파도가 전 세계를 뒤흔들며 교육과 직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미국 명문대학의 텅 빈 강의실, AI로 대체되는 일자리, 주 60시간 근무 요구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삶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전환점이다. AI 시대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AI가 뒤흔든 교육: 위기와 가능성 미국 명문대학의 학생 수가 줄고 있다. AI 기반 온라인 학습과 맞춤형 교육 확산으로 전통적인 강의실 모델이 흔들린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캠퍼스에 머물 필요를 덜 느낀다. 이는 대학 재정난과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하지만 AI는 위기만 가져오지 않는다. 학생의 학습 속도와 약점을 분석해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데이터로 성취도를 예측해 지원을 제때 줄 수 있다. 이는 교육 효율성과 개인화를 높인다. 다만, AI가 주도권을 잡으면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가 위축될 수 있다. 기술과 인간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 직업 시장의 재편: 대체와 기회 AI는 직업 시장을 재편한다. 챗봇과 자동화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며, 일부 산업에서는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AI 개발, 데이터 분석,
뉴 저먼 시네마의 3대 기수 중 하나였던 빔 벤더스는 78세의 거장이 되어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지혜를 청소노동자이자 수행자이자 예술가인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을 통해서 잔잔하게 보여준다. 줄거리는 도쿄 시부야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며 홀로 살고 있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라 흘러간다. 매일 평탄하게 반복되는 히라야마의 삶은 주변인물들의 삶에 중첩되면서 미세한 영향을 받게 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사건들을 묵묵하게 관조하면서 깨달음과 기쁨을 얻는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나타난 조카딸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자신 안에 부성애가 잠재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악연이 되어버린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새기며 잠시 출렁이지만 다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 간다는 내용이다. 수행자 히라야마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출근 직전에 자판기 캔커피를 마시는 순간까지의 행위는 규칙과 순서에 따라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본의 다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자만과 아집 그리고 욕망과 희로애락의 감정에 지배되지 않으려 수행하는 히라야마의 삶을 은유한다. 예술가 히라야마는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사진 찍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진찍기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석조사원이다. 30여 년간 매일 2만 5000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앙코르 와트는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되었다 1860년 우연히 발견된 세계 7대불가사의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벗어나자 앙코르 와트에도 예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관광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난해는 전년 비해 약 50여만명이 늘어났다.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조성진 기자와 함께 '왕국의 사원' 앙코르 와트 ‘시간여행’을 떠난다. 풍경에 새로운 숨길을 불어넣는 그의 '역사인문기행'에 동참해보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 봉헌식, 신을 만나러 가는 길 ② 왕은 2층 정원을 한바퀴 돌고 나서 3층으로 향했다. 3층 회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폭이 좁고 가파르다. 계단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세 개씩 각각 12개가 있는데 이 계단 수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왕이 오르는 정면의 계단도 가파르지만 나머지 11개 계단은 더 가파르다. 65미터나 되는 높은 사원을 측면에서 지지하면서 구조미까지 감안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높이 솟은 메루산은 우주의 중심이라 천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1954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로드무비이자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이었을 때, 그리고 이십 대 초반에 감상했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서 다시 보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둘째 딸로서 굶주린 어린 동생들을 위해 희생의 길을 선택한 젤소미나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분노를 품고 있는 떠돌이 차력사 잠빠노에게 단돈 몇 푼에 팔려간다.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인 젤소미나와 잠빠노의 관계를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나눴던 돼지와 부처에 비유해보자. 순수한 영혼의 젤소미나는 잠빠노를 모성과 연민으로 품어주지만 동물적 본능만 남은 잠빠노는 당근과 채찍질로 젤소미나를 이용하고 학대할 뿐이다. 두 인물의 굴곡진 여정은 시간을 따라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길 위에서 조우한 서커스단의 어릿광대이자 공중곡예사인 마또는 젤소미나와 잠빠노의 여정에 파란을 일으키고 그 여파로 인해서 젤소미나는 실성을 한다. 매서운 겨울의 황량한 산길 위, 더 이상 젤소미나가 사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잠빠노는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이 나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라고 되물으면서 거룩하고 성스런 사랑만을 보여
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백발의 호주인은 비행기 문이 열리자 잠시 담담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이윽고 주먹을 높이 치켜들며 얼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활주로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가 아내를 껴안은 뒤 번쩍 들어올렸다. 오른팔에 붕대를 감고 뒤에서 기다리던 아버지와도 포옹을 했고 아버지는 왼손으로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가 14년의 도피와 수감생활을 끝내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의 첫 통화 상대는 앤서니 앨버니지(Anthony Albanese) 호주 총리였다. "당신이 제 목숨을 구했어요." 앨버니지 총리는 공항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국회의사당의 기자회견장에서 어산지의 말에 답을 했다. “내 임무는 호주 시민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정부가 이 일을 조용하고 끈질기게 해냈다고 말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우리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우리는 남자다움의 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일을 완수하는 것이고 우리 정부는 조정된 방식으로 전략적으로, 참을성 있게 옹호한 끝에 이러한 결과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노동당 대표로 있던 야당시절부터 2
4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폭염은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인구밀도가 높거나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국가의 지역에 건강, 경제 및 교육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인도는 5월 중순부터 역대 가장 긴 폭염을 겪었다. 인도 북부는 기온이 45도 이상으로 올랐고, 일부 지역은 50도를 넘었다. 3월과 5월 사이에 폭염으로 56명이 사망했다는 공식 보고가 있지만 실제 숫자는 더 높을 것이다. 미얀마는 마그웨이(Magway), 만달레이(Mandalay), 사가잉(Sagaing) 및 바고(Bago) 지역에서 전례 없는 폭염이 닥쳤다. 캄보디아는 43도까지 치솟으며 170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태국 북부는 44도 이상으로 올랐고, 방콕은 40도를 넘었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이어지는 태국의 여름은 전년보다 1~2도 더웠으며 강수량은 평균보다 낮았다. 5월 10일까지 최소 61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는 37명이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중부와 동부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지는 현상이다. 몇 년마다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며 전 세계 날씨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엘니뇨 기간 동안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대기 순환이 변
지난해 9월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 불법체류자는 15만7000명이다. 총 체류자 중의 78%가 불법체류 상태이다. 전체 불법체류자의 36.6%를 차지한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 수는 점점 늘어난다. 다양한 이유로 불법체류를 하게 된 사람들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검거될 경우 추방될 수도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결국 불법적인 일자리를 기웃거린다. 지난해에는 태국정부까지 나섰다. 한국의 출입국 외국인청에 신고하고 스스로 귀국을 촉구했다.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귀국할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태국 노동부 장관도 나섰다. 일단 귀국하면 합법적인 취업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귀국에 나섰다는 태국인에 대한 통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짤른 왕아나논 태국여행사협회 회장은 20일 방콕포스트에서, 한국은 더 이상 태국의 인기 여행지가 아니라고 밝혔다. 입국규제가 심한 한국 대신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비용이 저렴하고 관광객 추방소식이 없는 베트남, 중국으로의 방문자 수가 한국을 추월했다고도 했다. SNS에서는 한국여행 거부운동에 대한 해시태그가 늘어나고 있다. 신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