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라면 한국에서 국부 ‘아웅산’의 딸 수치 여사의 감금과 2021년 2월 1일 일어난 ‘군부쿠데타’로 각인된 ‘동토의 땅’이다. 특히 나이든 세대들에게는 국가명이 ‘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미얀마’로 바뀌면서 헛갈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얀마(Myanmar)’라는 용어는 적어도 12세기 초부터 줄곧 사용되었다. ‘버마(Burma)’는 19세기와 영국 지배자들에서 탄생한 이국적인 새 이름이었다. 태생적으로 영어이고 미얀마인들의 이해와 동의하에 생겨난 이름이 아니었다. 오로지 식민지 용어였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 내에서 가장 면적이 크다. 인구 5900만명인 아시아에서 10번째로 큰 국가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미얀마에 대해서는 먼 나라다. 한국 방직업자들이 전체 3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풍문에 휩싸인 나라다. 이 같은 베일에 싸인 미얀마에 대한 깊은 연구서가 한국에서 나왔다. 동아대학교 아세안연구소 연구총서1로 나온 마이클 아웅뜨윙-마이트리 아웅뜨잉 부자의 ‘미얀마 역사 전통과 변혁’이 그것이다. ■ 책의 표지는 15세기 건립 양공 쉐더공 파고다, “진정한 미얀마 역사서” 이 책은 국가에 초점을 둔 역사서, 선사시대부터 201
"영인원탁회의 전원위원회는 "버마"를 인도로부터 분리하자는 원칙을 가결하얐다."(1930년 12월 6일 동아일보) 미얀마와 한국은 어떤 관계의 역사를 갖고 있을까? 이 칼럼의 첫머리에서 미얀마를 한자어로 ‘면전(緬甸)’이라고 쓴다고 소개한 적이 있고, 1989년 이전까지의 국가공식 명칭은 ‘버마’라고 상식적으로 알고 계실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 미디어에 이 버마라는 표기가 등장한 시점은 동아일보가 1930년 런던발 기사로 “緬甸分離可決(면전분리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것이 처음이다. 오늘 글은 '면전'이라는 표기를 중심으로 이 지역과 한국의 교류 역사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본다. 버마라는 명칭은 이라와디강 평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지배종족을 가르키는 것으로 19세기부터 1930년 그 이전까지는 영국-인도제국의 한 지방정부로만 구분되었을 뿐이다. 그것이 버마의 민족의식 확대로 인해 인도와 구분된 지역으로의 정체성을 요구하고, 다시 1937년부터는 버마의 대표(의회)를 구성해 반(半)자율적인 정치체제로 대내외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는 어찌보면 버마엘리트가 독립을 포기한 행위로 볼 수가 있으나 1895년부터 사실상 영국의 통치가 아닌 인도에 흡수합병된